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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국내서 가장 승승장구한 재벌은 단연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이다. 200조원이 넘는 사상최대의 매출과 함께 20조 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올렸다. 순이익 규모만 따지면 삼성을 앞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2000년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계열사로만 그룹을 독립한 이후 처음이다. 덕분에 현대차는 글로벌 빅4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화려한 성장 뒤편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공장에선 노동자들의 밤샘노동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여전하다. 이들의 잇단 자살과 분신도 이어진다. 중소협력 하청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의 아들 정의선 사장의 일감몰아주기 등 편법 경영권 승계도 논란거리다. MB정부 최대 수혜그룹으로 꼽히는 현대차 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편집자말]
 (사진 위) 7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고 신승훈 노동해방열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장'에서 영정과 부활도를 앞세운 운구행렬이 공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 아래)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 선적부두에 모여 있는 수출용 승용차들.
 자신이 근무하던 공장에서 분신사망한 고 신승훈 조합원의 운구 행렬이 지난 7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나서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 선적부두에 모여 있는 수출용 승용차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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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왜 그랬을까. 1960년대도 아니고, 2012년이다. 지난달 40대 젊은 가장이 생을 마감했다.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세계 빅4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성장한 공장에서 말이다. 도대체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오마이뉴스> 취재진이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찾은 이유다.

지난 6일 밤 울산역에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서울서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곧장 울산 남구에 위치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고 신승훈(44)씨의 영정이 있는 3층은 썰렁했다. 그럴 만했다. 고인이 된 지 23일째다. 영정 옆 국화꽃마저 시들었다. 그동안 회사쪽과 한 지리한 협의도 끝났다. 지난 7일 신씨는 애틋한 가족들을 뒤로하고, 영면의 길에 들었다.

 지난 8일 낮 자신이 일하던 울산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 공장에서 분신한 뒤 15일 새벽 사망한 고 신승훈 조합원의 울산영락원 빈소. 영결식을 몇시간 앞둔 6일 오후 11시경 빈소는 조문객을 찾아 보기 어려운 가운데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다.
 지난 8일 낮 자신이 일하던 울산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 공장에서 분신한 뒤 15일 새벽 사망한 고 신승훈 조합원의 울산영락원 빈소. 영결식을 몇시간 앞둔 6일 오후 11시경 빈소는 조문객을 찾아 보기 어려운 가운데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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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현대차 엔진공장에선 무슨 일이

신씨는 지난 21년 동안 회사에 몸담았다. 1991년 소형엔진부에서 일을 시작한 후, 줄곧 엔진 계통에서 일했다. 회사 동료 정아무개씨는 "그는 자동차 엔진 분야에선 뛰어난 현장 전문가였다"고 회고했다. 지난 98년 외환위기 때 현대자동차의 대량 해고도 그를 피해갔다.

권오일 현대자동차 노조 대외협력실장은 "업무에 있어서 매우 원칙적이고 올곧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8일 그는 자신이 일하던 엔진 공장에서 분신했다. 사고 당일 그는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같은 달 15일 끝내 생을 마감했다.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의 아내 허아무개씨는 기자에게 "(남편이) 유서나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없었다"고 했다. 허씨는 "분신하던 날 2시간 전에도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랬나,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다"고 울먹였다. 허씨는 "주변사람들, 노조, 회사 등 아무도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문용문 금속노조 현대차 노조지부장은 "신승훈 동지는 오랫동안 회사쪽에 엔진 품질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면서 "회사는 현장에서 치졸한 감시와 협박으로 그를 철저하게 고립시켰다"고 말했다. 회사의 현장 통제와 탄압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씨의 사실상 유서(?)가 돼 버린 그의 노트북에 적힌 내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분신이 있기 바로 전날(7일) 토요일 주말 특근에 나선 신씨는 현장 관리자와 말다툼을 벌였다. 7일 오전 신씨는 자신의 현장 조립라인 바로 옆 테이블에서 김아무개 조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지켜본 최아무개 부장은 곧장 신씨에게 "작업장에서 벗어나지 마라"고 경고한 후, 과도한 업무지시를 내렸다.

신씨는 당시 "왜 현장 탄압 합니까, 상식이 되는 선에서 말씀하세요. (본사) 감사실 투고 때문에 보복하는 거 아닙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함께 일하던 다른 직원들도 신씨와 함께 회사쪽에 항의하기도 했다.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분신사망한 고 신승훈씨의 장례식이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엄수된 가운데 동료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이 운구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 고 신승훈씨의 장례식이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엄수됐다. 동료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이 운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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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분신사망한 고 신승훈씨의 장례식이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엄수된 가운데 발인 도중에 부인이 오열하고 있다.
 7일 오전 울산영락원에서 엄수된 발인 도중 고 신승훈 조합원의 부인이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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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높여야 한다"는 문제 제기, 돌아온 것은 '극심한 감시와 통제'

신씨는 분신 나흘 전인 지난달 4일 본사쪽 고위층에 엔진품질 문제에 대한 의견서를 보냈다. 1년여 동안 현장에서 품질 개선을 회사쪽에 요청해 왔지만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신씨의 입사동기이면서, 오래된 친구인 강아무개씨의 말이다.

"그가 맡은 S엔진은 현대기아차의 디젤엔진 가운데 가장 큰 겁니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베라크루즈와 모하비 등에 들어가지요. 그런데 그가 현장에서 테스트를 하면서 엔진 출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연료 분사계통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강씨는 "(신씨가) 오래 전부터 S엔진 품질문제를 (회사쪽에) 제기했었다"면서 "하지만 회사쪽에선 문제없다는 식으로 나왔고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씨는 업무에선 완벽할 정도로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면서 "결국 본사쪽에 '글로벌 기업답게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으로 의견서를 냈다"고 전했다. 다시 강씨의 말이다.

"의견서를 내고 난 다음날(5일) 아침 8시에 신씨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목소리가 기분이 좋아보였죠. 본사 A 부사장에게서 '개선조치 하겠다'는 답을 들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6일부터 공장 분위기가 돌변했어요. 본사쪽 감사실에서 현장 조사하러 내려왔고, 신씨의 상사였던 부서장 등이 한마디로 '엄청 깨졌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그리고…."

강씨는 "신씨 자신은 회사를 위해 옳은 이야기를 했는데, 오히려 현장 통제 등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는) '이런 식이면 현장 작업자들이 정상적인 작업을 못한다'고 할 정도로, 회사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엔진사업부의 또 다른 직원은 "신씨 쪽에서 했던 엔진 테스트의 경우 설비가 노후돼서 보완 등의 조치를 했어야 했지만, 회사쪽에선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작년 현대차가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모든 공장에선 기계나 노동자 모두 쉴틈이 없었다.

신씨 죽음은 생산제일주의가 빚은 참극, 울산공장은 '시한폭탄'

강씨 말에 따르면, 신씨는 자신이 맡은 엔진 테스트 공정에 들어가는 설비 제작업체와도 접촉했다는 것이다. 설비 업체가 문제점을 보완해 주기를 바랐지만, 냉랭한 답변만 돌아왔다. 현대차 쪽에서 설비 보강을 위해 투자를 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옳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현대차 쪽에선 이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2월 7일 한달여 만에 신씨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일터를 찾았다. 그의 영정이 마지막 신씨가 일했던 현장에 잠시 멈춰섰다. 옆에 있던 한 동료 직원이 바로 옆 의자를 가리키면서, "저기에서 현장 조장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근무지 이탈인가?"라며 "정도껏 해야지"라며 허탈해 했다.

 지난 8일 낮 현대자동차 고 신승훈 조합원이 분신한 울산 매암동 현대자동차 엔진 5부 공장의 분신 현장이 왼쪽 동그라미 부분이다. 오른쪽 동그라미 부분은 고 신승훈 조합원이 현장 조장과 이야기를 나눈 곳이며 '근무지 이탈'로 지적을 받은 곳이다.
 현대자동차 고 신승훈 조합원이 분신한 울산 매암동 현대자동차 엔진 5부 공장. 왼쪽 동그라미 부분이 분신 현장. 오른쪽 동그라미 부분은 고 신승훈 조합원이 현장 조장과 이야기를 나눈 곳으로 '근무지 이탈'로 지적을 받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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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신승훈 노동해방열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장'이 엄수된 7일 오전 울산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에서 유가족과 동료들이 고인이 분신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고 신승훈 노동해방열사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장'이 엄수된 7일 오전 울산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에서 유가족과 동료들이 고인이 분신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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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 5부에 이어, 소형차에 들어가는 엔진을 다루는 베타엔진 공장 역시 그의 손때가 묻은 곳이었다. 신씨를 잘 안다는 19년차 김아무개씨는 "너무 안타까운 사람이 갔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최근 몇 년새 여기 울산 공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은 거의 제대로 휴식도 못한 채 기계처럼 일하고 있다"면서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거의 폭발 직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직원들은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특히 현 정부 들어 현대차의 급성장과 함께 울산 현지 공장의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져 갔다. 김씨는 신씨 사건이 현장 책임자의 도를 넘어선 탄압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본질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미 회사에 대한 현장 직원들의 불신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황에서 신씨와 같은 사건은 어디서든 터졌을 것"이라고 되뇌었다.

권오일 노조 대외협력실장은 "4년여 전부터 본사에서 이른바 '공장 혁신팀'이라고 해서 사람들을 내려 보냈다"면서 "이들은 말이 혁신이지, 사실상 공장 내부 전반에 걸쳐 사람들에 대한 관리뿐 아니라 현장의 작업 내용에 대해 일일이 간섭했다"고 설명했다. 권 실장은 이어 "그들은 오로지 공장의 효율과 자동차 생산을 늘리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장 혁신팀'은 울산 공장에선 마치 저승사자 같았다. 영결식장에서 만난 17년차 한 노조 대의원은 "치가 떨린다"며 "혁신팀은 현장탄압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 라인을 돌면서 직원들의 휴식 하나하나를 체크해가며 간섭했다"면서 "''앉아 있지 마라', '책 보지 마라' 등 각종 지시 사항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중간 관리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7일 오전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 공장 입구.
 7일 오전 현대자동차 매암동 엔진5부 공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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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팀의 실체는 현대차 내부에서조차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핵심인사였던 윤여철 부회장이 조직을 이끌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울산공장에만 약 20여 명의 인사들이 내려와, 공장 전반에 걸쳐 관리와 품질, 기초질서 등을 정립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신씨 사건을 계기로 공장 혁신팀은 해체됐다. 현대차 노조의 요구를 회사쪽이 받아들였다. 윤 부회장 역시 자리에서 물러났다.

울산공장의 부장급 한 간부는 "요즘 분위기는 말그대로 폭풍전야"라고 말했다. 울산 제1공장부터 5공장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인사 물갈이가 진행됐다. 그는 "윤 부회장과 함께 각 공장별로 혁신팀을 맡아왔던 사람들이 대거 물러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설명했다.

7일 오후 영결식이 끝나갈 즈음, 문용문 현대차 노조 지부장에게 물었다.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요?'라고. 그는 "정몽구 회장의 생산제일주의가 결국 신씨와 같은 참극을 불러온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오후 신씨의 영정을 태운 운구행렬이 회사 밖을 빠져 나갔다. 공장 안은 금세 평온을 되찾은 듯보였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고, 멍한 느낌이다. 전날 밤 나눈 신씨의 부인 허씨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의 힘겨운 말이다.

"열사라고 하는데요. 안 반가워요. 영결식요? 솔직히 필요없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요. 남들이 뭐라하든, '너희 아빠는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생각해봤어요. 도대체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고요. 가만히 지금 보니까, 현대차 내부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나 싶어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아반떼 생산 라인.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아반떼 생산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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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받습니다. 현대차와 거래했던 하청업체나, 자동차 품질문제로 곤란을 겪으신 분들은 <오마이뉴스>로 연락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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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많은 분들께 배우고, 듣고, 생각하는 고마운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