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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식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김치찌개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어릴 적 길에서 흔히 보던 엿장수 가위와 넝마주이들이 가지고 다니던 폐지 집는 커다란 집게. 그들의 필수품이었던 그 가위와 집게가 요즘은 음식점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기다란 배추김치를 가위와 집게로 한참 먹기 좋게 자르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나, 짜증나. 아까 학교 앞 건물에서 나와서 주차요원에게 티켓을 주고 차 빼주기를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어떤 여자랑 남자가 팔짱을 끼고 건물에서 나오더니 나한테 티켓을 주는 거 있지. 또 나를 주차요원인 줄 알았나봐."
"아니 오늘은 옷도 제대로 챙겨 입고 나갔잖아? 자긴 할 수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살아."

남편이 차와 관련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 외모인지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쯤, 일산에 있는 한 지하 노래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놀다가 나중에 합류하기로 한 남편이 한 시간 정도 뒤에 도착했다. 지하 계단으로 내려와 노래방으로 들어오면서 투덜대는 남편.

노래방이 있는 건물 일층에는 식당이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노래방 입구가 보이지 않기에 식당을 통해 내려가나 보다 생각하고 일층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한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면서 키를 손에 쥐어주더란다.

"아휴, 이제 오셨네. 오른쪽 옆으로 돌아가시면 돼요."

남편은 키 뭉치를 받아들고 노래방으로 내려가려면 어느 키를 어디에 꽂아야 할지 몰라 만지작거리는데 "은색 아우디예요" 하더란다. 헐! 이번엔 남편을 대리기사로 오해한 것이다. 우리 일행이 놀던 그 노래방은 단골 식당 손님들에게 서비스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그 식당 안에서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남편은 제대로 찾아 내려가는 중이었는데 대리기사를 기다리던 어떤 성질 급한 손님이 착각했던 모양.

사실 매번 오해로 키 뭉치를 넘겨받곤 하는 남편의 직업은 교수다. 아주 오래전, 미국 UCLA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 수업을 준비하려고 교수전용 복사실에 들어가 막 복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느 남자가 들어오더니 "여긴 교수전용입니다" 하더란다. 물론 영어로. 그래서 "나도 교수인데요" 했더란다. 물론 영어로.

남편이 그런 오해를 받아 왔던 이유는 좋게 말하면 나이가 그리 들어 보이지 않아서이고, 제대로 말하자면 전문직업인 같지 않아서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직업을 맞춰보라고 하면 나오는 말들이 대리기사, 주차요원, 붕어빵 장사, 군고구마 장사 등등이다. 물론 이런 직업들을 비하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낮엔 회사 다니고 밤에는 대리기사를 뛰고 있는 친구 남편도 있듯, 너도 나도 경우에 따라 다 할 수 있는 일들임을 안다. 다만 전혀 다른 '오해'를 받고 있는 남편의 상황이 재미있는 것이다.

남편은 처음엔 화도 많이 내더니만 요즘은 체념을 하는지 태연하게 잘 받아들인다. 차림새를 좀 신경 쓰면 달라질까 해서 옷을 차려 입어도 별 효과가 없더라. 배용준이 입고 나와 광고하는 옷을 사서 입는다고 다 배용준이 되는 건 아니더란 말이다.

남들이 보기만 하면 차 키를 건네는 남편... "자긴 별 수 없나 보다"

이런 사람과 37년을 동고동락 한 나 또한 뭐, 인상이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건 매한가지. 고급스럽지 않은 인상까지는 그냥 봐 주겠는데, 잠버릇은 좀 심각하다. 젊었을 때는 이를 심하게 갈더니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즘은 심한 코골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일주일 전 아침이다. 귓속에 귀마개가 박혀서 빠지지 않는다고 남편이 귀를 내밀며 빼달란다. 잘 때마다 유난을 떨며 귀마개를 하고 자는 남편. 내 코고는 소리 때문이란다. 술 마시고 자는 날은 더 심해 연말술자리가 많은 요즘 남편이 짜증내고 화내고 난리도 아니다. 어느 때는 밤새도록 내 고개를 반대편으로 휙 돌리고 손바닥으로 눌러 아침이면 목 통증이 너무 심해 고개를 돌리기 힘들 때도 있다.

그러면서까지 같이 자는 이유는 부부사이가 유별나게 좋아서가 아니다. '부부는 싸울 때도 잠은 꼭 같이 자야 된다'는 엄마 말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딱히 나가서 잘만한 마땅한 침대가 없어서다. 남는 방에 침대가 하나 있기는 하다. 그런데 매트리스 쿠션이 엉망이다. 버리려면 돈을 내라고 해 처분하지 못하고 그냥 방치해 두고 있는 상태. 그 침대에서 자고 난 어느 날 아침, 허리가 아파서 방에서 기어 나왔던 기억을 남편이 잊을 리가 없다.

남의 말을 쉽게 믿고 귀가 얇은 남편의 그 큰 귓구멍 속에 깊숙이 쳐 박혀 있는 파란색 스펀지 귀마개. 면봉을 귓속에 넣으니 스펀지는 점점 더 깊이 들어가기만 하고 조심스레 바늘도 꽂아 올려도 봤지만 소용 없다. 생선가시가 목구멍에 걸려서 병원 갔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귓속에 귀마개가 끼었다고 병원 갔다는 말은 아직 못 들어봤으니 병원에 갈 수도 없고. 한참만에 귀지를 파는 가느다란 쇠꼬챙이로 간신히 귀마개 꺼내는 데 성공했다.

그날은 대충 그렇게 해결이 됐지만 나의 이 코골이. 참으로 걱정이다. 무호흡이 위험하다고 하기에, 보험적용이 안돼서 거금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큰 맘 먹고 병원에 하루 입원까지 하며 검사도 해봤다. 종이 딱지 모양의 빳빳한 것에 전선을 연결해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는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부스스한 얼굴로 의사 앞에 앉았다. 컴퓨터가 밤새 그려놓은 그래프를 본 선생님. 무호흡은 아닌 것 같단다. 먼지 알레르기 때문인데 술을 마시면 더 심하니 술을 금하란다. 에이… 괜스레 거금만 날렸다. 이런 상태이니 엠티나 워크샵 등 여행을 갈 때마다 잠자리 때문에 주눅도 들고 자존심에 상처도 입는다. 자는 일에 관한 한 모두들 하나같이 구박이다.

코를 심하게 골아서 구박 받는 나와 어느 곳에 가든 차 열쇠를 건네 받는 남편.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한 부부'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이런 것들을 즐기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 재미난 우리 부부에게 남은 올 한해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된다.


태그:#루저 , #코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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