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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싫은 이유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20년 만에 한꺼번에 있는 선거의 해답게 각 언론매체에서는 벌써부터 선거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정치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정당들은 선거에 대비해 쇄신이니, 통합이니 하면서 내부 조직 다지기에 안간 힘을 쏟고 있고, 예비 후보자들은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선거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직 국회의장이 거명되면서 '돈 봉투'이야기가 나오고, 선관위 디도스 공격 관련 검경 조사에선 '꼬리 자르기'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하면 부패를 연상할 만큼, 정치 불신이 팽배하고, 선거에 대한 염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기 때문에 선거 관련한 소식들을 마냥 무시하고 지낸다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거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정치인들의 됨됨이를 살피고 견제함으로 인해 정치 불신을 해소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스스로 확인해 보는 것도 민주시민의 마땅한 역할일 것이다. 즉 민주시민은 선거라는 틀을 통해 권리에 대한 자기주장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거를 혐오할 이유가 전혀 없고, 오히려 즐길 수 있다면 즐겨야 하는 것이 선거이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은 선거철만 되면 삶이 팍팍해지고 괴롭기만 하다. 이유는 선거권이 없다보니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관심 밖에서 소외되면서 여러 가지 피해를 알게 모르게 당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피해는 최소한의 예산을 배정해 놨던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공공의료 예산의 삭감이다. 국회는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주노동자 등 소외계층 의료지원 서비스'를 위한 보건복지부 공공의료 사업 예산을 전년도 대비 1/4이나 삭감해 버렸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는 33억6000만 원 중 25.6%인 8억6000만 원을 삭감한 채 25억 원으로 사업예산을 통과시켰고, 본회의에서 의결함으로써 사업 예산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작년 하반기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 사업 시행지침'을 개정해 올 1월부터 그동안 지원 대상자에서 배제되었던 난민인정 자, 난민인정을 신청한 자나 소송중인 자 및 인도적인 사유로 체류허가를 받은 자 등을 포함하여 지원 대상을 늘려 놨다.

그리고 전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1년 11월을 기준으로 140만 명 가까이 되는데, 전년도와 비교했을 때 11.3%가 증가했다. 또한 작년과 올해 외국인 고용허가제 근로계약 만기 도래자가 10만 명에 이르는데, 그 중 상당수가 출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정부가 누차 예견해 왔던 일이고, 올해는 작년에 비해 고용허가제 입국인원을 9000명 증원 계획이 확정되어 전년 대비 18.7% 증가했다는 사실 등을 감안하면 1/4에 이르는 예산 삭감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 사업 시행지침' 개정 전이었던 작년의 경우 3/4분기에 이미 25억5000여만 원을 사용하면서 금년도 편성된 예산 금액을 초과했던 것을 미뤄볼 때, 이번 예산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 무료 독감 예방접종
▲ 예방접종 이주노동자 무료 독감 예방접종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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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이 삭감된 '이주노동자 등 소외계층 의료지원 서비스' 어떤 서비스인가?

보건복지부는 2005년부터 이주노동자 등 소외 계층에게 입원 및 수술비 등 본인 부담이 큰 항목 위주로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건강보험, 의료급여 등 각종 의료보장제도에 의해서도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건강한 삶의 질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사업대상은 노숙인, 이주노동자 및 그 자녀, 국적 취득 전 여성 결혼이민자 및 그 자녀로 건강보험, 의료급여 등 각종 의료보장제도에 의해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자들, 그 외에 언급했던 난민 등도 사업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결국 올해 편성된 25억 원은 온전히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예산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이 없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예산인데, 그 예산 중 일부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임을 의료지원 서비스 명칭을 통해서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인원중인 이주노동자와 동료 이주노동자들
▲ 입원중인 이주노동자 인원중인 이주노동자와 동료 이주노동자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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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예산을 삭감한 이유가 단순히 선거권이 없기 때문이었나?

사업시행지침을 개정해 지원 대상을 늘리고, 사업 시행 대상자도 크게 늘어났는데, 국회가 사용할 예산은 대폭 삭감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권이 없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산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들, 노숙인들, 국적 취득 전 결혼이주민, 난민 누가 선거할 수 있나? 소외계층 의료지원 서비스 대상자들은 기본적으로 선거권이 없거나 행사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복지논쟁이 얼마나 활발한가? 4-5세 무상보육이라는 말을 보수여당에서 예년 같으면 감히 말을 꺼냈겠는가? 작년 보궐선거를 통해 복지라는 화두를 던지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을 각 정당은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기조는 올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를 입에 담는 사람들은 복지를 주도적 이슈로 삼고자 하고 있고, 그러한 경향은 국적이 있거나 국적 소지자와 결혼한 결혼이주민 등과 관련해서는 다문화 예산의 증액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선거권이 없는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소외계층 의료지원을 위한 예산 편성은 정치인들에게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외면 받는 것이다. 선거권 없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것!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 즉 활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삭감할 수도 있다?

국내 체류 이주노동자 중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17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25억을 17만으로 나누면 14,700원 밖에 되지 않는다. 1인당 연간 의료비용이 15,000원도 되지 않는다면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소외계층은 1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고 사는 아주 건강한 사람들만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식적인 선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나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잠자는 노숙인들, 하루 생계를 걱정하고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고국 땅에 대한 그리움으로 심신의 스트레스가 막심한 난민들의 건강이 양호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 무리한 추정이 아닌가?

현재 상당수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인 (사)한국이주민건강협회나 희년의료선교회 등에서 운영하는 의료보험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마땅히 공공의료 사업으로 해 야 할 부분을 민간이 떠맡고 있다는 말이다. 만일 국회가 소외계층을 위해 편성했던 예산이 남아서 삭감했다고 말을 한다면,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거나, 관련 사업에 대한 홍보와 지원을 등한히 했다는 말로써, 정부의 공공의료서비스에 대한 직무유기 혹은 직무태만을 꾸짖어야지, 예산 삭감을 할 부분은 아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예산 삭감은 국회가 선거철을 앞두고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의 건강권에 매서운 칼질을 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예산 삭감이 가져올 영향이 심각... 대안은 없나?

언급한 것처럼 지원 대상과 인원은 대폭 늘어난 반면, 예산은 대폭 줄어들면서 지원 대상자 선정을 위한 심사 절차 등에 있어서 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고, 조기 예산 소모로 인해 하반기에 이르면 소외계층 의료지원 서비스 사업 자체를 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결국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의 건강권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고 우리나라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점들에 비춰볼 때 추경예산 등의 방법을 통해서라도 소외계층 의료지원 서비스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또한 공공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보건소 등을 통한 정기적인 진료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소외계층의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 등의 보건소에서는 주중에만 아니라, 주말과 야간 진료 등도 실시할 필요가 있고, 민간 지원 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건강보험 서비스나 무료 진료 서비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공공의료서비스를 강화하고 예산 절감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선거가 이주노동자에게 끼치는 또 다른 영향이 있다면?

지난주에 언급했던 외국인력 도입 규모 증원이나 소외계층 의료지원 서비스 예산 삭감에서 알 수 있듯이 이주노동자들은 선거권이 없지만, 선거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가령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증가를 예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력 도입 규모를 증원한 것은, 선거가 끝난 후 정권이 사회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추방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할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을 이야기하자면, 이주노동자들도 어떠한 정당이 정권을 잡을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편다는 것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성과를 이해하게 해 준다. 즉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 만큼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라는 면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깨끗한 선거를 통해 아시아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 또한 끼치고 있다 하겠다.


태그:#이주노동자, #국회, #의료지원, #선거,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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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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