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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에 돌입한 MBC 노조원들이 6일 오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총파업에 돌입한 MBC 노조원들이 6일 오후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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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가 이어지던 지난 2008년. 집회 현장을 취재하다 전경이 휘두른 방패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은 전경들은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도 힘들었습니다. 고함과 구호가 난무하는 현장에서 분한 마음에 혼자 핏대 올리며 항의를 하던 찰나, 누군가 어깨를 잡아끌었습니다.

"MBC 기자분이시죠? 진정하고 이 상황을 취재해 주세요. 방송에 나올 데라곤 MBC밖에 없는데 이러고 계시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집회 현장에 어울리지 않게 양복을 입은 중년의 신사였습니다. 자신도 어제 <뉴스데스크>를 보고 집회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던 저는 다시 수첩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를 말려주던 그 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힘내라'며 캔 커피 쥐어주던 아주머니는 또 어디에 계십니까. "MBC하고만 인터뷰 하겠다"며 순간 '우쭐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시민들은 이제 어디에 계십니까.

크고 작은 집회 현장에서 쫓겨나고, 명망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마저 인터뷰를 거절당하는 지금에 와서야 고백합니다. '정권이 바뀌면, 사장이 바뀌면 달라지겠지'하며 쉽게 체념했음을. 뉴스가 누락되고 내용이 편파적이더라도 '내가 리포트하는 건 아니니까'라며 외면했음을. 또 다시 '공정방송'이란 구호를 외치기가 두렵고 피곤했음을.

입사 6년차... 또 다시 마이크를 내려놓습니다

이제 입사 6년차. 4번의 파업과 2번의 제작거부로도 모자라, 또 다시 마이크를 내려놓습니다. 제작거부와 파업이 이어지는 순간에도 보란 듯이 일본에서 패션쇼를 관람하는 사장을 상대로, '퇴진' 구호를 외쳐야 하는 답답하고 외로운 싸움에 또 한 번 나섭니다.

그래서, '지금껏 뭐하다 이제야...'라는 따가운 눈총에 적잖이 뜨끔하면서도 가슴 아픈 것이 사실입니다. 사내 게시판을 통해, 혹은 기자 총회를 통해 수차례 불공정 보도를 질타하는 목소리에도 꿈쩍 않던 사측은 재빠르게 '불법 파업' 딱지를 붙이고 '징계 방침'을 내놨습니다.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경영 실적이 유례없이 좋았다며 일반 사기업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낯 뜨거운 홍보 문구를 앞세웁니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고민해온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오히려 'MBC의 경쟁력을 약화 시킨다'며 호통을 칩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MBC노조 파업 닷새째인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열린 '죽은 공영방송 MBC를 추모하는 노제'에 참석한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이 헌화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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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MBC'는 죽었습니다. 지난 3일, 명동에선 조합의 '노제'가 열렸습니다. 자신이 사랑하고 자긍심을 가져온 일터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던 동료 조합원들의 무거운 눈빛, 잊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내린 사망 선고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는 그 순간, 공영방송은 이미 그 존재의의를 상실했다는 사실, 저를 포함한 동료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설 수 있게 힘을 보태주십시오

그래서 이 싸움,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상식' 대 '몰상식'의 싸움에 적절한 타협점이 있을 수도 없습니다. 실망하면서도 여전히 MBC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저 또한 '희망'을 걸고 취재 수첩을 놓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다시 설 수 있게 힘을 보태 주십시오. '이럴 땐 MBC가 취재를 해야 한다'던 중년 신사의 질책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 아주머니가 건네던 따뜻한 캔 커피 한잔 다시 마셔보고 싶습니다. MBC 로고가 새겨진 마이크를 자랑스럽게 꺼내들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그날, 당당하고 즐겁게 취재하고 싶습니다.

공영방송 MBC의 주인은 정권도, 사장도, 그리고 노조 조합원들도 아닙니다. 'MBC의 진정한 주인', 지금 어디쯤에 계십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주린씨는 MBC 기자입니다.



태그:#MBC노조 파업, #김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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