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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먹던 2500원짜리 라면 가격을 어느 날 갑자기 1만 원으로 올려 받겠다고 하면, 어떤 기분일까?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만 사용하고 서비스 질을 최고로 향상시켰다는 이유로 가격을 더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면 그때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렇다고 2500원짜리와 1만 원짜리를 같이 파는 것도 아니다. 2500원짜리 라면도 괜찮은데 왜 갑자기 1만 원짜리 고급 라면을 먹으라고 하는 것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시범 운행중인  ITX-청춘 열차
 시범 운행중인 ITX-청춘 열차
ⓒ 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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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은 28일 'ITX-청춘' 열차를 개통하고 아침 6시 첫 운행에 들어갔다. ITX-청춘은 경춘선을 오가는 준고속열차로, 최대 시속이 180km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준고속열차로는 ITX-청춘이 최초다.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된 이래 14개월여 만에 대중교통계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올 열차가 생겨난 것이다. 최대 시속 180km에 일반 전철과는 달리 좌석형으로 운영된다고 하니, 얼마나 빠르고 편할지 기대가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경사라 부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 그 속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의아한 부분은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운행되던 경춘선 '급행전철'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 ITX-청춘 열차가 들어섰다. '급행' 대신에 '준고속'에 'ITX-청춘'이라는 딱지를 갖다 붙인 새로운 열차가 달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요금을 4배 가까이 올렸다.

이쯤 되면, 무언가 새로운 형태의 상품을 개발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상품이 자꾸 이름만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왠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치러오던 가격에 4배나 높은 돈을 물어줘야 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ITX-청춘 열차가 급행 전철과 다른 선로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 음식이 그 음식인데, 음식을 담는 그릇을 바꿨다고 해서 그 음식의 속성마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ITX-청춘 열차 개통 현수막이 걸려 있는 춘천역. ITX-청춘 열차 개통 행사를 준비중인 취타대.
 ITX-청춘 열차 개통 현수막이 걸려 있는 춘천역. ITX-청춘 열차 개통 행사를 준비중인 취타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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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준고속', 사실은 좀더 빠른 '급행' 수준에 불과하다

28일부로 사라지고 없는 경춘선 급행 전철은 일반 전철과 달리, 일부 역을 정차하지 않은 채 지나쳐 빠른 시간에 수시로 춘천과 서울을 오가야 하는 승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반 전철이 16개 역에 정차하는 데 반해, 급행 전철은 단 5개 역에 정차했다. 춘천역에서 서울 상봉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일반 전철이 79분, 급행 전철이 65분이었다. 그렇다고 급행 전철을 이용하는 데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ITX-청춘은 뭐가 달라졌을까? 일단 좌석이 새마을호와 같은 형태여서 더 편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최대 속도가 183km나 된다니, 춘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엄청 단축해 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ITX-청춘이 장점으로(사실은 가격 인상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런 것들이 사실은 그다지 뛰어나다는 말을 들을 만한 것들이 아니다.

경춘선을 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급행 전철도 꽤 편안한 편이다. 그럭저럭 타고 다닐 만하다. 만약에 열차 칸 안에서 서서 가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ITX-청춘보다는 급행 전철이 더 편할 수도 있다. 그럼 시간은 얼마나 줄어들까? ITX-청춘이 춘천역에서 청량리역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64분(85.3km)이다. 그런데 급행 전철이 춘천역에서 상봉역까지 가는 데 65분(81km) 걸린다. 그러니까 사실상 속도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다. 고작 몇 분 더 줄일 수 있을 뿐인데, 겨우 그 정도 시간을 줄여 보려고 급행 전철을 준고속열차로 갈아치웠다니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인가 싶다. ITX-청춘이 실제 경춘선에서 달릴 수 있는 평균 속도는 시속 약 80km에 불과하다. 급행은 약 75km다. 말이 '준고속'이지, 사실은 '급행'과 다를 것이 없는 수준이다. 단지 차량이 고급스럽게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가격을 아주 비싸게 올렸다. 요즘 같이 경기도 안 좋은 판에 그걸 반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춘천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춘천역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회원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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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 요금이 아니라, 인하된 확정 요금 발표해야

ITX-청춘이 가진 가장 우월한 장점은 출퇴근 시간에 열차 운행 횟수를 늘려 놓은 것이다. 취지는 춘천에서 서울까지 ITX-청춘 열차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까지의 출퇴근 역시 급행 전철을 증차하거나 노선을 용산역까지 연장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ITX-청춘은 오전 6시(첫차)에서 오후 10시(막차)까지 운행하고, 출퇴근 시간대에는 30분, 다른 시간대에는 1시간 간격으로 평일 하루 44회, 주말 54회 운행한다. 정차역은 용산역과 청량리역에서 각각 출발해 평내호평, 가평, 남춘천을 거쳐 춘천역에 도착한다. 출퇴근 시간대는 정차역이 좀 더 늘어난다.

속도에 비해 열차 요금은 비교할 수 없이 큰 차이를 보여준다. 급행 전철이 춘천역에서 상봉역까지 가는 데 단돈 2600원을 받는 데 반해,  ITX-청춘은 춘천역에서 청량리역까지 가는 데 8600원을, 용산역까지는 9800원을 받기로 되어 있다(현재는 30% 할인 요금을 적용하고 있다). 게다가 ITX-청춘 열차는 환승요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열차에서 내려 다른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때는 별도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래저래 요금은 자꾸 올라간다. 이전에 급행 전철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섭섭해하지 않을 수 없는 가격이다.

결국, 코레일이 급행 전철을 준고속열차로 대체한 데는 여느 과자 회사들처럼 포장만 살짝 바꿔 가격을 올리려고 한 혐의가 짙다. 그것도 아주 한탕 세게 했다. 당연히 비난이 들끓었다. 춘천시민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코레일에 당장 ITX-청춘 열차의 요금을 인하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춘천 시민들의 불만도 적지 않다. <강원일보>는 춘천 시민의 83.4% 이상이 ITX-청춘의 요금이 '비싸다'고 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발표했다(2012.1.13).

이런 요구가 빗발치자, 코레일은 지난 22일 ITX-청춘 요금을 30% 할인해 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 역시 '꼼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 정도 할인 요금은 개통 초기 이벤트에 불과하다. 게다가 코레일은 30% 할인 기간을 분명하게 밝히지도 않았다. 언젠가는 원래 책정한 가격으로 요금을 인상할 게 분명하다. 현재 시민단체들은 일시적인 할인 요금이 아니라, 확정된 가격으로 5000원에서 6000원대의 요금을 요구하고 있다.

ITX-청춘 열차 요금 인하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중인 시민단체.
 ITX-청춘 열차 요금 인하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중인 시민단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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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열차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면 반대"

춘천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도 코레일은 일단 28일 ITX-청춘을 운행하면서 30% 할인 가격을 적용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요금 정책은 언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이에 춘천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28일 ITX-청춘 개통식이 열리는 춘천역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ITX-청춘 요금을 할인 요금이 아닌 확정 요금으로 인하해서 발표할 것'과 '급행전철을 용산역까지 연장해서 운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철도공사가 정말로 요금을 낮출 의지가 있다면 30% 할인이 아니라 이용자들과 춘천 시민이 납득할 만큼 인하된 요금을 확정해서 발표해야 한다"며, 코레일이 "공기업임을 포기하고 시민의 주머니를 강제로 털어 이윤만 추구하는 몰지각한 행위를 반복한다면 경춘선 이용자, 춘천 시민들과 함께 탑승거부운동을 포함한 시민권리찾기운동을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민단체들은 또한 "오늘부터 급행 전철 운행이 전면 중단됨에 따라 그동안 급행 전철을 이용해오던 시민들의 선택권이 강제로 박탈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고 지적한 뒤, "허천 국회의원, 이광준 춘천시장, 춘천시의회는 ITX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춘천시민과 경춘선 이용자들의 교통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서민들의 삶이 나날이 팍팍해지고 있다. 가계 경제에 주름살이 깊다. 소득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데 물가는 날개라도 돋친 듯 날아오르고 있다. 서울시는 25일부터 지하철과 버스 요금은 150원씩 인상했다. 20% 가까이 인상한 셈이다. 다른 지역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기름값은 상승세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구에 자원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하지만 멀쩡하게 잘 타고 다니던 전철을 없애고 갑자기 과포장 바가지요금 열차를 타고 다니라고 하는 데는 좀처럼 머리가 끄덕여지질 않는다. 시민단체들은 지금 코레일이 ITX-청춘 열차에 그처럼 높은 요금은 책정한 근거를 묻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 전철의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점 국민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태그:#ITX-청춘, #경춘선, #급행 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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