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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이 없었도 걱정이 없다. 김유평씨네에서 푸지게 가져온 마른김, 구운김이면 족하다. 김유평씨는 감칠맛 나는 김을 주고 나는 농사진 쌀을 가져다 준다.
 반찬이 없었도 걱정이 없다. 김유평씨네에서 푸지게 가져온 마른김, 구운김이면 족하다. 김유평씨는 감칠맛 나는 김을 주고 나는 농사진 쌀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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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전남 고흥에 정착, 3년째로 접어들면서 가장 실감하고 있는 말이 '푸지다'이다. 음식은 물론이고 인심도 푸진 곳이 바로 고흥이기 때문이다.

집터를 소개해준 서군섭씨로부터 종종 받아먹고 있는 바지락. 우리 집 고물 자동차가 진흙탕에 처박히고 말썽을 부릴 때마다 119 구조대원처럼 나타나 도움을 주었던 서영효씨. 이런저런 인사말도 없이 논두렁에 불러 앉혀놓고 싱싱한 생선회와 소주잔을 건네며 나이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친구 하자고 하는 입심 좋은 동갑내기 최공식씨가 그랬듯이 친구 인심 또한 푸지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다. 가톨릭농민회에서 오랫동안 몸담아오면서 고흥의 생태운동을 이끌어오고 있는 김부일씨로부터 이사 오자마자 건네받은 두 박스가 넘는 토종 씨감자와 바지락, 파래.

농자재는 물론이고 고흥 곳곳의 낚시 포인트를 점찍어 줘가며 자신의 트럭을 이용해 땔감을 공수해주고 있는 김동관씨. 그는 치열했던 1980~1990년대 노동운동의 한 복판에 있다가 지금은 논밭을 일구며 홀로 작은 섬에 들어가 생태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어디 이분들뿐이겠는가? 핵발전소 반대운동을 통해 만났던 임규상, 강복현 선생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고흥 사람들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웃사촌으로 반기며 그분들이 건냈던 그 푸진 마음자리 덕분에 생면부지의 낯선 땅 고흥에서 힘들지 않게 정착하고 있다.

먹거리 또한 푸지다. 고흥에서 요즘 우리 가족의 소박한 식탁을 푸지게 만들어주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김이다. 김은 거의 매 끼니마다 빠짐없이 나오는데 그 김은 그냥 김이 아니다. 예전에 먹었던 그런 김과는 사뭇 다르다.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이나 정월 대보름이 돌아와서야 겨우 맛볼 수 있었던 김, 바로 그 고소한 김 맛이 난다.   

우리 집 밥상을 푸지게 해주는 김유평씨네 '김' 

나는 단지 상추 몇 다발을 건넸는데 김유평씨네는 열톳이 넘는 김 다발을 선사했다. 푸진 고흥의 인심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단지 상추 몇 다발을 건넸는데 김유평씨네는 열톳이 넘는 김 다발을 선사했다. 푸진 고흥의 인심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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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김에는 도화면 발포에서 김 가공공장을 하고 있는 박원희, 김유평씨 부부의 정성스런 손맛이 담겨 있다. 김유평씨 부부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재작년 겨울이었다.

평택 대추리 평화공원에 설치했던 작품 '파랑새'를 조각했던 조각설치작가 최평곤 선생의 부탁을 받고 김 공장에서 나오는 대나무로 만든 김발을 구하기 위해 처음 찾아갔다. 주로 대나무를 이용해 설치조각을 하고 있는 최 선생이 버려지는 김발을 재활용하여 설치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유평씨네 김 가공공장을 달랑달랑 빈손으로 찾아가기가 민망해 초겨울까지 푸르게 밭 한구석을 지키고 있던 상추를 한 박스 뜯어갔다. 사정 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상추를 정말 잘 먹겠다"며 산타클로스의 선물 자루만큼이나 커다란 비닐봉지에 뭔가를 가득 담아 건네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워 주저주저 건네받은 그것은 바로 김이었다. 한두 톳 정도로도 충분히 감지덕지할 판이었는데 열 톳 넘게 건네주었던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우리 가족이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우리는 그 김으로 신세를 졌던 주변 사람들에게 인심까지 쓸 수 있었다. 고마운 이웃사촌이 되어준 김유평씨 부부는 지금까지 우리 식탁에 김이 떨어지지 않게 채워주고 있다. 나는 그 고마움에 바다낚시로 건져온 횟감으로 소주 한잔 나눌 수 있는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올해는 김에 대한 보답으로 농사 지은 쌀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미식가와는 거리가 멀다. 반찬이 없으면 없는 대로 맹물에 밥 말아 마른 멸치 하나로도 족할 정도로 대충대충 먹어가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전남 고흥에 와서 입맛이 달라졌다. 낚시대를 메고 바다로 나서면 먹을 수 있는 횟감이며 입에 착착 달라붙는 김유평씨의 김 때문이다. 그의 구운 김은 보통 구운 김보다 기름을 적게 발라 김 고유의 맛이 살아 있다.

마른 김 또한 달콤하면서도 고소하다. 그 김으로 양념간장에 김밥처럼 말아먹거나 바다낚시를 다녀오는 날이면 생선회를 싸 먹기도 한다. 때로는 불에 살짝 구워 군것질거리로 삼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 식구와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의 입맛을 좋게 하는 김유평씨의 김. 아무런 첨가제도 넣지 않았다는 그의 김에는 어떤 특별한 맛을 내게 하는 기술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 물었다.

"김 만들어내는데 뭔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남유?"
"뭔 특별한 기술이 따로 있겄소. 우선 자색 빛을 띤 유리알처럼 맑은 빛깔의 좋은 물김을 구입해야제. 그 김을 공장에 가져와 상하지 않게 적당히 절단하고 숙성시켜야 하는디, 김 맛이 좋은 이유를 딱히 이것이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청정 바다에서 나온 김 본래의 맛을 잘 살려내고 그것을 다시 적당한 습도와 온도에 맞춰 뽑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김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김 냄새와 더불어 바다 냄새가 난다. 그의 김 만들기 비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0여 년 간의 김 공장 경험과 어장, 김 양식장 등을 통해 평생 거친 바다와 부대끼면서 얻은 노하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로도 화력발전소 때문에... 김씨의 낯빛이 어두워

지난 2월 9일. 발포항 물김 경매장
 지난 2월 9일. 발포항 물김 경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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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다는 김유평씨네의 감칠맛 나는 김. 그럼에도 요즘 그의 낯빛은 밝지 않다. 나로도에 추진하고 있는 화력발전소 건설 계획 때문이다.

"조류가 화력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는 나로도에서부터 이곳 도화면 쪽으로 흐릅니다. 그 발전소에서 나오는 온폐수 때문에 김 양식장이 피해를 입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김 공장도 타격이 클 것이 아니것소. 그 피해가 어디 김뿐이겠습니까? 나뿐 아니라 어민들 모두가 걱정이요. 화력발전소 건설이 결정되고 나서 어민들이 일손 놓고 머리띠 동여매는 사태가 발생해서야 쓰것소."

세상살이는 끈처럼 연결되어 있다. 김 양식장이 피해를 보면 김값이 올라 김 공장도 피해를 볼 것이다. 어민들에게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피해는 좀 더 값비싼 김을 사 먹어야 하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김 양식장이 피해를 입어 물김값이 오르는 만큼 소비자는 좀 더 비싼 가격으로 김을 사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2월 9일 오전 10시. 고흥군의 김 산업의 현황과 김 양식을 하는 어민들은 화력발전소 건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발포항으로 나섰다. 발포항은 김유평씨가 물김을 구입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발포항이 들어서 있는 도화면 앞바다는 김 양식장으로 유명하다. 고흥에서 가장 많은 김 양식장이 들어서 있다. 김유평씨의 김을 감칠맛 나게 해주는 청정해역의 김양식장들이 즐비하다.

바다 날씨가 차다. 선착장에는 어선 가득 물김을 싣고 나온 김 양식장 어민들이 보인다. 장작불을 지펴놓고 옹기종기 모여 언 몸을 녹이고 있다. 선착장에는 양식장 어민들의 어선들 뿐만 아니라 김유평씨처럼 물김을 구입하러 나온 김 공장 트럭들이 선착장에 줄지어 세워져 있다.

김유평씨가(도화면 발포리) 질 좋은 물김을 구입하기 위해 경매장에 나온 물김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김유평씨가(도화면 발포리) 질 좋은 물김을 구입하기 위해 경매장에 나온 물김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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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식장에서 나온 물김. 유리알 처럼 맑은 빛깔을 띤 물김이 좋다고 한다.
 김양식장에서 나온 물김. 유리알 처럼 맑은 빛깔을 띤 물김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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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각지에서 발포항에 물김을 싣고 들어온 어선들은 어림잡아도 40여 척. 그 어선 틈에 김유평씨가 보인다. 두 줄로 선착장을 가득 메운 어선 한 척 한 척을 둘러보며 물김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있다. 그의 감칠맛 나는 김 만들기의 또 다른 비결은 거기에 있었다.

고흥군의 물김 경매는 김 양식장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도화면 발포항과 구암항 두 곳에서 이루어진다. 김 수확을 할 수 없을 만치 큰 파도가 일지 않는 이상 요즘은 거의 매일같이 경매가 이루어진다. 물김 경매장에 나선 구매자들은 고흥에서 뿐만 아니라 완도, 진도, 해남을 비롯해 충남 서천에서도 찾아온다. 그만큼 올해 고흥군의 김 양식은 풍년이다.

한국 김 산업연합회에서 내놓은 가격동향을 보면 2011년 11월 현재 전국 물김 위판가격이 2010년 11월에 비해 16% 상승했다고 한다. 품질이 저조했음에도 전년에 비해 상승 가격이 높은 것이다. 그 이유는 올해 채묘 이후 수온이 높아졌고 엽체 탈락 등 전반적인 작황 저조로 생산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남 지역의 가격 상승폭은 컸다. 특히 고흥지역은 생산량이 많았음에도 타 지역의 생산 감소로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위판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고흥지역의 김 작황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수온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올해도 마찬가지로 고흥군의 김은 풍년이다.

한국김산업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고흥군을 포함한 전남 지역의 김 생산 시설은 2012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김 생산 시설의 7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청정해역 고흥군의 김 작황이 가장 좋게 나와 있다. 그만큼 김 생산에 적합한 청정해역이기 때문인 것이다.

대부분 지역의 위판가격이 작년보다 높게 형성된 가운데 전남지역의 가격 상승폭이 컸음. 특히 고흥지역은 생산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타 지역의 생산 감소로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위판가격이 크게 상승했음.(2011. 12. 13. '한국 김산업연합회 가격동향' 중에서)

'김의 날' 행사는 성대하게 치렀지만...

지난 2월 6일. 전남 고흥에서 열린 '김의 날'행사장에 나온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고흥군수. 지역국회의원. 전남 도지사 등 모든 사람들이 청정해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월 6일. 전남 고흥에서 열린 '김의 날'행사장에 나온 농림수산식품부 차관. 고흥군수. 지역국회의원. 전남 도지사 등 모든 사람들이 청정해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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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에서 내걸은 '대한민국 웰빙 김 페스티벌'과 청정고흥 군민행동'의 '김 축제 하면서 화력발전소 왠말이냐'가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고흥군에서 내걸은 '대한민국 웰빙 김 페스티벌'과 청정고흥 군민행동'의 '김 축제 하면서 화력발전소 왠말이냐'가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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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 때문일까? 청정 해역 고흥군에서는 지난 2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에 걸쳐 제1 회 전국 '김의 날' 행사가 열렸다. 농림수산식품부가 2010년 한국 김 수출 1억 불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2월 '김의 날' 선포식을 갖고 김 산업 발전과 소비촉진 등을 위해 매년 정월대보름 '김의 날' 행사를 갖기로 한 것이다.

KBS 보도에 따르면 올해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김 수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는 68개국에 1억5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하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핵발전소 재앙의 영향으로 일본 수출이 지난해보다 158% 증가했다.

이날 '김의 날' 행사장에 나온 오종규 농식품부차관은 깨끗한 바다가 경제 성장의 동력임을 강조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 역시 바다가 미래의 식량창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흥 출신의 박상천 의원(민주통합당, 고흥군 보성군) 또한 우리나라가 김 수출 세계 1위를 달성한 것은 청정해역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박병종 고흥군수는 고흥군의 김 소득이 높은 이유 중에 하나로 청정 해역을 꼽았다.

행사장 연단에 나선 사람들은 다들 김 수출 세계 1위의 일등 공신을 청정해역으로 손꼽고 있었지만 행사장에 모인 고흥군의 김 양식장과 김 공장을 운영하는 어민들 대부분은 즐거운 행사가 될 수 없었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김 산업이 청정해역 덕분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지만 고흥군에서는 그 김 양식장을 위협하는 화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김 양식장을 위협하게 될 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해 고흥군수는 왜 무엇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설마 화력발전소가 김 양식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발포항에 물김을 싣고 온 김양식장 어민들이 선착장 주변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녹이고 있다.
 발포항에 물김을 싣고 온 김양식장 어민들이 선착장 주변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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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 양식 어민들은 화력발전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민들은 고흥군수처럼 화력발전소 건설 추진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다. 2월 9일, 발포 선착장에 물김을 싣고 나와 장작불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도양읍 시산리 김병진 어촌계장에게 물었다.

"나로도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우리들 김 양식은 끝장나요. 온폐수가 하루에 2000만 톤이나 쏟아져 나온다는데 그 물이 다 어디로 가겠어요? 김 양식장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김은 바닷물 온도에 아주 예민해요.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김뿐만 아니라 미역이나 모든 해조류가 좋지 않습니다. 수온이 높아지면 김 양식이 안 돼요. 올해 다른 지역의 김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은 바다 온도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시산리 마을 100여 가구 중에 40여 가구가 김 양식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김병진 어촌계장은 40여 년에 걸쳐 김 양식업에 종사해온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오고 있다 한다.

"우리는 대대로 양식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바다가 평생 직장이고 직업입니다. 바다 일 아니면 다른 것 할 것이 없습니다. 김 양식을 하지 못하면 밥줄이 끊어집니다. 나뿐만 아니라 어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 반대할 것입니다.

고흥 일대가 청정 해역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데 화력발전소 들어오면 관광객이 안 옵니다. 농산물이나 수산물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잖아도 FTA로 농어민들이 힘든데 이런 거 추진해서 더 힘들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도회지 나갔다가 도시 생활이 힘들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바다라는 터전이 있으니까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바다가 오염되면 다시 도회지로 나가야 합니다. 화력발전소 추진에 대한 설명회나 공청회가 열린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각 부락 별로 공청회를 열어서 결정해야 합니다. 고흥군민들의 의견을 모아서 타당성 있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당장 지역경제가 활성화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큰 손해입니다. 무엇보다도 고흥 앞바다는 우리 바다이기도 하지만 후손들에게 물려줄 바다이기도 합니다. 바다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잠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용이 끝나면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 줘야 합니다. 내가 선조들에게 물려 받았으니 당연히 후손들에게 물러줘야 하질 않겠습니까?"

김병진씨처럼 이날 발포항에서 만난 어민들은 화력발전소 추진 결사반대를 했다. 화력발전소 얘기를 꺼내자 마자 다양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당연히 화력발전소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깟 전기 좀 쓰겠다고 이 바다를 버려! 차라리 나무불 때고 사는 게 낫지."
"화력발전소가 추진되고 있는 나로도에서 어장까지 5분 거리입니다. 온수는 물론이고 분진가루까지 날릴 것입니다. 핵발전소는 터지면 끝장나지만 화력발전소는 1년 열두 달 문제가 됩니다."
"고흥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청정한 해역인데 이것까지 없애야겠습니까?" 
"에이, 걱정 없어요. 말도 안 되지라, 어민들 피해가 빤한데 설마 화력발전소가 들어오겠소, 군수님도 그런 사실을 모르것소? 안 들어올 겁니다."

"어민들이 머리띠 동여메는 사태가 발생해서야 되겠소"

발포항 경매장에서 '청정고흥을 지키기 위한 군민행동' 사람들이 나눠 준 화력발전소 관련 전단지를 꼼꼼하게 읽고 있는 어민들
 발포항 경매장에서 '청정고흥을 지키기 위한 군민행동' 사람들이 나눠 준 화력발전소 관련 전단지를 꼼꼼하게 읽고 있는 어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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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경매가 시작됐다. 중매인들이 선착장에 세워진 어선에 실려진 물김의 상태를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단가를 매긴다. 김 양식장 어민들은 좋은 가격을 받길 기대하면서 지켜보고 수협 경매사들은 중매인들이 제시한 가격을 확인한 후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책정해 입찰을 결정한다.

발포항 경매장에 나온 어선들은 모두 43척에 물김 270톤. 위판금액은 1억7천여만 원. 고흥의 또 다른 경매장인 구암 경매장에 나온 어선들은 54척에 물김 280톤. 위판금액은 1억6400만 원. 2월 9일. 청정 고흥 해역에서 단 하루 동안 3억3천만 원 어치가 넘는 물김 550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고흥 수협 지도과장이 말에 따르면 올해는 10월 하순경에 두 차례의 경매가 있었고 다시 11월 중순부터 거의 매일같이 경매가 이뤄지고 있고 4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라고 한다.

경매가 진행되기 전부터 어민들 사이사이를 비집고 다녔던 시민단체 사람들이 보인다. 화력발전소에 관련된 전단지를 나눠주고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전단지와 서명용지를 옆에 끼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최한선, 임진희씨 부부에게 어민들의 반응을 물었다.

"대신 고생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나로도에 화력발전소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발포항에 나온 거의 모든 어민들이 결사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준비해온 서명용지가 벌써 바닥이 났네요."

이처럼 어민들이 결사반대를 하고 있는데 고흥군수는 왜 어민들 편에 서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것일까? 핵발전소를 추진했을 때처럼 절차상 고흥군의회에서 반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입찰 받은 물김들이 중매인들의 트럭에 실리고 있다. 2월 9일. 발포항에서만 270톤,1억 7천여만원 어치가 거래됐다.
 입찰 받은 물김들이 중매인들의 트럭에 실리고 있다. 2월 9일. 발포항에서만 270톤,1억 7천여만원 어치가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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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김유평씨가 보인다. 입찰받은 물김을 트럭에 옮겨싣는 데 정신이 없다. 인사말을 건넬까 하다가 그의 지친 얼굴빛을 확인만 하고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더 이상 청정해역 고흥에서 생산되는 감칠맛 나는 그의 김을 맛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력발전소로 피해를 보게 될 것이 어디 김 산업에 종사하는 어민들뿐이겠는가. 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 고흥의 푸진 인심조차 맛볼 수 없게 될 것이다. 고흥은 싸움터로 변할 것이고 사람들의 인심은 흉흉해질 것이다. 싸움이 일어나면 고흥 전체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 싸움에는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은 물론이고 그 사람을 먹여살리는 청정고흥 전체가 피해자가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어민들이 일손 놓고 머리띠 동여 매는 사태가 발생해서야 되겠소"라고 말했던 김유평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싸움을 원치 않고 있다. 내년에도 열리게 될 대보름 '김의 날' 행사장에 축복받은 청정해역 고흥군 어민들이 머리띠를 동여 매지 않고 웃는 얼굴로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흥뉴스에도 보냅니다.



태그:#푸진 인심, #푸진 김맛, #김산업 어민들, #나도로 화력발전소, #결사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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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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