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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프로그램 '영자의 전성시대' 중
 코미디 프로그램 '영자의 전성시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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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있었는데도 눈이 번쩍 떠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고집불통의 완강한 선입견이 나도 모르게 깨졌을 때다. 그럴 때 나는 "오 밥통, 밥통"하며 내 머리통을 두드린다. 이때의 밥통은 완전히 중의적 표현이다. '오, 내가 이렇게 미련했구나'와 동시에 '이 미련함을 떨쳐냈구나'라는 대견스러움, 기쁨 같은 것들이 동시에 춤을 춘다. 그래서 나는 눈을 이미 뜨고 있으면서도 더 크게 뜨고 사방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카프카는 자신의 못된 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려주는 한 권의 책을 일러 '고마운 망치'라고 했지만, 고마운 망치가 어디 책뿐이랴. 한 마리의 개나 고양이, 꽃 한 송이, 노상 발에 밟히는 민들레 한 포기도 적절한 계기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강력한 망치'가 돼 줄 수 있다.

물론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사람인 경우에는 손짓과 발짓과 표정 그리고 목소리 등등이 어우러져서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처럼, 혹은 연극처럼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내가 너다'라고 해버린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혹은 그녀를 잊을 수 없게 된다.

어떤 직업은 나쁘다, 어떤 직종의 사람들은 대체로 도둑의 성향이 있다, 이런 등등의 선입견을 내게 심어준 사람이 있었다. 아니다. 사람이라기보다 사회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 되려나? 그것도 아니면 시대적 분위기? 어쨌든 그놈의 선입견은 일단 내 머릿속에 들어오면 내가 마치 엄청난 철학이라도 완성한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사람이 순식간에 종북좌파로 승격(?)되는 절묘한 이치도 결국 그런 것일 게다.

겉보기에 좋아 보였던 시내버스 계수원

내 나이 열다섯, 아직은 노동조합이 범죄로 간주되던 시절. 풋내가 풀풀 솟는 프리지아 꽃이 도처에서 팔리던 이른 봄날. 서울의 종로 거리 어느 전봇대에 붙은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은 시내버스 회사였다. 시내버스 중에서도 계수원, 안내양은 당연히 아니고 운전기사도 아닌, 정비공도 아니고 계수원. 글쎄, 이런 명칭의 직종도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때는 물론 나도 몰랐다. 어설픈 한자 지식으로 볼 때 뭔가 그럴싸하다는 느낌만 있었다. 계수원이라, 계수원, 뭔가 숫자를 집계한다는 것 같은데 이게 뭘까.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상태. 그래서 호기심이 당기고, 그래서 그 미끼를 덥석 물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미끼도 제법 괜찮았다. 연령이나 학력, 성별은 제한이 없고, 숙식이 제공됐고 월수도 빵빵했다. 사실이야 어쨌든 전봇대에 붙은 광고 내용상으로는 그랬다.

시내버스, 필요해서 타고만 다녔지 운용 회사까지 들어가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넌 인마 너무 어려서 안 돼.' 이런 소리가 나오면 어쩌나 했지만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디서 이제 왔느냐는 듯 어깨를 토닥이며, 두 손을 마주잡고 흔들어대며 환영해줬다. 고아도 아니면서 천애 고아처럼 헤매던 내게 그 이상의 천국은 없었다.

무엇보다 내 한 몸 눕힐 수 있는 전용 침상이 생겼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스무 평 남짓한 공간에 시골의 벽장 같은 침상이 이층으로 주욱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내 것이라는 것이었다. 사물함도 따로 있었고, 신발을 넣는 신발장도 있었고, 새벽에 일어나면 세수하라고 세면대도 마련돼 있었다. 그것은 뭐랄까, 내가 무슨 대단한 벼락출세라도 한 것 같았다.

"어떠냐, 좋냐?"라는 최종 질문이 있었고, 나는 좋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교육이 시작됐다. 꼬박 이틀이 걸린 그 교육에서 무슨 세뇌를 어떻게 당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교육을 통해 '시내버스 안내양은 무조건 도둑X들이다'라는 막강한 선입견을 갖게 됐다. 그 선입견에 따르자면 나는 도둑을 잡거나 혹은 감시하는 대단한 권력자였다. 안내양들은 틈만 나면 돈을 여기저기 마구 감춰뒀다가 미리 약속한 사람이 버스에 오르면 그에게 돈을 준다고 들었다. 그런 못된 짓을 못하게 감시하는 임무가 내게 주어진 것이다.

버스 안내양은 도둑?

도둑과 도둑을 잡는 사람. 한마디로 말해서 피아의 구분이 아주 명확해졌다. 안내양은 도둑이니 나쁜 편이고, 나는 도둑을 잡는 사람이니 좋은 편이었다. 수갑만 없을 뿐이지 나는 이미 경찰관이었다. 단순하기도 하고, 명쾌한 논리도 없었지만, 선입견에 휩싸인 눈으로 바라본 안내양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도둑이었다.

그렇다면 도둑을 잡는 방법은? 어려울 것 하나도 없었다. 시내버스 본부에서 배차시간에 맞춰 운전기사가 시동을 걸면 안내양이 돈주머니를 앞에 차고 버스에 오른다. 그 뒤를 따라서 계수원도 오른다. 안내양의 자리가 정해져 있듯이, 계수원의 자리도 정해져 있다. 안내양으로부터 하나, 둘, 세 번째 좌석. 그 자리는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양보하지 않는다. 설령 임산부가 앞에 서서 숨을 헐떡거려도 일어서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일어서면 안내양의 손이 돈주머니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관찰할 수가 없고, 손님이 몇 명이나 타고 내리는지 또한 파악할 수가 없다. 따라서 계수원은 투철한 사명감으로 정신을 무장해야 하는 것이었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무장한 계수원은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승객이 한 사람 타면 한 획을 긋고, 두 사람이 오르면 두 획을 긋고, 그렇게 해서 다섯 사람이 오르면 바를 정(正)자 하나를 완성하는 것. 이 투철한 사명은 대단히 간단하고 쉬운 것 같지만, 천만에 만만에 이것 또한 기막힌 함정을 품고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12시 즈음까지 돌고, 또 돌고, 또 도는 게 계수원의 임무였다. 안내양은 이틀에 한 번씩 쉬는 시간이라도 있었지만, 계수원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없었다. 잠은 항상 부족했고, 서서 걷는 시간 외에는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여기서 경고 하나. 두 눈을 부릅뜨고 도둑을 지켜야 할 계수원이 졸면 어떻게 될까. 교육 시간에 그 부분도 이미 주입식으로 내 안에 각인돼 있었다. 졸아서는 안 될 계수원이 졸면 한 번에 얼마씩 월급이 깎인다. 계수원이 기록한 손님 숫자보다 안내양의 입금이 많이 나오면? 역시 그만큼 월급이 차감된다.

이 부분은 사실 엄청나게 무서운 조항이었지만, 교육을 받을 당시에는 '까짓 거 안 졸면 되지 뭘, 왜 졸아?'라는 식의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내미는 서약서에 아무 망설임 없이 지장을 꾹 찍었다. 그 서약서의 내용은 지금 상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계수원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계수원의 본적지 부모에게 변상을 요구할 수 있게 돼 있었다. 그래서 본적지 주소와 부모님의 이름까지 착실하게 적어야 했다.

그러면 계수원이 졸았다는 사실을 회사에 보고하는 사람은 누굴까. 안내양? 운전기사? 안내양과 운전기사는 한 편이었고, 잠재적인 도둑이었고, 회사의 감시대상일 뿐 동지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계수원을 감시하라는 임무가 하달될 까닭은 없었다. 그랬다. 계수원을 감시하는 또 다른 눈이 있었다. 버스회사의 간부들이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누구인지 전혀 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들은 버스가 출발할 때 같이 타는 게 아니라 중간의 아무 데서나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손님을 가장해서 올라타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이틀 만에 월급의 절반 이상을 날리다

순진했다기보다 무식했던 나는 그런 식의 구도가 어이없게도 좋았다. 감시와 감시가 얽힌 관계, 얼마나 스릴 있나. 그러나 그 좋은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부터 나는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단 이틀 만에 약정된 월급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사흘, 그날부터는 이제 회사에 빚을 지는 것으로 기록됐다.

희한한 일이었다. 졸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그렇게도 컸건만 버스에 올라서 앉았다 하면 꾸벅하고 안내양을 향해 절을 하듯이 졸았다. 하긴 두 다리를 바닥에 딛고 서서 승객들과 온갖 승강이를 벌이는 안내양도 틈만 나면 졸고 있을 판인데. 만약 계수원이 엉덩이를 의자에 푹 파묻고 있으면서도 졸지 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인형일 것이다.

인형이 아닌 사람이었던 나는 하루하루 사는 것이 빚이 됐다. 날마다 빚이 늘어났다. 조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바를 정 자로 표시한 손님 숫자보다 안내양이 내놓는 수익금이 더 많았다. 항상 그랬다. '혹시 안내양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자기 돈을 보탠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수원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대개 무조건 손님 숫자를 많이 적어서 안내양을 궁지에 빠트리고, 제법 월급도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날마다 빚이 늘어나면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은 못했다. 다만 겁에 질렸을 뿐이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지? 내일은 절대로 졸지 말고, 승객 숫자도 정확하게 적어서 빚을 조금이라도 줄이자'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새빠지게' 하면서도 빚을 지게 되는 구조에 대한 성찰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운명 같은 날이 찾아왔다.

버스에서 굴러 떨어진 난 패잔병이었다

운명이라고,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눈물이 마구 난다. 사실 그날 그녀와의 접촉은 운명이라는 이 두 음절로 정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만약 그날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려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계수원으로 뼈가 굵고 머리통이 커져서 지금쯤은 그 시절의 내 나이 또래들을 끌어들여 갈취하는 악질 다단계 조직이나 용역회사의 부두목쯤 돼 있을 테니 말이다.

계수원과 안내양의 관계는 뭐랄까. 여러 설명 늘어놓을 필요도 없이 그냥 적과 적이었다. 대놓고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경멸한다는 뜻으로 가끔 힐끗 노려보기나 할 뿐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기분은 항상 묘했다. 특히 "오라잇, 오라잇" 해대는 활기찬 목소리와 버스 몸통을 탕탕 두 번 두드리고 재빨리 올라탈 때의 그 역동적인 자세가 은근히 부러웠다.

버스가 움직이고 있는데도 가볍게 올라타고 가볍게 뛰어내리는 그녀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것은 때로 나비 같기도 하고, 작은 새 같기도 했다. 그런 은근한 부러움이 아마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이 왔다. 그날, 차고에 들어선 버스가 천천히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며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문을 열고 사뿐히 뛰어내리는 그녀의 자세가 그날따라 너무 아름다웠다. 나도 해보자. 못할 게 뭐 있으랴. 나는 벌떡 일어섰고, 그녀가 뛰어내린 방식으로 사뿐히 뛰어내렸지만, 내 몸은 그녀의 몸과 같진 않았다.

그녀는 콩나물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반복되는 중노동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게 됐다. 그래서 2~3 미터 정도의 순간적인 공간이동이 가능했다. 일단 버스에 탔다 하면 두세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만 하는 계수원, 그 빌어먹을 놈의 계수원이란 직종을 가진 나는 전혀 그게 안 됐다. 2~3미터의 순간적인 공간이동은커녕 한 걸음을 떼어놓기도 어려울 정도로 몸뚱이가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준비운동도 없이 그냥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버스에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그대로 철푸덕, 아스팔트 바닥 위로 엎어져 버렸다. 입술이 깨지고, 코가 터져 코피가 쏟아지고, 바지가 찢어지면서 무릎도 절단나고, 옆구리와 어깨는 또 어디가 어떻게 됐는지 쑤시고 저리고,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보기가 부끄러웠다. 도둑을 감시하는 계수원이 잠재적인 도둑 앞에서 피투성이가 됐으니 이게 웬 망신이냐. 벌떡 일어서서 계수원 사무실로 달려갔다.

패잔병이 돼버린 계수원을 반겨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상처를 만져주고 위로하며 약이라도 발라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런 여유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계수원은 안내양과 달리 버스회사의 정규직도 아니고 용역업체의 소모품이었으니까. 어쨌든 "병신 육갑 지랄한다"는 둥의 욕만 실컷 얻어먹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숙소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덜덜 떨고나 있었다. 그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안 떠나면 너는 평생 노예야"

약을 사 들고 남자들의 숙소로 찾아온 그녀, 내 이름을 모르는 까닭에 "저기요, 저기" 하면서 두리번거리는 그녀에게 누군가 말을 붙였고, 그리고 잠시 뒤에 그녀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내게로 왔다.

"어쩌다 이런 일을 하게 됐어? 몇 살이야?"
"열다섯."

그 이상은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내 무릎에 약을 발라주며, 옆구리에 파스를 붙여주며 귀에 대고 비밀 지령이라도 내리듯이 소곤거리고 있었다.

"많이 아프겠지만, 내 말 잘 들어. 오늘 밤 늦게 있지. 모두 퇴근하거나 잠들었을 때 말이야. 얼른 떠나는 게 좋아. 오늘 밤 안 떠나면 너는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할지도 몰라."

그 말을 듣고 있는 내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고 있었고, 콧물이 흐르고 있었고, 금방 재채기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랬다.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노예,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 한 마디가 상황을 아주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었다. 노예, 이 두 음절이 강력한 망치가 돼 내 의식을 확 깨우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방향을 일러주는 북두칠성처럼 내 삶의 행로에 깃발 하나를 꽂아줬던 그녀, 지금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 얼굴의 윤곽조차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다정한 손길과 다정한 목소리의 울림에서 얻은 가슴 저릿저릿한 느낌만이 머언 옛날의 전설처럼 내 안에 남아 있을 뿐이다. 어쨌든 그녀, 지금은 할머니가 됐을, 단아하게 검소한 차림으로 찻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만 같은 그녀가 그날 약을 사 들고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그러고 보면 이것 참 신기하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고마운 망치' 같은 사람들만 만나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인지. 열두 살에 집을 뛰쳐나와서 마흔 가지도 넘는 일을 해 오는 동안 내 귀에 대고 '악마의 속삭임'을 들려준 사람도 제법 있었지만, 그때마다 부드러운 비수 같은 목소리로 "아니야, 그것은 아니야" 하고 '악마'의 길로 접어드는 내 발길을 돌려놓는 사람이 나타나곤 했다. 그러니 이것을 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태그:#시내버스, #안내양, #계수원, #착취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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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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