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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표ㆍ최고위원 경선 수도권 TV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학영, 한명숙, 문성근, 김부겸, 박용진, 박지원, 이강래, 박영선,이인영 후보.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대표ㆍ최고위원 경선 수도권 TV토론회에서 후보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학영, 한명숙, 문성근, 김부겸, 박용진, 박지원, 이강래, 박영선,이인영 후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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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통' 사람이다. '~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이념적으로 철저한 것도 아니고, 이슈가 터질 때마다 매번 집회현장을 따라다니는 열성적 운동가도 아니다. 대열의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사람은 못 되더라도 사회의 부조리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크고 작은 집회에 종종 들러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줄 뿐이었다.

물론 특정 정당 당원도 아니다. 대학교 2학년이던 3년 전쯤 모 정당에 가입할까 잠깐 고민해본 적은 있다. 입당 서류를 쓰려고 손에 펜까지 쥐었다가 도로 놓았던 기억이 난다.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당적을 가질 정도로 강력히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혹여나 당적을 가졌다가 나중에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다. 이렇듯 나는 정치참여에 그리 적극적이지도, 그리 소극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20대다.

평범한 20대인 나, '변화의 바람' 꿈꾸며 참여한 전당대회

이런 내가 그동안 정당 전당대회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내 눈에 정당 지도부 경선은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였다. 전당대회는 항상 당원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나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소위 '무당파'라고 특징지어지는 지금의 2040세대가 특정 정당의 전당대회에 어떤 후보가 출마했는지 굳이 알아볼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내 주변의 지인들은 그렇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 내가 국민 선거인단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유는 딱 하나. 민주통합당이 현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평소 4대강 살리기 사업이나 부자감세 등 현 정부의 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해왔기 때문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도 분수령이 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파격적인 경선 방식도 나를 선거인단으로 이끌었다. 일반 국민 선거인단 비중 70%에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모바일투표 방식. 당원이 아닌 나에게도 그야말로 가슴 뛰는 '기회'였다.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선거인단으로 등록하라고 제안할 정도로 이번 경선에 대한 관심이 컸다.

9일부터 14일까지 민주통합당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모바일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모바일 투표를 신청한 한 유권자의 스마트폰에 후보 9명의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9일부터 14일까지 민주통합당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모바일투표가 진행되는 가운데, 모바일 투표를 신청한 한 유권자의 스마트폰에 후보 9명의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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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인단으로 신청한 후엔 이어서 '조사'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지도부가 뽑혔으면 하는 바람에 나름 인터넷을 뒤져 후보들의 이력이나 언론 인터뷰도 읽어보고, 후보들 홈페이지에 들어가 한미FTA, 원자력발전소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입장을 찾아보기도 했다. 조사를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TV토론과 지역연설회 영상도 섭렵했다.

그리고 드디어 9일 아침,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2명의 후보에게 투표를 마쳤다. 본인 인증을 한 뒤 직접 신청하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적극적인 투표 의사를 가져야 참여 가능한 이번 지도부 경선에 80만 명가량의 선거인단이 몰린 것은 나처럼 국민들에게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배신감 안겨준 '민주당 돈봉투 사건'... 철저히 진상규명 해야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을 폭로한 고승덕 의원이 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차에 오르고 있다. 고 의원은 2008년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당시 박희태 현 국회의장 측의 '돈 봉투 살포' 사건과 관련, "여러 의원실을 돌면서 돈 배달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쇼핑백 속에는 같은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을 폭로한 고승덕 의원이 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차에 오르고 있다. 고 의원은 2008년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당시 박희태 현 국회의장 측의 '돈 봉투 살포' 사건과 관련, "여러 의원실을 돌면서 돈 배달을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쇼핑백 속에는 같은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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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번 '1·15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 후보가 영남권 지역위원장들에게 돈봉투를 돌렸다'는 기사. 금세 실망감이 밀려왔다. 한숨이 나오고 마음도 답답했다. 이번 경선을 눈여겨보고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지 애써 고민했던 것이 일순간 물거품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더욱이 민주통합당 스스로도 국민 선거인단의 대거 참여로 금권선거는 불가능하다고 자신해왔는데 말이다.

스스로의 허물을 벗지 않고 어떻게 남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한나라당의 300만 원 돈봉투 사건을 거세게 비판해왔던 민주통합당이었기에 허무함과 배신감은 더욱 컸다. 혹여 '이 당이나 저 당이나 오십보백보'라며 정치적 무관심으로 국민 여론이 다시금 치닫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정치권의 구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일 터이다. '혁신하자' '쇄신하자' 목 놓아 외쳤던 구호들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돈으로 표를 사는 정치권을 대체 국민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정치적 이해득실로 따지면야 민주통합당의 돈봉투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이득일 수도 있겠지만,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절망에 다시 불을 지피는 일이었다.

사실 되뇌어보면 '깨끗한 정치를 하자'는 데 소리 높여 반대하는 정치인은 없다. 국민의 표가 필요할 때마다 너도나도 정치인들은 '변화'를 외치고 자신이 꼭 국민의 염원을 따르겠다고 약속 또 약속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그러한 약속 뒤에 여전히 부패와 비리가 도사리고 있다. 친·인척, 측근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현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나선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도덕성이 정치인의 생명줄이라고 연거푸 강조한들 실제 정치인들에게 도덕성은 안중에도 없다는 생각에 혐오감마저 들 정도다.

결국 이렇게 된 이상 이번 돈봉투 사건이 우리나라 정치문화를 개혁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으면 한다. 더 이상 지지부진한 개혁 논의를 기다려줄 국민은 없다. 말로만 혁신, 쇄신을 외칠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해 국민의 눈앞에 보여줘야 한다. 진상 규명은 물론이고 대국민 사과와 철저한 정치문화 개혁의지 표명까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정당 전당대회에서 돈이 오간다는 것은 암암리에 떠돌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증은 없더라도 '돈 없이는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불문율처럼 나왔으니 말이다. 이런 정치문화의 당사자인 정치인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 적극적으로 감시하지 않았던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당원도 아니고, 운동가도 아닌 보통 사람의 제언이다. 이래저래 기대와 희망을 품고 참여한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이었는데 이번 돈봉투 사건으로 큰 고비를 맞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깨끗한 정치'를 기대하는 내 마음은 다시 꿈틀거릴 것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떠올리면서.


태그:#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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