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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기로 유명한 핏불테리어는 한번 물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아 개 싸움 용으로 환영 받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개에게 물려 사망하는 사고의 대다수가 이 개 때문이라고.
 사납기로 유명한 핏불테리어는 한번 물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아 개 싸움 용으로 환영 받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개에게 물려 사망하는 사고의 대다수가 이 개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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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 개들 좀 떼어내 주세요. 도와주세요. 개들이 나를 물어뜯고 있어요. 제발 차로 이 개들을 깔아뭉개 주세요."

여덟 살 에린 인그램양의 울부짖는 목소리. 총 8분짜리 911 테이프에는 처참했던 2년 전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 1월 4일 조지아 주 디캡 카운티 법정에서는 2010년 3월에 발생한 끔찍한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재판은 6일까지 3일 내내 이어졌고, 결국 개 주인이 징역 16개월을 선고 받음으로써 일단락됐다.

소녀를 향해 달려든 개들... 끔찍했던 8분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개 주인인 트위앤 반씨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가기 위해 짐들을 나르는 동안 덩치 큰 개 두 마리를 부서진 나무상자 속에 남겨 두었다. 인근에서는 부동산 중개업자 리사 바이닝씨가 집을 빌리려는 사람에게 적당한 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 같이 농구를 할 친구를 찾던 옆집 꼬마 에린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선 지 1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개들이 달려들더니 앞마당에 서 있던 에린을 넘어뜨리고 팔을 문 채 거리로 질질 끌고 갔다. 바이닝씨는 개들을 쫓아내기 위해 차를 몰면서 911에 전화를 걸었다. 또 한 사람의 이웃 사람인 글렌타 게인즈-포이스레스씨는 타고 있던 차에서 뛰쳐나와 우산으로 개를 쳤다. 그러자 개 한 마리가 포이스레스씨 쪽으로 달려들려고 했다.

"한 마리가 나를 쫓기 시작했지만 다른 놈은 꿈쩍도 않고 꽉 문 채 에린을 놓지 않았어요."

법정에서 당시 일을 회상하며 눈물 범벅이 된 포이스레스씨가 진술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다시 두 마리 개가 에린을 물어뜯고 있었다. 알비 필러 경사가 경찰봉으로 있는 힘껏 내려쳤지만 개들은 막무가내였다. 수 차례 더 내려치고 나서야 개들이 에린을 놓아 주었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으르렁거리며 달려들 기세였다.

그 중 큰 놈이 필러 경사를 향해 돌진했다. 필러 경사는 방아쇠를 당겼다. 경찰 경력 1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소리에 놀란 또 한 마리는 집으로 도망쳤지만 나중에 결국 안락사 시켰다.

에린은 개에게 물린 상처가 너무 깊어 팔꿈치 밑으로 팔을 잘라내야 했다. 사고 후 2년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완전히 치료가 마무리되지 않아 앞으로도 몇 차례 수술을 더 받아야 하는데,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시시때때로 다시 개에게 물어뜯기는 악몽에 시달리는 일이다.

"트위앤 반씨의 개들이 제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쳐다보고, 아이들은 언제나 저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요."

이 문장은 에린이 글로 적어 법정에서 낭독된 내용이다. 에린은 재판 기간 중 법정에도 직접 출두했다. 상해를 입지 않은 얼굴과 발목 부분만 노출한 채로.

개를 가족처럼 끔찍이 아끼는 미국 사회에서도 이 사건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 검찰은 부주의한 행동과 카운티의 사나운 개에 관한 법령을 위반한 점, 그리고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죄를 물어 개 주인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피고측에서는 "평소에 개들로부터 어떠한 위험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또 "내가 감옥에 있으면 어떻게 에린을 돕겠느냐, 징역형만 면하게 해 주면 앞으로 동물 통제 법안의 강화를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겠다"고 탄원도 했지만 징역형을 면하지는 못했다. 

사나운 개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에린 양 사건은 유죄를 인정할 때까지 연 사나흘 동안 계속 신문지상에 올랐다.
 사나운 개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에린 양 사건은 유죄를 인정할 때까지 연 사나흘 동안 계속 신문지상에 올랐다.
ⓒ A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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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

쉐리 보스톤 조지아 주 법무장관은 이 사건을 직접 다룰 정도로 열의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주 의원들이 요구할 경우 진술도 불사하겠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에린의 사건이 특별히 조지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런 일은 어느 곳에서나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 문제는 이 사건이 결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개 전문 변호사 케네스 필립에 따르면 2010년에만 미국에서 모두 34건의 치명적인 개 공격(dog attack 또는 dog bite) 사건이 있었고, 해마다 35만 명이 개한테 물려서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새해 벽두인 지난 2일에도 시카고 시내 아름다운 호숫가를 달리던 62세 신사가 두 마리 개에게 물려 지금도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2년 전 에린을 물었던 개들과 같은 종인 핏 불 테리어(pit bull terrier)였다. 전문가들은 개들이 거세를 하지 않았을 경우, 야생 본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는데, 이 개들이 그 경우에 속했다.

응급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료시술을 받아야 하는 피해자는 연간 80만 명.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2001년에서 2003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미국에서 연간 450만 명이 개에게 물리고 있다고 결론지은 바 있는데, 지난 10년 사이에도 개 숫자는 꾸준히 늘어 최근에는 47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러한 손실들을 모두 돈으로 환산하면, 연 10억 달러다. 개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대가로 미국이 지출하는 사회비용인 셈이다.

미국 사람들은 자동차보험처럼 뜻하지 않은 재해에 대비해 집보험도 거의 의무적으로 드는 편인데, 개를 소유하는 가정의 경우는 보험료가 좀더 높게 책정된다. 개에게 물리는 사고의 경우, 그 피해 당사자가 대개 가족이나 친인척, 또는 이웃 사람으로 개 주인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보험 가입을 적극 권장한다. 개에게 물린 상처는 치료가 단번으로 끝나지 않고 대개 성형수술까지 수 차례에 걸쳐 이뤄지므로 의료 비용이 비싸 한 순간의 사고로 전 재산을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나운 개로 분류된 개를 가지고 있다면 프리미엄이 붙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보험 가입이 제한되기도 한다.

미국 보험정보협회의 2009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집보험 손해배상 청구금액의 3분의 1이 넘는 4억 1200만 달러가 개에게 물린 환자를 치료하는 데 들어갔다. 보험 청구 건수는 1만 6586건, 평균 잡아 건당 2만 4840달러가 지출된 셈이다. 하지만 연간 개에게 물리는 470만 명 중에 보험으로 치료비가 커버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미한 사고들까지 포함하면 개로 인해 생기는 시비는 돌에 걸려 넘어지는 일만큼이나 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리지만 않으면 괜찮다?

미국 생활 13년째인 나 역시 둘째 아이가 두 살 때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메사추세츠 주의 시골 도시에 살 때였는데, 우리 동네는 집과 집 사이에 담장이 없이 뒷마당들이 툭 터진 곳이었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동네 아이들은 골프를 치기도 하고 야구를 하기도 하고 물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안전장치를 장착한 핏불테리어
 안전장치를 장착한 핏불테리어
ⓒ 위키미디아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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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우리집만 빼고 집집마다 개를 키운다는 점이었다. 잘 훈련된 개들은 자기 집의 정해진 곳에서만 볼일을 봤지만, 우리 옆집에 새로 온 덩치가 산만한 개는 우리 아이들이 노는 모래 상자에 똥을 싸 놓기도 해서 은근히 짜증이 났다. 덩치는 큰데 아직 훈련이 덜 된 개라 개줄을 매어 놓았는데, 너무 갑갑하지 말라고 그랬는지 빨랫줄처럼 공중에 매달린 끈에다 다시 끈을 연결해 옆집과 우리집의 경계부분까지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끈을 풀어 놓는 때도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방문 중이던 친정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개줄이 풀렸는지 풀어 놓았는지 개가 달려들었다. 개는 아이와 놀고 싶었나 보지만 덩치가 우리 아이의 두세 배는 되는 개가 날뛰자 아이는 질겁을 했고, 엄마는 아이를 잽싸게 낚아채서 밖으로 열린 지하실 문으로 달아났다. 그 와중에 개의 발톱에 긁혀 아들의 배와 등판에 꽤 큰 상처가 났다. 말리던 엄마도 여기저기 긁힌 상처를 입었다.

집 안에 있다가 이 호들갑을 접한 나는 아들 몸에 난 상처를 보는 순간 열이 확 뻗쳐서 옆집으로 달려갔다.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사람 앞에서 길길이 날뛸 수도 없고, 또 물린 상처는 아니어서 경고만 하는 선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속이 많이 상했다. 옆집 아줌마는 아이 장난감을 사다 주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했다.

그러고 보면 미국 사람들은 개에게 긁힌 상처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너무 일상적인 일인 탓이다. 보험 청구까지 가는 경우는 개에게 물렸을 때에 해당한다. 한번 사람을 문 개는 주 법에 따라 안락사 시키거나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조지아 주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 한번 사람을 문 개가 다시 사람을 물었을 경우, 개 주인은 가중처벌을 받는다. 그렇지만 사람을 한 번 문 개를 그냥 놔둬도 되는 것인가?

애완견 키우려면 사회적 책임감도 함께 키워야

사정이 이 정도면 그까짓 개쯤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미국 사람들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들은 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2011년 8월 6일자 <이코노미스트>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제목으로 인간과 개의 2만 년 넘는 상생관계를 조명한 책을 소개했다. 책 제목은 <개에 대한 변호: 왜 개들은 우리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가>인데 개의 행동방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토대로 어떻게 하면 개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이다.

이쯤이면 개는 '소유하거나 없애거나'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소리다. 미국 애완동물 상품협의회(American Pet Products Association)의 2011-2012 통계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의 39%, 즉 4630만 가구가 한 마리 이상의 개를 키우고 있고, 약 7820만 마리의 개가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다. 당연히 전세계 1위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개가 없는 곳이 없다.

미국의 오랜 개척의 역사 속에서 개는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충성스럽고,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바탕으로 위험으로부터 구해 주기도 하고,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듬직한 존재.

미국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대여섯 살쯤 될 때 강아지를 선물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아이들이 장성해 부모 곁을 떠나기 전까지 개와 함께 자라면서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좋을 뿐만 아니라 개에게 밥을 주고 훈련을 시키면서 책임감도 길러진다고 한다.

이런 아주 오래된 믿음과 정서 때문에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개에게 물려 팔 다리가 잘리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때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미국 사람들의 '개 사랑'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미국 신문에 흔히 등장하는 상담 코너인 '디어 애비'에서 한 번은 출산을 앞두고 이런 걱정을 하는 사연을 본 적이 있다.

"저희 엄마는 큰 개와 함께 단 둘이 살고 계십니다. 엄마는 여행을 다닐 때도 개와 함께 동행하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절대로 우리 집에는 개를 데리고 오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섭섭해 하시고 화를 내시더군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

당연히 현명한 상담가인 애비는 '아기가 우선'이라고 조언을 했지만, 실제로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하여튼 에린 사건으로 인해 지난 2005년에 조지아 주 의회에 상정됐다가 빛을 보지 못한 법안이 다시 조명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주 하원의원인 민주당 소속 어네스트 코치 윌리엄스는 조지아 주 안에서 사나운 개를 키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냈었는데, 사람을 문 개 주인에게 중형을 내리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해 다소의 수정을 거쳐 9일부터 시작된 이번 회기에 다시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화당 측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법령을 갈아치우기 위해 주요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 세 개를 검토 중이다.

주마다 다른 '개 물림 법령' 중에서도 개 주인에게 유리한 것으로 악명 높은 조지아 주 법이 이번 기회에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들을 대폭 마련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또한 사나운 개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꼼꼼한 제한 규정을 두어서 불행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한 번 잘린 어린 소녀 에린의 팔은 결코 원상태로 돌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태그:#개, #핏불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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