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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 벌써 40년입니다. 그때 1학년 국어 교과서 맨 처음이 '나', '너', '우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글을 다 깨우치고 들어간 아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나', '너'를 모르고 학교에 들어가면 늦다고 아마 밤잠을 설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당연했습니다. 저 역시 나, 너, 우리만 겨우 읽을 줄 알았습니다.

학교에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 글자를 어느 정도 깨우친 후 읽을 줄을 알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는 단어가 옥상에 적혀 있었습니다. '반공'과 '방첩'이었습니다. 1973년부터 1979년 2월까지 초등학교를 다녔으니 독재자 박정희 정권 후반기와 겹칩니다.

'반공웅변대회'가 해마다 열렸는데 "김일성 때려잡자", "무찌르자 공산당"을 목놓아 외쳤고, 반공과 방첩을 입안에 맴돌 때까지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철저한 반공사상을 주입받은 것이지요. '똘이장군'을 보고 자랐기에 북한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났다고 생각했을 정도니 얼마나 왜곡된 반공주의에 빠져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학교 때도 아마 학교 교정에 반공과 방첩이 자리잡고 있었던 같습니다. 당연히 동네 창고와 마을회관 그리고 선전판에도 이 두 단어는 어김없이 붉은색으로 적혀 있었고, 오랫동안 '빨갱이' 말만 들어도 분노가 치밀어 올라 왔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 후 반공주의에 세뇌 당했음을 알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된 '빨갱이' 껍질이 하나씩 벗겨졌습니다.

그리고 학교와 동네의 공공건물에도 더 이상 붉은 글씨로 된 반공과 방첩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20일) 아내와 함께 경남 진주시 사봉면에 있는 한 동네에 들렀는데 붉은글씨로 적힌 '반공'과 '방첩'을 다시 만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반공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참 궁금했다
 동네 사람들은 반공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참 궁금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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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을 적은 방첩
 붉은색을 적은 방첩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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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붉은색으로 적힌 두 단어를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 저 글자를 읽을 때마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반공주의 구호를 아직도 기억할까? 등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공이라는 말은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방첩(防諜)은 '적의 첩보 활동을 막고,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함'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었습니다. 이런 마을에 적을 이롭게하는 첩보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페인트 칠을 한 지 오래되어 이곳저곳 벗겨졌는데 반공과 방첩만은 선명했습니다. 두 단어만 다시 적은 것 같았습니다. 왜곡된 반공주의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을 지배하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이 마을에 어울릴는 단어는 반공과 방첩이 아니라 '평화', '사랑'같은 단어일 정도로 어머니 품같은 동네였습니다. 백 번 양보해 반공과 방첩은 군대에서는 통용될 수 있는 단어이지만 평화로운 마을에는 전혀 필요 없는 단어입니다. 평화와 사랑을 외치기도 부족한데 언제까지 반공과 방첩입니까.


태그:#반공, #방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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