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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놀랍다! 상큼 발랄한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눈이 조금 아리긴 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무척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성장소설을 읽으면서 두 가지 경험을 하면 나름 최고로 여기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하나는 단박에 읽어버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뭉클하게 올라오는 느낌이 일었다는 것이다. 특히 쿨샘의 대사는 그 별명 그대로 쿨하게 다가왔다.

'좋은 마음이든, 싫은 마음이든, 억누르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숨어있는 것 뿐이야. 억눌린 건 언젠가는 터지지. 근데 이 마음을 없애는 방법이 있어. (중략) 마음을 알아주는 거야. 싫은지 좋은지, 슬픈지 기쁜지, 그때그때 알아주는 거.'

내마음을 어쩌지 못해 힘들어 하는 청소년들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지금 본인이 처해 있는 현실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살아있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은 청소년에게 시쳇말로 '강추'하고 싶다." - 주상태(중대부중 교사)

<열여덟 너의 존재감>(르네상스 펴냄)은 청소년들의 마음과 고민을 참 잘 헤아려 썼다 싶은 청소년 성장 소설이다. 책을 읽으며 '혹시 이 저자가 청소년의 심리만을 따로 공부했나?' '혹시 현직 교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몇 차례 들 정도로.

<열여덟 너의 존재감> 겉그림
 <열여덟 너의 존재감> 겉그림
ⓒ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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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고등학교 2학년 3반 학생 셋이 주인공이다. '아름다울 나(娜)' 자에 '즐거울 락(樂)' 자를 써서 '아름답고 즐거운 학교'라는 뜻의 나락고등학교. 그러나 학교의 현실은 나락(奈落)에 가깝다. 살아있을 때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간다는 그런 지옥 같은, 그리하여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절망적인.

개학을 열흘 앞두고 등교해 자습으로 하루를 때워야 한다든지 등처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은 후인 학기 초 어느날, 거울이건 현관문이건 창문이건 학교의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깨져버린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진다. 학교는 시끌벅적, 어수선하기만 하고 아이들과 선생님들 사이에 일종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생겨난다.

그중 하나인 이순정은 뛰어난 외모로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존재지만 스스로는 존재감이  전혀 없다. 출생부터가 괴로운 아이다. 갓 스무 살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아이를 낳은 것에 충격을 받은 순정의 아빠는 순정이가 백일 되었을 무렵 집을 뛰쳐나간 후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후 순정이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순정이 엄마 역시 순정이를 버렸기 때문에.

"그 무렵 언제부터인가 전에 없던 증상이 시작됐다. 그 처음은 잠이었다. 잠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시골에서 살 때는 할머니와 똑같이 새벽에 일어났는데, 잠병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학교에 갈 시간에도 도무지 눈이 떠지지 않았다. 마치 방바닥에 수많은 갈퀴손이 있어서 나를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눈은 어찌어찌 뜬다고 해도 문턱을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날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그 다음에 나타난 증상은 분노였다. 스멀스멀 한 번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제어가 안 되는 분노, 분노의 대상은 무차별이었다. 어느 날은 답답한 집이, 어느 날은 누군가의 무심한 말투가, 또 어느 날은 엄마가 나를 돌게 만들었다. 엄마는, 잠시나마 설렘을 안겨 주었던 엄마는 내 모든 걸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나를 끌고 와서 캄캄한 지하 방에 던져놓고 방치했다. 아침에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깨워주는 법도 없고, 맛있는 밥을 정성스럽게 차려주지도 않았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눌 틈도 주지 않았다. 그저 술에 취해 있거나…." -<열여덟 너의 존재감> 이순정의 이야기 중

순정이가 엄마 손에 이끌려 도시의 캄캄한 지하방으로 오게 된 것은 중학교 입학 때문에. 그러나 핑계일 뿐, 서른여덟 살 엄마는 아빠가 뛰쳐나간 스무 살에 머물러 있어 열여덟 순정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그래도 순정이를 붙잡고 있는 이유는 스무 살에 아빠가 되었다는 충격에 뛰쳐나가버린 남자친구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살지만 버려지다시피 한 순정이는 시골에 있는 할머니가 그리워 시골로 달려가고 싶다. 하지만 자신마저 엄마를 버릴 수 없어 어떻게든 엄마 옆에서 견뎌보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순정이가 얻는 것은 한 발짝도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져버린 깊은 마음의 병. 결국 할머니가 처음으로 보낸 편지를 찢어버리는 엄마와 싸운 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까마득한 높이의 옥상으로 달려가고 마는데….

또 한사람 강이지. 학교에서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고 실실 쉽게 웃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도 없는 아이로 보인다. 하지만 돈 때문에 걸핏하면 싸우는 부모님 때문에, 그럴 때마다 엄마아빠가 이혼을 해 버려질지도 모른다며 불안해 바들바들 떠는 동생 셋을 지키며 맘이 많이 아프다. 강이지는 중학생 때 마음 속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학교 유리창을 깬 적이 있다. 때문에 도무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순정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데….

작가는 주인공 셋의 이야기를 각각의 장으로 나눠 들려주는데 나머지 한사람은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들려준다. 소설 마지막에 그 정체를 드러내는 '그림자'는 외모가 뛰어나 그냥 있기만 해도 눈에 쉽게 띄는 순정이나 아픔을 가장해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기 때문에 또한 눈에 잘 띌 수밖에 없는 이지와 달리 못생긴데다가 공부도 못하기 때문에 그 무엇도 내세울 것 없는 아이는 집에서나 교실에서나 숨죽이고 사람들의 변화나 살피며 살아갈 뿐이다.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을 아이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신은 숫자나 채우는, 존재감 없이 살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질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짐짓 무감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위험천만하기만 하다. 자신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존재감 없음으로 인한 열등감이 너무나 깊고 크기 때문이다. 유리창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는 것조차 존재감이 있기 때문이니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리창 사건의 범인을 잡는다고 학교가 술렁이는 와중에 주로 '안 된다'로 규제만 하는 보통 선생님들과 달리 '교실에서 밥을 먹어도 괜찮다'. '휴대폰을 내놓지 않아도 괜찮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다', '오늘처럼 맑은 날에는 교실에서 공부만 하기에는 너무 억울해'…. 등 주로 '괜찮다'이며, 그동안 아이들에게 썩 호의적이었던 쿨샘 담임선생님이 '마음의 일기 쓰기'를 제안한다. 무엇이든 쓰고 싶은 말은 솔직하게 쓰라는 것.

아이들은 쿨샘의 이런 제안을 범인을 잡으려는 수단 정도로 오해하기도 하나 한번 믿어보자며, 담임이 쓰라니까 반신반의 마음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마음의 일기를 통해 이제까지 한 번도 들여다 본적 없는 자신의 마음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절망스러운 현실을 치유하는 방법(혹은 벗어나는)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알게 된다.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자존감, 즉 존재감을 회복해 간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지만 이런 줄거리보다 주인공 아이들의 자기고백적인 이야기나 마음의 일기를 통한 쿨샘과의 대화 등을 헤아려가며 읽으면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아이들로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청소년 자살이나 청소년 범죄가 계기가 되는 가출을 얼마든지 감행할 수 있을 그런 치명적인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다.

강이지는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 앞에서 자심도 모르는 사이 오줌을 쌀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고 이순정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 까마득하게 높은 옥상에 올라가 있을 정도로 그 증세가 심하다.  그럼에도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갖게 되는 과정이 세세하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마음 뭉클하고 그리고 아리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청소년들의 마음과 고민을 참 잘 헤아려 쓴(아마도) 소설인지라 책을 읽는 내내 소설이 나오기까지의 숨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자못 궁금했었다. 역시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란다. 부모들의 관심과 애정이 많아 공부도 잘하고 부러울 것이 없는, 소위 잘난 아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가졌던 한 현직교사가 만난 아픈 아이들과 그 아이들에게 내민 '마음 일기 쓰기'가 바탕이 된.

…아이들의 상처는 낯익었다. 내가, 혜진이가(필자 주:소재 제공한 현직 교사)싸안고 끙끙 앓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사람 모두가 앓고 있지만, 저마다 혼자만 겪는 일일 거라고 오해해 온 해묵은 상처들. 아이들은 마음 일기와 마음 나누기를 통해 그런 상처들을 조금씩 내놓고 있었다. 이 책은 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공한 이야기를 덧씌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린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상처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겁다고, 내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잔뜩 웅크리고 도사렸던 나, 그리고 나와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저자의 말'중에서

올해 소설 속 아이들과 공교롭게도 나이가 같은 내 딸에게 꼭 읽기를 바란다며 이 책을 권했다. 청소년들을 워낙 잘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엄마인 내가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는, 유독 민감한 청소년기를 보내며 지난 4년 여 동안 친구 때문에 시시때때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내 딸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해 줄 거라는 기대가 크다.

아울러 소설 속 쿨샘 같은 선생님들이 조금만 더 있어도 아이들이 덜 아플텐데, 소설속 쿨샘의 마음 일기 쓰기나 마음 나누기가 최근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한 왕따로 인한 자살과 학교 폭력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어떤 방법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의 기대도 하면서 읽은 책이기도 하다.

존재감에 대한 고민은 청소년뿐일까. <열여덟 너의 존재감>을 통해 청소년들은 물론 작가처럼 내 상처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무겁다고 웅크리고 주눅 들어 있는 어른들도 읽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열여덟 너의 존재감>ㅣ박수현 씀 ㅣ 르네상스 출판사 펴냄 ㅣ 2011.11.28 ㅣ 값:11000원



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 지음, 르네상스(2011)


태그:#청소년, #1318, #성장소설, #왕따,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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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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