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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어제만 해도 '설마 구속되겠어' 하면서 웃었는데…."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남부경찰서 앞에서 열린 '박정근씨 구속 규탄 기자회견'에서 사회당 당원 '초코버리(닉네임)'는 박정근(25)씨가 수감되어 있는 남부경찰서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당 당원 '김DC(닉네임)'는 "어제(11일) 저녁 치킨 먹고 있다가 박정근씨 구속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치킨 뼈가 목에 걸렸다"라고 말했다.

"트위터 할까 봐 구속... RT 보안법?"

12일 경기도 수원 남부경찰서 앞에서 박정근씨 구속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박씨는 북 관련 트윗을 RT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찬양 및 고무'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12일 경기도 수원 남부경찰서 앞에서 박정근씨 구속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박씨는 북 관련 트윗을 RT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찬양 및 고무'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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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전날(11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박정근씨 구속영장 청구 규탄 기자회견'을 열 때만 해도 '정근이의 친구들('박정근을 격하게 포옹하는 사람들의 모임', 박격포)'은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저녁에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치킨이나 먹을 생각이었다.

이후 오후 7시께, 트위터를 통해 박씨의 구속사실이 알려졌다.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여기에서 '재범'은 '북한 관련 글을 트위터에 올리는 것'을 뜻한다. 이에 트위터에서는 "리트윗으로 국가안보를 위협하다니, 이것은 SNS 혁명이 아닌가(@jobonzwa)?", "박정희 땐 막걸리 보안법이 있었다. 이명박 치하엔 RT보안법이 생겼구나(@suyunomo)"라는 조롱이 이어졌다.

'정근이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현태 '포럼 진실과 정의' 사무국장은 "정근이가 리트윗한 북한 관련 글을 어떤 중학생이 리트윗한 적이 있어서 경찰이 조사한 적도 있다고 한다"면서 "정근이가 계속해서 트위터를 할 경우 팔로어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정근씨는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 바 있다.

"가만있어봐. 내가 판사라면 말이지... 박정근은 경찰조사 이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이적표현물 취득·반포 및 불법현수막, 이적표현물로 오인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전단지를 살포하는 등의 행위를 저질러 앞으로 위험한 행동을 할 여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여튼 구속!"

"'간식은 미제의 악습...' 어떻게 생각하세요?"

북한 관련 트윗을 RT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박정근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11일 수원지방법원에 출석했다. 박씨는 구속 결정을 받았다.
 북한 관련 트윗을 RT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박정근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11일 수원지방법원에 출석했다. 박씨는 구속 결정을 받았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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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1일 박씨가 운영하는 사진관과 자택을 압수수색한 경기도 보안수사대는 '북'과 '사회'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물품을 압수했다. '박정근 사회자'라고 쓰여져 있는 명패용 출력물도 가져갔다. 지인에게 받은 '주체 100년, 청년대장 박정근에게'라고 적힌 편지도 압수했다(평소 박씨는 자신도 김정은 '청년대장'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가업(사진관)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청년대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박씨는 지난해 11월 15일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경기도에 있는 보안수사대에서 경찰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당시 박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6만여 개의 트윗 가운데 '북'과 관련된 트윗을 캡쳐한 것을 보여주면서 박씨가 올린 것이 맞는지, 논조에 동의하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22일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야채라디오>에 나와 다음과 같이 경찰조사 내용을 설명했다.  

"'김정일 봇'이라고 있어요. 자동으로 몇 시간에 한 번씩 김정일 패러디를 하는 트위터 계정인데 거기에 '간식은 미제의 악습이므로 철저히 분쇄해야 합니다'라는 트윗이 올라왔길래 그걸 따라서 올렸어요. 그런데 경찰조사할 때 실제로 이걸 물어봤어요. '박정근씨, 몇 월 며칠에 '간식은 미제의 악습이므로 철저히 분쇄해야 한다'라는 트윗을 올렸는데, 미제라는 것은 북한에서 말하는 '미제국주의'의 줄임말인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찰이) 조평통에 대해 아십니까. 우리 민족끼리는 어떻게 접속하셨습니까 물었어요. 이게 아이폰으로는 다 접속이 돼서 팔로가 되거든요. 그리고 남이 리트윗한 것을 팔로 버튼 누르면 팔로가 돼요. 경찰관 아저씨한테 팔로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보세요. 팔로되죠'."

이 방송에서 박씨는 북 관련 트윗을 올린 이유와 관련해 "북 체제를 옹호한다, 이러한 입장이라기보다는 재밌고 관심도 있고 알 권리도 있고 표현의 자유도 있기 때문에 올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의 뇌는 국가의 것이 아니다"

사실 박씨는 '반조선노동당', '반자본주의'를 당의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사회당 당원이다. 북의 3대 세습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때문에 박씨의 구속과 관련해 '남한 땅에서 북 체제에 가장 비판적인 사회당 당원이 북한을 찬양·고무했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나'라는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경찰과 검찰이 사회당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거라는 것. 

하지만 박정근씨와 친구들은 이번 사건에서 박씨가 북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박씨가 활동하고 있는 사회당 서울시당 연대사업국 국장 '김슷캇(닉네임)'은 12일<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박정근씨가 처음에 조사받을 때 경찰은 'NLPDR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등 사상검증을 시도했었다. 뇌를 뒤지려고 했던 것"이라면서 "'무슨 의도로 그랬느냐'라고 묻는 것에 대해 박정근씨가 '장난이었다'라고 답한 것은 우리가 친북인지, 아닌지 증명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종북? X까네. 김정일 만세다. 이 새끼야"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2011년 12월 3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2011 뉴타운 간첩파티' 포스터. 포스터에 사용 된 이미지는 모두 국정원의 반공홍보그림을 수정없이 차용했다.
 2011년 12월 3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2011 뉴타운 간첩파티' 포스터. 포스터에 사용 된 이미지는 모두 국정원의 반공홍보그림을 수정없이 차용했다.
ⓒ 뉴타운 간첩파티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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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박씨의 친구들은 대한문 앞에서 '2011 뉴타운 간첩파티'를 열고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를 불렀다. 당시 행사의 구호는 '우리의 뇌는 국가의 것이 아니다'. 

'뉴타운 간첩파티'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 이러한 의도가 잘 드러난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의자에 몸이 묶인 한 남성이 절규한다. 그의 눈은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고,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다. 이어 빛이 들어오면서 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며 그에게 말한다. "김정일 X새끼 해봐." 그러자 의자에 몸이 묶인 남성은 입을 열기를 망설인다.

이어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라는 '밤섬해적단'의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어차피 님도 나도 다같이 간첩인데 대한문 와서 코렁탕이랑 정종 먹으면서 신나게 놀다가 공연 끝나면 같이 쇠고랑이나 차자!'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간첩신고 111' 안내도 잊지 않는다.

'밤섬해적단'은 이 노래를 부를 때 네이버 인물 검색창을 띄워 놓고 "김정일씨는 기업인 김정일씨"라고 말하면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권력을 조롱한다.

박정근씨는 왜 '검찰 낚는 어부'가 되었나

박정근씨 트위터 캡쳐화면.
 박정근씨 트위터 캡쳐화면.
ⓒ @seouldeca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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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씨가 구속 직전까지도 계속해서 '우리민족끼리'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옛다 떡밥이다 물어라"며 "검찰 낚는 어부"가 되려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김슷캇'은 박정근씨의 구속 이후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박정근은 경찰조사에 대해 심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엔간한 사람보다 이런 일에 오히려 더 약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자신만의 피해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발판으로 삼고 싶어 했고, 중점은 "표현의 자유" 자체였습니다. 트위터에서 박정근이 북한을 비판했던 사실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찾으려면 못 찾을 것도 없습니다. 박정근이 이 트윗들을 찾으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법정반박을 위한 증거자료로는 끝까지 쓰지 않았습니다.

박정근이 이 사건을 자신의 문제로만 받아들이고, "김정일 개객기"를 요구하는 국가권력에 굴복했다면 구속까지는 안됐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안됐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는 국보법 자체를 끌고 가려고 했고, 트위터에서의 발언도 계속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그에게 빚이 있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피해를 "이용해" 사회를 위한 투쟁을(설사 그게 어설프거나 유치했더라도) 계속해왔고, 다른 누구나 그것을 "이용해주기를" 바래왔습니다. 김정일 만세!"

12일 경찰서 앞 기자회견에서 박씨의 구속을 "엉뚱하고 한심한 사건"이라고 규정한 안효상 사회당 대표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인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그 내용과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기회를 정말 국가보안법이 철폐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저들은 이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이 사건을 만들어냈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이 사건이 이 체제를 제대로 된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박씨가 '폭풍트윗'을 하던 트위터 계정(@seouldecadence)은 멈춰있다. 대신 박씨의 친구들은 '박정근봇(@freedecadence)'을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트위터에서 또 다시 "김정일 만세"를 외칠 수 있을까.


태그:#박정근, #국가보안법, #트위터, #사회당,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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