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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과 삼성전자·삼성생명 등 삼성 재벌의 사옥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 부근 삼성타운앞에서 지난 1월 31일 오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전국철거민연합,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뚜벅이' 회원들이 '삼성에게 빅엿을 선사한다'는 집회를 개최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과 삼성전자·삼성생명 등 삼성 재벌의 사옥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 부근 삼성타운앞에서 지난 1월 31일 오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전국철거민연합,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뚜벅이' 회원들이 '삼성에게 빅엿을 선사한다'는 집회를 개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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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은 한국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표면적인 몇 가지 제재 조치로 해결될 일회적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형성된 구조다. IMF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자본시장 개방화를 필두로 금융시장과 노동시장 그리고 기업경영형태의 대폭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신자유주의 체제가 전면화 되었던 시점이 바로 1997년이다.

하지만 1997년 이후 한국 경제는 일반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로 단순화할 수 없는 차별적인 특성을 갖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재벌이다. 제조업에 근간을 둔 한국의 재벌은 외환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신자유주의에 적응하면서 경제력을 확대하는데 성공했고, 이웃국가 중국의 팽창에 맞춰 글로벌 시장에도 안착했다.

따라서 1997년 이후 지금까지 굳어진 한국 경제 구조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와 재벌 시스템이 접목된 특수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에 상응하는 금융시장 구조와 수출주도형 성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인, 소비자, 노동자의 부를 편취하는 한국 재벌

현재 한국 재벌의 문제는 시장의 다른 주체들인 중소기업, 상인, 소비자, 노동자들의 부를 편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벌이 가진 힘이 너무 막강해서 다른 주체들과 동등한 관계를 형성하기가 힘들다. 재벌은 이런 약탈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자 사회정치적 집단인 정관, 검경, 언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미국처럼 강력한 독점규제법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유럽처럼 노동자와 노동자를 위한 정치세력의 힘이 센 것도 아니다.

최근 신자유주의와 재벌이 흔들리고 있는 듯보이지만 대체 모델이 마련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상당기간 한국경제는 그들이 지배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신자유주와 재벌체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경제의 구조와 성격이 결정된다. 때문에 향후 한국경제의 중·장기적 방향전환과 바람직한 모델로의 접근을 고려하면서 재벌개혁에 대처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재벌규제의 수단으로 '기업집단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 재벌은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통해 규제받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 억제를 담당한다. 상법은 지배구조 차원에서의 투명성이나 경영과 소유의 분리와 소수주주권 강화 등을 담당한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공정거래법상의 경제력 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는 지속적으로 완화되었다. 대신 상법 차원에서 소수주주권 강화나 공정거래법상에서 정보 공시 부분이 추가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 규제완화와 시장화 분위기가 재벌 규제 장치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그 결과 법률을 통한 직접 규제는 대부분 해체되고 대신 시장에서의 자율적 조정을 기대하거나 영미식의 주주자본주의 견제 수단들이 일부 도입되었다.

재벌개혁은 재벌이 다른 경제주체들과 맺고 있는 고나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 한국의 재벌을 중심으로 한 이해관계자의 역학 재벌개혁은 재벌이 다른 경제주체들과 맺고 있는 고나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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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재벌개혁 논의

이런 상황에서 재벌개혁에 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소액주주운동을 주창하면서 소수주주권 강화를 통해 재벌을 견제하고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할 것을 주장하는 흐름이었다. 둘째는 우리 경제의 핵심 문제는 재벌이 아니라 외국 투기자본에 있으며, 재벌의 규모와 효율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흐름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기업집단법 제정을 주장하는데, 약간의 차이는 존재한다.

먼저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재벌개혁의 경우 기업집단법 제정에서도 여전히 기업의 지배구조, 특히 대기업집단에 속한 개별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두었다. 때문에 이들은 기업집단으로서의 실체보다는 각 계열사 개별법인 이사회나 주주총회, 경영진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 시기 기업집단법의 목적은 지배구조 투명성보다는 경제력 집중 억제에 맞춰져야 한다. 기업집단의 집단적 실체에 주목하여 자본투자자와 채권자, 그리고 경영자 차원에서 어떤 법적 규제를 할 것인지에 좀 더 집중했어야 했다.

한편 재벌의 규모와 효율성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외국자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집단법을 통해서 재벌체제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재벌총수와 재벌 그룹 통제조직(구조조정본부)의 권한과 책임을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투명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는 어떤 면에서 보면 기업집단법(콘체른법)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재벌의 규모를 인정하면서 경제력 집중 억제는 불필요한 것으로 흐른 측면이 있다. 2000년대 이후 재벌의 국내 독점 지배력이 심각하다는 점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다. 또한 외국자본 견제는 자본 유출입 통제와 같은 별도 경제정책으로 해결할 문제지 재벌을 인정함으로써 해결될 사항은 아니다.

독일 콘체른법에서 배우는 교훈

그렇다면 다른 국가에서의 재벌규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독일 콘체른 법을 통해 알아보자. 일본의 재벌과 함께 독일의 콘체른은 2차 대전을 일으킨 경제적 기초로 지목당하여 전쟁 후 연합군에 의해 해체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1960년부터 기업 사이의 재집단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독일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에 독일은 현실의 기업집단을 법률에 반영하고자 했다. 1965년 주식법(German Stock Corporation Act)을 개정하면서 콘체른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관련 조항을 삽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재벌에 대한 법 규정이 없고 다만 경쟁법인 공정거래법 총칙 2조에 기업집단에 대해서 "동일인이 대통령이 정하는 기준에 의해 사실상 그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이라고만 간략히 규정되어 있다.

콘체른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독일은 1958년 경쟁제한방지법(GWB)을 제정하여 독과점 규제를 해왔다. 또한 1976년에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공동결정법을 제정하여 기업집단을 감시해왔다. 즉, 콘체른법(회사법 : 투자자와 자본의 입장), 경쟁제한방지법(경쟁법 : 국가의 독과점 규제의 입장), 공동결정법(노동법 : 노동조합의 입장)이 서로 어울리면서 기업집단을 규제하고 있다.

우리 역시 기업집단법 제정에만 그쳐서는 안 되며, 기존의 공정거래법의 개정도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집단 내부에서 노동자가 기업집단 견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집단법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

이런 것들을 고려하여 기업집단법의 기초적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보자.

우선 개별 기업 범위를 넘는 기업집단이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실체라는 점을 상법적 각도에서 인정하고 그 존재와 구성 요건을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현재 상법은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기업집단에는 주목하고 있지 않다. 한국에서 기업집단 지배구조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법적 규율이 상법이 아닌 독점규제법 영역에서 발전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집단법을 통해 기업집단의 실체를 규정하면 상법의 범주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특수한 실체로 인정된다.

그런 점에서 첫째, 재벌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집단의 일반적 정의를 한 후, 공정거래법에서 상호출자제한 기업을 정하는 것처럼 자산규모 5조 원 이상 등의 기준을 두어 독점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집단을 지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둘째, 기업집단을 구성하는 계열사의 성립과 해지 요건, 계열사 편입의 법적 허용 범위 등이 규정되어야 한다. 현재 출자 지분율 요건 등에 대해 대통령이 정하도록 유보된 것을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명목적인 출자 지분에 의한 계열사 편입과 함께 실질적 지배개념을 적용하여 위장 계열사 등의 논란을 가급적 축소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순환출자 구조 등을 아예 합법적인 기업 집단 구성 요건에서 배제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셋째, 기업 집단 전체의 지휘 통제 구조를 규정해야 한다. 지휘통제의 동일인이 재벌총수인지 지배기업인지 등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 하고 구조조정 본부와 같은 지휘통제 조직의 존재와 법적 지위를 규정해야 한다.

상법의 특별법으로서 기업집단법을 제정하여 기업집단의 실체를 정의한 후, 기업결합과 지주회사에 대한 제한 규정을 마련하고, 기업집단과 주주 및 채권자의 관계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 기업집단법의 성격과 위상 상법의 특별법으로서 기업집단법을 제정하여 기업집단의 실체를 정의한 후, 기업결합과 지주회사에 대한 제한 규정을 마련하고, 기업집단과 주주 및 채권자의 관계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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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경제력 집중 억제 방안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공정거래법에 있는 기업 결합 요건과 특히 지주회사에 대한 규정은 전반적으로 재벌 규제법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지주회사체제는 한국경제에서 이제 기업 집단의 가장 중요한 형식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호출자 금지, 채무보증 금지, 금융회사 의결권 제한을 공정거래법에 남겨놓을 것인지는 검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둘째, 역시 공정거래법 11조에 있는 대규모 내부 거래의 이사회 의결, 비상장회사 공시, 기업집단현황 공시 등은 경쟁법보다는 회사법적 내용이므로 기업집단법으로 옮겨야 한다.

재벌의 실체를 정의해야 경제력 억제가 가능

마지막으로 개별 독립 법인(주주)의 이익과 전체 기업집단의 이익 사이의 이해상충을 해결하는 규정도 필요하다. 이 부분은 상법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야 할 분야다.

첫째, 우선 기업집단에 속하는 개별 기업 이사회와 경영자 그리고 기업집단 총수의 책임관계가 규정되어야 한다. 둘째, 개별 기업의 소수주주권 보호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규정되어야 한다. 셋째, 최근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내부거래의 인정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도 포함되어야 한다.

대체로 위와 같은 내용이 새로 제정해야 할 재벌규제법의 주요 내용을 이룰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바는 기업집단법은 반재벌법이 아니라 재벌인정법이다. 재벌을 법적인 실체로 인정해야만 그들이 갖는 막대한 권한과 경제력에 대해서 규제를 가할 수 있다. 또한 기업집단법 하나만 제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정거래법의 개정, 사회적 견제세력의 성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동안 재벌이라는 기업집단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기업집단법은 이를 잘 반영해야 한다. 때문에 경제학계와 법학계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기업집단법, #재벌개혁, #대기업집단, #공정거래법, #경제력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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