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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19일 이명박 정부가 폐지했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부활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재벌개혁 분위기를 다시 고조시키고 있다. 출총제는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적 규제완화 정책의 상징으로서 2009년 3월에 폐지되었는데 최근 재벌개혁 바람을 타고 민주당이 출총제 부활을 제기한 데 이어 한나라당까지 이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얼마나 과도하게 진행되었길래 한나라당까지 출총제를 들고 나왔을까? 이를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재벌이 거느린 계열사가 얼마나 급팽창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선 지난 1년 동안 늘어난 재벌 계열사를 확인해보자. 2010년 말 기준 재벌 계열사는 모두 1350개였다. 딱 1년 뒤인 2011년 말 기준 1629개가 되었다. 1년 동안 모두 279개의 재벌 계열사가 늘어났으니 토요일과 공휴일 등을 뺀다면 매일 하나 이상의 회사가 재벌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유가증권 상장회사와 코스닥 상장회사를 전부 합한 규모인 1800여 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즉, 우리나라 유력 기업 치고 재벌 계열사가 아닌 기업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 4년, 매일 하나씩 늘어난 재벌 계열사

그러다 보니 현재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도는 이미 외환위기 직전 수준까지 도달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의 재벌개혁이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삼성만 놓고 보아도 이명박 정부 집권 이전에는 5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 후 4년 동안 계열사를 지속적으로 팽창시켜온 결과 지금은 79개 회사가 삼성 밑에 있게 되었다. 한편 참여정부가 시작되던 2002년 삼성 계열사 수는 63개로, 참여정부 5년 동안에는 오히려 계열사가 4개 줄었지만 이명박 정부 4년 동안에는 20개가 늘었다.

재벌 계열사의 급팽창과 출총제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바로 계열사 확장에 필요한 자금 동원 문제이다. 그 많은 계열사를 재벌그룹 내부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출자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은 총수의 개인 자금으로 투자하지 않고 기존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동원하여 출자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해왔다. 지금도 그렇다.

그림1을 보면 삼성에서 총수 일가가 단 1주라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는 2011년 4월 기준 전체 78개 계열사 중 16개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5%가 넘는 경우는 전체 계열사의 10분의 1도 안 되는 6개뿐이다. 이재용의 지분이 많은 삼성에버랜드를 포함하여, 서울통신기술, 가치네트, 삼성생명, 삼성SDS, 삼성자산운용이 그것이다. 심지어 삼성의 대표기업 삼성전자도 총수와 친족이 보유한 지분이 총 5%가 안 된다.

대부분의 계열사 지분을 총수와 그 친족이 아니라 그룹 내 주력 회사들을 통해서 소유하고 있다
▲ [그림1]삼성그룹 계열사 지분 소유 방식 대부분의 계열사 지분을 총수와 그 친족이 아니라 그룹 내 주력 회사들을 통해서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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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와 친족은 삼성에버랜드, 삼성생명 같은 핵심 기업의 지분만을 직접 다량 보유하고, 그 다음에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포함하여 다른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지배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다시 이들이 그 이하의 계열사들의 지분을 취득하여 지배하는 형식으로 삼성의 계열사 소유와 경영 네트워크는 짜여있다. 다른 재벌들도 대동소이하다. 총수가 각 기업을 직접 소유하는 관계보다는 그룹 내부 기업 사이의 출자와 지분 소유에 의한 계열사 편입 관계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삼성의 총 78개 계열사 자본금 총액 대비 총수와 친족이 가지고 있는 총 지분은 0.99%밖에 안 된다. 그러나 내부 계열사들이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비중은 41.97%에 달한다. 심지어 그룹사 소속회사가 9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여 계열화된 회사도 25개나 되는데 이들 회사는 모두 비상장 회사다. 현재 삼성그룹 78개 소속사 가운데 상장된 회사는 19개뿐으로 24% 정도만이 상장되어 있다. 출총제가 왜 새삼스럽게 재벌개혁의 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반도체 회로판 같이 복잡한 '삼성의 출자관계도'

계열사의 출자를 통해 확장해나간 결과 계열사 사이의 출자 관계는 극도로 복잡해지게 된다. 그림2는 필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소속 회사 간 주식 보유 현황' 공시자료를 가지고 2011년 4월 시점 삼성 내부의 출자관계를 도식화시켜 본 것이다. 도저히 종이 한 장에 담기 어려운 복잡한 관계이다. 삼성전자에서 과거에 설계했을 법한 반도체 회로기판쯤 되는 모양이다.

2011년 4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 색칠한 회사는 상장회사, 나머지는 비상장 회사.
▲ [그림2]삼성그룹 계열사 사의 지분출자 관계도 2011년 4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 색칠한 회사는 상장회사, 나머지는 비상장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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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을 좀 살펴보자면 우선 경영승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에버랜드 지분 25.1%와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 20.7%를 그룹 소유, 경영구조의 정점으로 하여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의 순환출자구조가 2000년대 내내 삼성그룹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는 이재용 체제로 경영승계가 완전히 넘어가는 시점에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삼성의 출자 관계구조가 복잡한 것은 전통적인 중심 기업, 예를 들어 제일모직이나 삼성생명, 삼성증권, 호텔신라 등의 출자관계가 복잡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해온 이들 전통 중심 기업이 계열사 확장 과정에서 공동출자를 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셋째, 막대한 자금능력을 보유한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하는 직접 계열화 쪽으로 삼성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 새로운 특징으로 등장했다. 최근 웬만한 신규 제조회사 설립은 계열사들의 복잡한 공동출자가 아니라 삼성전자의 직접 단독출자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그룹이 점점 '삼성전자그룹'으로 변하고 있다고 할까? 실제 그림2의 하단에 표시된 계열사들은 모두 삼성전자의 출자 기업들이다.

넷째, 삼성 내부에 2차 중심기업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데, 예를 들어 ① 에스원을 중심으로 하는 보안 기업, ② 삼성메디슨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 기업, ③ 삼성SDS를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웨어기업, ④ 삼성정밀화학을 중심으로 하는 화학 기업 등이 부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재벌 대기업들은 통상 이런 식으로 부심을 만들어내고 3세나 4세로 세대가 바뀌면 자식들에게 이를 나눠주면서 재벌 계열분리를 해나갔다. 과거 삼성에서 CJ와 한솔제지와 신세계가 분리되어 나간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사의 세대 교체방식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모든 재벌기업들이 세대를 걸쳐 반복하면, 아마 조만간 우리사회의 주요 기업들은 거의 재벌 패밀리로 얽히게 될지도 모른다.

출총제 도입하려면 실효성 있는 '2002년 식'으로

2008년 말까지 1137개였던 재벌 계열사 숫자가 출총제가 폐지된 2009년 3월 이후부터 매우 빠르게 늘어나 2011년 말 기준 1629개까지 팽창한 것은 출총제의 부활을 검토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한다. 사실 1998년 일시적으로 출총제가 폐지되었을 때에도 재벌그룹 내부 지분율이 44.5%에서 1999년 50.5%로 증가해 재벌의 소유 집중이 심화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때문에 2000년 4월부터 순자산의 25% 이하로 출자를 제한하는 출총제가 부활을 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출총제로 돌아가느냐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출총제를 폐지할 당시의 출총제는 이미 재벌 규제 기능을 상당부분 거세당하고 이름만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참여정부 5년 기간 동안 지배구조가 우수하면 출총제를 졸업시켜준다든지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자하는 경우 출총제에서 제외시켜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선과 경제력 집중 억제를 서로 맞바꾸는 등의 정책변화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출총제는 계속 완화되었다. 그 결과 2008년에는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 543개 가운데 94.3%인 512개가 면제를 받고 10개 기업집단 31개사만 적용대상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2008년 수준으로 출총제를 되돌린다 해도 실효적인 규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그림3 참조).

출총제를 통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폐지되기 직전의 2008년 식이 아니라 2002년 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 [그림3]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 변화 출총제를 통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폐지되기 직전의 2008년 식이 아니라 2002년 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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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부활시키고자 한다면 2002년의 제도를 부활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 2002년의 출총제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변화된 상황에 맞게 자산규모와 출자 비율을 다소 조정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재벌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말로만 출총제를 부활시켜 놓고 실효적 효과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마치 지난 연말에 3억 원 이상 소득세 최고구간을 만들어 '무늬만 부자증세'를 만들었다고 비판을 받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의 부원장입니다.



태그:#출총제 , #재벌, #삼성, #경제력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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