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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계절에 맞는 옷과 음식이 있듯이 계절에 맞는 음악이 있다. 모든 것이 동결되는 겨울에는 현악기의 음색이 마음에 와 닿는다. 특히 저음의 첼로나 콘트라베이스가 주는 느낌은 겨울의 냉기와 어울려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반면 몸도 마음도 한 없이 늘어지는 여름에는 금속성 관악기가 주는 날카롭고 단단하며 동시에 시원한 소리가 더위를 조금은 누그러뜨려준다. 그 외에도 단아하고 강렬해서 시원한 남성 중창이나, 피아노 타건 이 주는 청량한 느낌 때문에 피아노 음악도 여름 음악으로 적합하다. 가을에는 사실 아무 음악이나 영혼을 울린다. 시원해지는 날씨 덕에 제법 난해한 음악도 우리 귀에 거슬림 없이 들리고 악기들도 특별한 종류를 불문하고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러면 봄은 어떤가? 봄은 겨우내 딱딱하게 굳었던 우리의 마음이 따뜻한 기운에 슬며시 부드러워지기는 하지만 아직은 충분히 유연하지 않아서 아무 음악이나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로는 조금 강렬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아직은 여린 구석이 있는 음악이거나 단출한 악기의 구성으로 연주되는 소품들이 비교적 우리에게 쉽게 다가온다. 봄을 위한 클래식 여덟 곡을 들어보자.

매화 꽃이 벙그는 이른 봄날.
▲ 초봄 매화 꽃이 벙그는 이른 봄날.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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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 봄

루스란과 루드밀라
Ruslan and Lyudmila Overture. in D major
Mikhail Ivanovich Glinka작곡

러시아 대 문호 푸시킨의 서사시 "루스란과 루드밀라"에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글린카가 만든 오페라의 서곡이다. 사실 이곡은 유명해서 이렇게 선별해 듣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계절의 변화와 그 변화의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 이 만큼 어울리는 음악을 찾기도 어렵다. 러시아 풍의 인상적인 첫 부분은 오페라 서곡이 가지는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중간 중간 이어지는 관악기들, 현악기들의 합주는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봄의 기운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글린카의 작곡 의도와는 전혀 다르겠지만 음악을 통해 봄을 느끼려는 우리의 생각은 글린카의 의도를 넘어 더없이 자유로워진다. 주제의 변주가 제법 이어지지만 5분이 넘지 않는 짧은 곡이다. 아직 이른 봄날 햇살이 떠오르는 휴일 아침나절 쯤 이 음악을 들으면 계절이 바뀌고 있음과 그 계절이 봄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상음악 중 알라 혼파이프
Water Music No.11 HWV 348 Alla Hornpipe
George Frederic Handel 작곡

알라 혼파이프는 스코틀랜드 전통악기 이름이다. 헨델이 자신의 후원자를 위해 작곡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헨델이 영국에 머물면서 작곡한 이 음악은 스코틀랜드 악기인 알라 혼파이프를 이용한 춤곡 형식의 음악이다. 표제에도 있듯이 이 음악을 들으면 마치 작은 배 위에서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물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가는 느낌이 든다. 3분 정도의 짧은 음악이지만 잔향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매화 꽃 봉오리가 가만 가만 벙글고 하늘은 푸른 날,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온 몸으로 맞으며 이 음악을 들어보자.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 봄의 중반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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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봄의 중반을 넘기며

경기병 서곡
Light Cavalry Overture 
Franz Von Suppe 작곡

앞의 두 곡이 아직 겨울의 냉기가 남아있는 이른 봄의 음악이라면 이 경기병 서곡은 봄 꽃, 특히 벚꽃이 만발할 무렵, 한 낮에는 온도가 올라 나른함이 느껴지는 그런 오후에 어울리는 행진곡 풍의 음악이다. 호른과 트럼펫으로 시작하는 씩씩한 서주부를 지나 중반부의 첼로로 연주되는 엘레지,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부의 씩씩한 주제의 변주는 봄기운으로 살짝 나른해진 사람들의 영혼을 경쾌하게 한다. 시인과 농부 등 희가극을 많이 쓴 주페의 작품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
Overture to The Barber of Seville
Gioacchino Antonio Rossini 작곡

투티(tutti)로 시작되는 서주부는 유채꽃처럼 환하고 현악기의 스타카토 연주는 봄 풀꽃들처럼 아기자기한 맛을 낸다. 롯시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인데 그의 음악에서는 이탈리아의 낙천적이고 유쾌함이 그대로 살아있다. 현악의 유려함과 관악의 경쾌함이 어우러져 봄이 중반을 넘기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회색빛 황사와 불투명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현악으로 연주되는 주제부분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음악이 끝난 뒤에도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계절의 변화는 때로 몸의 부적응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이 음악을 들으면 몸속으로부터 흥겨움이 올라와 이제 정말 봄에 당도했음을 느낄 수 있다.

봄이 무르익어 절정으로 치닫는다.
▲ 유채꽃과 하늘 봄이 무르익어 절정으로 치닫는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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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의 절정

오르페와 에우리디체 중 정령의 춤
Orpheus and Eurydice - Dance of the Blessed Spirits
Christoph Willibald Gluck 작곡

보헤미아 출신의 글룩이 작곡한 오페라 중 2막 2장의 첫 부분에 연주되는 음악이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슬픈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라니에로 다 칼자비지의 대본을 바탕으로 글룩이 작곡하여 1762년 초연된 오페라다. '정령의 춤'은 현악기의 부드러운 음으로 시작하는데 이제 지천으로 꽃이 흐드러지고 새싹들은 이제는 완전한 녹색으로 짙어지는,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 계절이 오면 한 낮의 마음은 점점 분별력을 잃기 쉽고 밤이 되어서야 안정을 취할 수 있다.

완전히 밤이 되기 전, 밤도 낮도 아닌 어스름에 이 음악은 기막히게 어울려서 영혼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6분 정도의 짧은 미뉴에트 춤곡 풍의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봄 밤 정령들의 움직임을 보는 듯하고 특히 중반부의 플루트와 오케스트라의 조화에서 천지에 가득한 싱그러운 봄 꽃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쾌락의 신 "목성"
Jupiter, The Brigner of Jollity, Jupiter The Planets op.32
Gustav Theodore Holst 작곡

너무나도 유명한 홀스트의 행성 시리즈의 4번째 곡이다. 홀스트는 스웨덴 혈통이지만 영국 사람이다. 1916년에 완성된 이 음악은 당시에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가 인류가 달 착륙을 하고 우주개발이 시작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현악으로 여리게 시작되는 것을 중간 톤의 관악기가 받아 이어지는 초반부의 느낌은 목성이 태양계의 행성 중 가장 큰 행성임을 느끼게 할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이어지는 합주는 이제 점점 짙어지는 녹음위로 반짝이는 햇볕처럼 강렬하다. 곡의 중반부쯤 들리는 캐스터넛츠의 소리는 수많은 우주의 별무리들이 가득한 목성의 하늘을 떠올릴 만큼 이채롭다. 뒤이어 이어지는 유려한 현악 사이사이에 가끔씩 들리는 팀파니 소리를 들으면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러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주제의 변주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약간은 장난스럽기도 하고 혹은 딴청을 부리는 듯 하다가 이내 합주로 끝을 맺는다.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시냇가.
▲ 시냇가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시냇가.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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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봄의 끝

전원 2악장 (시냇가의 정경)
Symphonie No. 6 'Pastorale' Op. 68 Andante molto mosso Bb major
Ludwig van Beethoven 작곡

이제 봄은 절정을 넘는다. 천지에 푸름과 화사함이 가득하다. 낮은 온도가 올라 여름을 느끼게 하고 밤이 되어도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다. 이런 날들이 시작되면 우리들 마음은 많이 가벼워져서 자연과 현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경솔해지기 쉽다. 이런 때 우리는 베토벤을 만나야 한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는, 음악을 통해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숭고하고 위대한 가르침, 즉 자연에 대한 경외와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겸손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전원 교향곡은 숨결처럼 부드러운 신의 사랑을 여러 가지 주제로 표현한다. 광포한 폭풍 같은 주제로 때로는 이슬비 같은 주제로 또 가끔은 따사로운 햇볕 같은 변주로 그러다가 순박한 농부의 마음으로 본 자연의 변주로 이어진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함을 음악적 표현으로 인간에게 호소한다. 2악장 시냇가의 정경은 여러 악기로 여러 새소리를 흉내 내는데 이것을 듣고 있노라면 곧 다가올 여름날 시원한 냇가에 앉아 새소리를 듣는 착각에 빠진다.

헝가리 무곡 제5번
Ungarische Tanze No. 5
Johannes Brahms 작곡

브람스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처럼 뛰어난 천재는 아니었으나 쉼 없는 노력으로 거의 완벽한 음악을 창조해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음 하나 하나에 정성을 기울임은 물론이고 전체적으로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헝가리 무곡은 집시 무곡 형식인 차르다시 풍의 음악이다. 춤곡임에도 집시 특유의 비애와 격정이 은근히 숨어 있는 이 곡은 봄이 끝날 무렵 짙어진 신록과 더불어 뜨거워진 햇빛이 어우러지는 광경을 연상시킨다. 더 이상 짙어지면 경계를 넘지만 아직은 신록의 잎들과 조금만 열기를 더해도 이제는 여름이 되는 햇빛이지만 아직은 5월의 부드러운 햇살이 어우러지는 것처럼 비애와 격정이 있는 빠른 템포의 음악과 곡 사이사이 그리고 끝 부분의 느린 부분은 간절하고 애잔한 느낌을 주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고 어우러져 찬란한 봄의 끝처럼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태그:#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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