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원지(陳文驥) I '들숨과 날숨(Breath in Breath out)' 42×42cm 유화 2007[좌]. 피에르 샤르팽(P. Charpin) I '라오(Lao)' 2010. 이우환 I '대화(Dialogue)' 112×145cm 2011[중간]. 고가구 I '목기소반' 19세기[우]
 천원지(陳文驥) I '들숨과 날숨(Breath in Breath out)' 42×42cm 유화 2007[좌]. 피에르 샤르팽(P. Charpin) I '라오(Lao)' 2010. 이우환 I '대화(Dialogue)' 112×145cm 2011[중간]. 고가구 I '목기소반' 19세기[우]
ⓒ 학고재

관련사진보기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3월 20일까지 '디자인의 덕목展'전이 열린다. 이번은 한국의 고가구와 서양의 현대가구, 동서양의 모노크롬(단색화) 작품을 결합한 이색전시로 디자인가구 6점, 조명 3점, 고미술 9점, 회화 6점을 선보인다. 기능성과 아름다움이라는 지향점이 전혀 다른 가구와 회화가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좌우로 중국작가 천원지의 코발트빛 추상화와 암회색의 고가구 목기소반이 눈에 들어온다. 두 작품은 원형이라는 면에서 같고 재료가 매끈한 유화와 투박한 나무라는 면에서 다르다. 그럼에도 멋진 대조미를 이룬다. 이뿐 아니라 가운데 전구 3개가 달린 샤르팽의 조명등과 점 3개만 찍힌 이우환의 단색화도 기막히게 어울린다.

동서의 어울림, 그 연결고리는 단순미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학고재 김한들 큐레이터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학고재 김한들 큐레이터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가구와 회화가 같이 전시됐음에도 잘 어울리는 이유가 뭔지 이번 전을 기획한 학고재 김한들 큐레이터에게 물었더니 "디자인의 실용성과 순수회화의 심미성을 어떻게 만나게 할까 고민하다 결국 두 요소를 연결시키는 건 미술의 기본으로 돌아간 단순미에 있다고 봤다"며 "여기서 단순미는 그냥 단조로운 게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이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결국 빼기의 미학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동양은 여백을 중시하는 빼기의 미학이지만 서양은 완벽을 추구하는 더하기의 미학인데 서양은 이에 한계를 느껴 기교와 각색을 최소화하고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라는 첨단미학을 받아들이면서 동서가 만나게 되고 그래서 서로 비슷해 진 것 같다.

큰 세 점으로 만나는 이우환과 부훌렉 형제

이우환 I '대화(Dialogue)' 종이에 수채 75×175cm 2011
 이우환 I '대화(Dialogue)' 종이에 수채 75×175cm 2011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르낭과 에르완 부훌렉 형제(Ronan & Erwan Bouroullect 1971 & 1976) I '고동장식 5(Conques 5)' 유리와 벽 조각[아상블라주] 35×17×15cm 2010
 르낭과 에르완 부훌렉 형제(Ronan & Erwan Bouroullect 1971 & 1976) I '고동장식 5(Conques 5)' 유리와 벽 조각[아상블라주] 35×17×15cm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먼저 한국의 거장 이우환의 회화와 프랑스의 신예 부훌렉 형제의 작품을 같이 보자.

이우환은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하여 무한대의 세계를 창출하는 작가다. 여기선 아주 경쾌한 색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에 대조되는 프랑스의 유망주 디자이너 부훌렉 형제는 자연의 강력한 생명력을 보여주면서 풀이 담을 따라 올라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상상하기 힘든 선과 스타일로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놀라운 조명스탠드이다.

같은 방에 설치된 두 작품은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데 그 이유가 뭔가. 그것은 아마도 두 작품의 키포인트가 되는 것이 바로 커다란 3개의 점이 아닌가 싶다. 음악에서는 삼박자가 중요하고 미술에서도 삼각구도가 중요하듯 두 작품에서 적절한 위치에 놓인 세 개의 큰 점은 화룡정점의 역할을 하며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원형, 사각형, 오뚝이 그리고 마름모의 향연

마르탱 세클리(Martin Szekely) I '낮은 책상(Table Basse)' 라커 알루미늄 광택 철 2002[좌]. 헬라 용에리위스(Hella Jongerius) I '작은 구근식물(Bead Bulb)' 램프 82×42cm 2005[중간]. 정상화 I '무제 78-B' 캔버스에 프로타주(문지르기) 130×162cm 1973[우]
 마르탱 세클리(Martin Szekely) I '낮은 책상(Table Basse)' 라커 알루미늄 광택 철 2002[좌]. 헬라 용에리위스(Hella Jongerius) I '작은 구근식물(Bead Bulb)' 램프 82×42cm 2005[중간]. 정상화 I '무제 78-B' 캔버스에 프로타주(문지르기) 130×162cm 1973[우]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에는 4가지의 다른 모양을 짝짓기 한 작품을 한번 살펴보자.

프랑스의 디자이너 마르탱 세클리의 빨간 책상은 원형이다. 그는 드로잉이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데 여기 작은 책상 또한 그렇다. 작지만 아우라가 느껴진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헬라 용에리위스가 디자인한 오뚝이 전등은 이 작가가 아니면 낼 수 없는 강력한 개성이 보인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산업과 공예를 혼합한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작가 정상화의 사각형 단색화, 여기에선 한국인의 차원 높은 정신성을 발현된 것으로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작품이다. 아무튼 모양이 서로 다른 이 세 작품은 시너지효과를 내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랑수아 모렐레(Francois Morellet) I '네가티브 11번(Negatif No.11)' 나무와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흰색 네온튜브 2010
 프랑수아 모렐레(Francois Morellet) I '네가티브 11번(Negatif No.11)' 나무와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흰색 네온튜브 2010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그 벽 사이를 두고 전시된 작품은 작년 퐁피두센터에서 대대적 회고전을 가진 네온아트의 선구자 프랑수아 모렐레의 것이다. 그는 네온추상으로 0도 45도와 90도 기울기가 다른 기하학적인 선과 선을 만나게 하여 관객들에게 경쾌한 시각유희를 선물하고 또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도록 한다.

이렇게 4개의 작품은 원형, 삼각형, 오뚝이, 마름모꼴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도 서로 어울리는 것은 결국 그 근저에 단순미의 향연이 벌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 '책가도'와 책 선반이 만나는 재미

제임스 얼바인(James Irvine) I '카지노(Casino) 선반' 경질알루미늄 162×84×84cm 2008. '책가도(冊架圖)' 조선시대 19세기
 제임스 얼바인(James Irvine) I '카지노(Casino) 선반' 경질알루미늄 162×84×84cm 2008. '책가도(冊架圖)' 조선시대 19세기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이번에는 한국의 책가도와 영국의 디자이너 제임스 얼바인이 만든 선반을 같이 보자.

이 두 작품의 구성과 디자인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책가도는 우리가 알다시피 선비의 사랑방을 장식하는 서가를 그린 그림이다. 이걸 조선 초기에는 왕가와 양반만 즐겼으나 후기에는 민화에도 도입된다. 책가도나 책 선반은 책과 가까이 하게 한다는 면에서 같다.

제임스 얼바인은 비례와 변형미로 디자인하는 작가이다. 그는 보는 이에게 긴장과 이완, 비례와 변주의 효과를 내는데 그런 상반되는 면이 오히려 그의 디자인에 탄력을 주고 독특한 심미성을 부여한다. 다소 혼란해 보이나 거기에도 역시 단순미의 미덕이 숨어 있다.

반닫이의 안정감과 서양 서랍장의 아찔함

'강화반닫이' 소나무 만(卍)자와 아(亞)자 장식 무쇠 77×91×50cm 19세기
 '강화반닫이' 소나무 만(卍)자와 아(亞)자 장식 무쇠 77×91×50cm 19세기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프론트 디자인(Front Design 스웨덴 디자인팀) I '분리된 서랍장(Divided Sideboard)' 3D작업 83×154×38cm 2007
 프론트 디자인(Front Design 스웨덴 디자인팀) I '분리된 서랍장(Divided Sideboard)' 3D작업 83×154×38cm 2007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끝으로 한국의 반닫이와 유럽의 서랍장을 비교해 보자. 한국 고가구인 강화반닫이는 균형감과 안정감을 주는 반면 첨단의 현대가구로 스웨덴 디자인팀이 만든 서랍장은 짜릿하게 이탈하는 면이 돋보인다. 일상적인 것에 환상적 요소를 가미해 그런 가보다.

여기서도 동서양의 단순미라는 코드는 역시 통한다. 스웨덴 팀이 디자인한 이 서랍장은 가구라기보다는 설치미술 같다. 묘한 긴장과 흥분을 일으킨다. 서양회화에서 눈속임기법이 있듯 그런 종류의 마술적 요소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가구의 깔끔한 검은색은 품격 높은 모노크롬 회화를 연상시킨다.

이번 전을 보고 내리는 결론은 많은 사유와 고뇌를 통해 얻어낸 이런 단순미는 미적 쾌감을 유발하고 시각적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복잡하고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점이다. 단순한 일상이 생활에 가장 큰 즐거움을 주듯 단순한 미가 회화나 디자인에서는 최고의 조형적 덕목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가와 디자이너들


[프론트 디자인(Front Design)] 소피아 라예르크비스크(Sofia Lagerkvist), 샤를로트 폰 데 란켄(Charlotter von der Lanken), 안나 린드그랜(Anna Lindgren)이 2003년 결성한 스웨덴 디자인 팀이다

[로낭과 에르완 부훌렉(Ronan & Erwan Bouroullect 1971 & 1976- 프랑스)] 디자인을 전공한 프랑스 형제로 지금까지 간결한 형태 속에 부드러움과 기품을 살린 작품으로 데뷔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끈다

[헬라 용에리위스(Hella Jongerius 1963- 네덜란드)] 1993년 아인트 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전통과 현대를 혼합하는 특별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다

[피에르 샤르팽(Pierre Charpin 1962- 프랑스] 피에르 샤르팽은 부르주(Bourge) 프랑스국립미술학교에서 학위를 취득, 오브제 디자인과 가구 설계를 하는 프랑스의 대표 디자이너이다

[제임스 얼바인(James Irvine 1958- 영국] 영국 왕립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디자이너로 밀라노로 삶의 터전으로 작업하고 있고 2004년 영국 왕립산업디자이너(Royal Designer for Industry)로 선출되다

[마르탱 세클리(Martin Szekely 1956- 프랑스] 그의 디자인은 기능이 강조된 형태에 특이한 재료를 사용하여 단순한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1999년 프랑스문화훈장(기사장)도 받았다.

[천원지(陳文驥 1954- 중국] 그는 상해 출신으로 현재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는 작가로 세상에 대한 관조와 사색을 담은 독자적 동양적 정신을 보여준다.

[이우환(1936- 한국]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미술과 철학을 공부했고 일본 '모노하'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2011년 아시아인으로는 백남준, 차이궈창에 이어 뉴욕 구겐하임회고전으로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정상화(1932- 한국] 그는 한국추상미술의 1세대 작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7년 프랑스 15년간 작업을 했다. 어느 흐름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왔다.

[프랑수아 모렐레(François Morellet 1926- 프랑스] 그는 기하학적 추상의 거장이자 네온아트의 선구자로 그의 작품에는 우연성, 양면성, 패러디, 언어유희 등 다의성이 담겨있다

덧붙이는 글 | 학고재 갤러리 본관 www.hakgojae.com 02)720 1524-6 종로구 삼청로 50(소격동 70) 입장무료



태그:#단순미, #모노크롬(단색화), #이우환, #디자인의 덕목, #프랑수아 모렐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