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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0일만의 '승리'였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당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A씨는 지난해 12월 14일, 원직복직과 가해자 해고를 약속받았다.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 서초경찰서 그리고 청계천 여성가족부 앞을 전전하며 상경 천막 농성 투쟁을 한 지 196일만이었다.

오는 2월 1일 A씨의 원직복직을 앞두고 13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는 지난 1년 4개월간의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는 토론회가 열렸다.

"왜 우리 조직은 이 투쟁을 책임지지 못했나"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당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A씨가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에 설치한 농성텐트(자료사진).
 직장 내 성희롱 피해사실을 알렸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당한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A씨가 청계광장 여성가족부 앞에 설치한 농성텐트(자료사진).
ⓒ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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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대리인을 맡아온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사청지회 조합원 권수정씨는 "농성이라는 게 굉장히 센 투쟁 전술인데, 그 센 전술의 농성투쟁을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주제로 한 것도 처음이고, 그 농성투쟁의 주체가 2명인 것도 처음이라 '이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면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투쟁인데 이겼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주체 2명은 A씨와 대리인 권씨를 의미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권수정씨는 자신과 A씨가 소속되어 있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지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권씨는 "여성가족부 앞의 농성장은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의 농성장이 아니었고,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농성장도 아니며, 금속노조의 농성장도 아니고, 민주노총의 농성장도 아니었다"면서 "우리 조직은 왜 이 농성투쟁을 책임지지 못했을까"라고 개탄했다. 

권씨는 "A씨의 상경투쟁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조직적으로 책임지지 못했다"면서 "그 원인의 대부분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피해 여성만의 문제로 보거나, 적어도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더 중요한 투쟁과 덜 중요한 투쟁의 나눔은 의미 없다. 지난여름 가장 중요한 투쟁이 85 크레인 김진숙 동지의 투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민주노총은 마치 철새 같다는 생각을 한다. 희망버스 이후, 민주노조 운동진영은 85크레인과 유성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 외의 많은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소외되었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전반적으로 민주노조 운동진영을 이끌어가는 것이 민주노총이 아니라 연대에 동의하는 자발적 다수라는 생각이 드는 지난 한해였다."

그렇다면, 여성노동자 A씨가 '현대자동차'라는 거대자본에 맞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두 여성노동자의 투쟁에는 공식적으로 총 18개의 단위가 연대했다. 유현경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여성국장은 "아마 한국사회에 한 명의 여성노동자의 원직복직을 위해 이토록 수많은 연대단위가 지원대책위를 구성해서 지속적으로 활동한 경험은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수정씨는 "이번 투쟁은 기존의 노동운동 진영이 하던 방식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연대가 확대됐다"면서 "이는 '희망버스'와 유사하다"라고 전했다. 지원대책위는 40여회의 촛불문화제를 여는가 하면,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 1인 시위, 전국동시다발 1인 시위 등을 진행했다. 

그럼에도 단 2명이 24시간 농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현경 여성국장은 "성희롱 피해 여성노동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1인 시위와 농성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내 성희롱, '생존의 문제' 될 수 있다는 것 보여줘"

1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여성노동자 투쟁 평가토론회가 열렸다. 왼쪽은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오른쪽은 A씨의 대리인인 권수정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사청지회 조합원.
 1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여성노동자 투쟁 평가토론회가 열렸다. 왼쪽은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 오른쪽은 A씨의 대리인인 권수정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사청지회 조합원.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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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투쟁의 성과와 관련해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이번 투쟁이 직장 내 성희롱의 실상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나영 사무국장은 발제문을 통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피해자는 유니폼을 입은 젊은 사무직 여성이 아니라 세 자녀를 키우면서 하청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고, 가해자는 새삼 음흉한 눈빛을 할 것도 없이 수시로 여성 노동자를 성희롱하는 공장 관리자들이었다"면서 "반복되는 성희롱에 힘들어하던 피해자가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는 이유만으로 징계해고를 당하는 현실은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가 여성노동자들에게는 단순히 '기분 나쁜'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A씨가 성희롱에 따른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 역시 큰 의미를 갖는다. 유현경 국장은 "이번 산재판정은 신체 상해가 아닌 정신적 상해에 대해서도 산업재해를 인정한 첫 사례"라면서 "직장 내 성희롱이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을 만들어 노동권, 생존권뿐만 아니라 건강권까지 침해하는 행위임을 사회적으로 알렸다"고 말했다.

이어 유 국장은 "이번 투쟁이 간접고용으로 인해 고통 받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렸다"고 분석했다. 유 국장은 "이번 투쟁 과정을 통해 직장 내 성희롱의 심각성과 함께 대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일상적 성희롱과 해고에 얼마나 쉽게 노출되는지를 보여주었다"면서 "현대차의 의도적 성희롱 은폐, 업체폐업으로 인해 복직 자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봉쇄당했던 사내하청이라는 간접고용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A씨의 투쟁은 노동운동 진영에도 과제를 남겼다. 나영 사무국장은 "성희롱이 '생존권', '노동권'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인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조가 이를 개인의 문제로만 대응하려 할 경우, 기업의 책임은 사라진 채 성희롱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싸움이 되고 만다"면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노동자가 가장 1차적으로 의논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할 노조부터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그:#성희롱, #부당해고, #현대차, #현대자동차, #권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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