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7일 오후 8시 참여연대 통인카페에서 열린 “왜 법원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을까?” 토론회 현장.
 7일 오후 8시 참여연대 통인카페에서 열린 “왜 법원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을까?” 토론회 현장.
ⓒ 김경훈

관련사진보기



"김명호 교수가 석궁 안 들 수 있었다. 그분이 석궁사건 있기 전에 1년 6개월 동안 1인시위를 했는데, 판사가 그분을 한 번만 만나줬어도 그 상황까지 내몰려 황당한 돈키호테 같은 영웅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허재현 <한겨레> 기자)

석궁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를 정통으로 겨냥했고, 보기 좋게 명중했다. <부러진 화살> 개봉에 따라 뿌리 깊은 사법 불신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시민과 함께한 사법개혁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7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통인카페에서 열린 '왜 법원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을까?' 토론회에서 시민들은 "국민과 소통하는 사법부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에는 전문가 패널로 한상희 건국대 교수, 허재현 <한겨레> 기자, 김남희 변호사와 4인의 시민패널이 참여했다.

"법원이 소통하고 싶다면 사법피해자부터 만나야"

1부에서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중심으로 석궁사건 재판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허재현 기자는 "결정적 증거인 부러진 화살이 없는 상태다, 검찰은 '(화살의 행방을) 모르겠다'고 했는데 재판장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 기자는 또 한 판사가 "석궁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난 건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사건의 복잡성, 중대성을 봤을 때 심리를 너무 빨리 진행했다, 너무 빨리 하다보니 설득력 없는 심리가 됐고 그래서 불신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한 말을 전하며 석궁사건 재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러진 화살> 포스터
 <부러진 화살> 포스터
ⓒ 아우라픽쳐스

관련사진보기

김남희 변호사는 "재판기록은 못 봤지만, 영화만 놓고 볼 때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법원이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종종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인의 처지에서 중요한 증거자료라 생각해 제출했는데 재판부는 사소하게 취급할 때가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럴 때도 설명 같은 건 거의 없다, 변호사가 보기에도 황당할 때가 있는데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말 황당할 때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사법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재판에서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문제가 있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고 그에 대한 법원의 답변을 듣고 싶어한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며 "구조적으로 사법부를 불신하게 되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교수는 또 서울중앙지법이 주최한 '소통 2012 국민 속으로' 행사와 관련해 "소통하고 싶으면 1인시위 하는 사법피해자의 이야기부터 들어야 한다"며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소통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 청중은 사회자가 <부러진 화살>을 본 소감을 묻자 "재미있었는데 찝집했다"고 답한 뒤, "김 교수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대항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며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있으면 꾹 참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법시스템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사법부 불신의 원인을 짚어봤다. 가장 큰 쟁점은 전관예우였다. 김 변호사는 "법관들은 전관예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전관 출신이라고 해서 재판 승패가 바뀔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만, 증거신청을 잘 받아주고 설명을 해도 잘 들어주는 등 편의를 봐주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승패는 가르지 않더라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재판이 공정하지 않다는 불신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2심에서 전관이 선임되면서 1심 재판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전관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법피해자를 만나면 자신이 느끼기에도 그렇고 변호사도 그렇고 재판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다가 상대편에 전관이 선임되니까 갑자기 조정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한다"며 "국민들은 전관예우가 있다고 느끼는데 법원은 입을 닫는다"고 비판했다.

시민패널로 참석한 권오재씨도 법원이 "전관예우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비판했다. 권 씨는 "전관에게 돈을 더 주는 식으로 법조시장이 형성돼서 우리 법률을 왜곡하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법원도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이 사법개혁의 주체가 돼야"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전 교수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전 교수
ⓒ CJ E'&M

관련사진보기


이어 3부에서는 사법부에 바라는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김 변호사는 "뿌리 깊은 사법부 시스템과 사법부 문화가 민주화된 사회와 괴리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며 "사법부 시스템이 더 공정하고 민주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패널로 참석한 정주호씨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낸 책자에 '식민주의' 청산이 과제로 나와 있다"며 "우리가 해방되고 60년이 넘었는데 재판의 형태는 일제 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사회가 많이 변했는데 유일하게 안 변한 게 법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패널 권오재씨는 "사법개혁의 주체는 국민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여기 나오신 한 교수나 김 변호사가 착한 교수, 착한 변호사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분들도 사법연수원 등으로 법조계 인사들과 얽힌 관계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런 착한 교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법정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해 사법부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당부하며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한 법정영화에서 판사가 판결문을 읽을 때 '그러나'란 말이 7번 나오는 장면이 있다. 한 쪽 입장을 이야기하다가 '그러나' 하면서 반대쪽 의견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만큼 법관이 판단을 할 때 양쪽 이야기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설명한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설명하고 판결을 내리면 모든 당사자가 수긍하고 동의한다. 우리 사법부도 그런 사법부가 되어야 한다."(한상희 건국대 교수)

한편 석궁사건의 당사자인 김명호 전 교수가 <판사, 니들이 뭔데>라는 책을 낼 예정으로 알려져 앞으로도 사법개혁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김경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사법개혁, #부러진 화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