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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한 권의 새 책이 건네졌다. 국무총리 시절 정무수석으로 한 전 총리를 보좌했던 황창화씨가 자신의 책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위즈덤하우스)을 증정한 것이다. 황씨는 '한명숙 대책위' 상황실장과 대변인을 맡아 한 전 총리의 검찰수사와 재판 과정을 소상하게 들여다봤다.  

 

"총리님이 몸으로 쓴 것을 제가 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저자는 총리님입니다."

 

한 전 총리도 황씨에게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황씨의 책은 한 전 총리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두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한 전 총리에게 최대의 시련을 안긴 '5만 달러-9억여원 수수' 사건(저자는 각각 '곽영욱사건'과 '한만호사건'이라고 표기했다)이 그것이다. 황씨는 "한 전 총리는 두 사건을 모욕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검찰에 체포됐을 때 '도시락'을 준비한 이유

 

 황창화씨의 저서 <피고인 한면숙과 대한민국 검찰>.

두 사건은 모두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맡았다. 5만 달러 사건은 특수2부, 9억여원 사건은 특수부의 선임부서인 특수1부에서 맡은 것이다.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2009년 12월부터 2010년 7월까지 '한명숙 사건'에 집중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한명숙 수사부"라는 조롱섞인 지적까지 나왔다.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의 저자인 황씨는 두 사건을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단순한 형사사건이 아니라 공권력의 이름으로 한 총리, 나아가 민주진영에 굴복을 강요하는, 또다른 형태의 정치, 즉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 전쟁기간만도 700일에 이른다. 

 

"검찰이 한 총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종 날선 증오와 섬뜩한 적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전투적이었다. 차분히 자신들이 확인한 공소사실을 법리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적을 무찌르고자 하는 무모함만이 보였다.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행위,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계속하는 정치'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이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면 검찰이 한 전 총리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그러했다."

 

이런 "전쟁"을 대하는 한 전 총리의 태도도 단호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9년 12월 18일 '5만 달러 수수'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한 전 총리는 서울중앙지검검찰청에 도착해 김주현 당시 3차장과 2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다. "총리 예우에 어긋나지 않게 조사하겠다"는 김주현 3차장의 말에 한 전 총리가 날카롭게 응수했다.

 

"한 명의 시민으로 왔습니다. 예우를 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한 전 총리가 들고온 가방에는 '도시락'과 '성경책'이 들어 있었다. 한 전 총리가 검찰과 벌여야 할 "전쟁"에 어떻게 임하려고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품들이었다.

 

"한 총리는 체포되기 전에 도시락을 미리 챙겼다. 체포될 때 들고 온 가방에는 성경책과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검찰이 주는 밥은 먹지 않겠다는 한 총리의 뜻이 워낙 강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성경책을 들고 조사에 임하겠다는 의지 또한 완고했다."

 

'도시락'과 '성경책'이 예고한 것처럼 한 전 총리는 검찰의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검찰조사 도중 권오성 특수2부장과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권 부장이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간단하게 사실확인만 해주셨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전 총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들을 믿지 않습니다."

 

이는 "검사들이 한 총리로부터 들은 유일한 답변"이었다. 황씨는 "한 전 총리가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은 결코 아니었지만 검찰조사 과정에서 심한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며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전 총리 "내 직업은 피고인, 사무실은 중앙지법 510호"

 

 '불법정치자금 9억여원 수수 혐의'에 대한 1심 선고에서 무죄를 받은 한명숙 전 총리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검찰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5만 달러 사건('1차사건')과 9억여 원 사건('2차사건')은 연달아 일어났다. "사건의 내용도, 등장인물도, 발생시기"도  다른 사건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2차사건을 1차사건의 항소심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검찰이 별도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거나(곽영욱) 아예 구속상태에 있는(한만호) 인물들의 궁박한 처지를 악용해 사건의 얼개를 짜거나, 이들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점 등, 두 사건은 다르면서도 같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2차사건 자체가 1차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무죄를 예상한 검찰이 별건으로 시작했다는, 즉 시기적으로 너무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사건이 처음 알려지는 과정도 1차 때는 <조선일보> 보도, 2차 때는 <동아일보> 보도로 시작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검찰 '빨대'가 누설하고 수구언론이 사건을 기정사실화하고 한 총리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 했다는 점도 두 사건이 많이 닮아 있다."

 

실제 5만 달러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기 전날(2010년 4월 8일), <동아일보>는 '검찰, 한 전 총리 새로운 혐의 수사'라는 '검찰발 기사'를 통해 '9억여 원 사건'의 시작을 예고했다. 황씨는 "검찰이 2차사건의 제보를 받은 것이 2010년 3월 하순이었고, 수사에 착수한 것은 3월 26일경이었다"며 "수사에 착수하고 열흘 남짓 만에 수사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게다가 9억여 원 사건은 지난 2010년 7월 재판이 시작된 지 1년 3개월 만인 지난 10월에서야 끝이 났다. 황씨의 지적처럼 "1차사건이 태풍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면, 2차사건은 지루하게 계속되는 장마처럼 오래 끌었"던 것이다. 그만큼 한 전 총리가 겪어야 할 '고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1차사건이 한달 동안 12차례의 공판이 있었던 반면에, 2차사건은 증인신문을 끝내는 데만 2010년 12월부터 2011년 8월 29일까지 대략 9개월 동안 22차례의 공판기일을 필요로 했다. 한 총리는 도합 34차례나 서초동 법원을 드나든 셈이다. 그래서 한 총리는 검찰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언젠가부터 내 직업이 피고인이고, 사무실은 중앙지법 510호라는 생각이 든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다."

 

5만 달러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아 큰 타격을 입은 검찰로서는 9억여 원 사건에 '특수부의 운명'을 걸어야 했다. 결국 검찰이 무리수를 두면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한 전 총리에게 돈이 전달된 날짜를 기소장에서 특정하지 못한 점이나, 핵심증인이 진술을 번복하자 그를 위증혐의로 수사한 점이나, 사기전과자나 마약사범 등 '함량미달 증인들'을 내세운 점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만호 전 사장의 모친을 주임검사까지 나서서 강제구인해온 점 등이 그렇다. 한 전 사장의 모친이 강제구인돼 증언을 마치자 남편인 한 전 사장의 부친이 검찰을 향해 이렇게 항변했다.

 

"이렇게 하면 안돼요. 나 한사람 불러서 물어봤으면 족하지. 환자를 데려다 놓고 이게 무슨 짓이야. 만호 돈 뜯으려고 사기꾼, 깡패들이 우글우글했어요. 그 놈들한테 돈 뜯기고 엉뚱한 데 쓰고서는 헛소리한 걸 가지고 이 야단이야. 이 사람 진짜 아파. 이렇게 하면 진짜 안돼."

 

심지어 한 전 총리의 비서였던 김아무개씨(피고인)가 5차 공판에서 코피를 쏟아 변호인이 재판장에게 선처를 호소하자 검찰은 "김아무개 피고는 검찰조사나 곤란한 일을 당하면 상습적으로 쓰러지는 경향이 있다, 진단서를 가지고 와야만 선처를 고려할 수 있다"는 '반인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핵심증인인 한만호 전 사장을 무려 73차례나 소환조사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중산층은 집에 현금이 얼마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의 저자 황창화씨.

검찰은 아주 집요했다. 핵심증인이 검찰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자 "사실상의 재수사"에 들어갔다.

 

"한 총리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계좌추적, 통화기록 조회, 광범한 탐문 등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한 총리가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까지 찾아가 보증금이 현금이었는지 수표였는지 등을 캐묻고 다닌다고도 했다. 오죽했으면 검찰이 재판 전에는 피의사실 공표에만 힘을 쏟고 정작 재판할 때 수사를 한다는 비웃음을 샀겠는가."

 

황씨는 "검찰은 한 총리 형제 자매의 모든 금전거래를 샅샅이 뒤졌음은 물론 누가, 언제, 누구에게 전화했고 그 전화를 걸고 받은 장소가 어딘지까지 밝혀냈다"며 "특히 김 비서에게 돈을 빌린 여동생 한씨의 재산상태와 금융거래 내역을 다시 한번 완벽하게 까뒤집은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한 총리의 여동생은 '언니의 자금관리인'이라는 혐의를 씌우면서 한 총리가 무슨 큰 정치자금을 움직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려 했다. 여동생에 대한 신문이 대개 그렇게 지저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시부모 사는 집이 자택인가, 전세인가' '언제 퇴직했는가' '무엇으로 생활하는가' '세를 놓았으면 집세는 얼마인가' '시부모에게 용돈을 주는가, 얼마를 주는가' '집에 (현금) 얼마를 보유하고 있는가' '집에 금고는 있는가' 등의 질문을 한 뒤, 검사는 인구에 영원히 회자될 만한 '충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중산층은 집에 현금이 얼마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황씨는 이러한 검찰의 행태를 '인디언의 기우제'에 비유했다. 비가 올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지냈던 인디언들처럼 검찰도 한 총리를 '유죄'로 만들 때까지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인디언 기우제의 성공확률은 100%라고 한다. 인디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한번 지내기 시작하면 비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지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는 인디언의 기우제와 닮았다. 유죄라는 확고한 믿음 내지는 유죄여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과 처벌해야 한다는 신념만 강하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혐의가 입증될 때까지 수사를 계속하는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이렇게 집요한 검찰에 '진술거부권 행사'로 맞대응했다. 특히 5만 달러 사건과 달리 9억여 원 사건은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전 총리도 "검사가 제기한 소위 공소사실은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공의 사실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1차사건에서는 검찰이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한 총리 공관 만찬에 한 총리와 곽 사장이 참석한 것까지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변호인의 피고인 신문을 통해 한 총리가 답변할 내용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한 총리는 한 사장을 단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었다. 검찰의 공소사실 자체에 대해 '모른다'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한 전 총리의 진술거부권 행사로 인해 검사가  한 시간이 넘도록 한 전 총리에게 혼자서 질문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1심에서 검찰이 패소했을 때 항소권 제한하는 방안 검토해야"

 

하지만 이렇게 집요했던 검찰은 한 전 총리를 이기지 못했다. 5만 달러 사건(2010년 4월 9일)에 이어 9억여 원 사건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10월 31일). 최소한 두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한 전 총리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지난 6일 만난 황씨는 "두 사건 모두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성급하게 터뜨린 것들"이라며 "여기에는 '친노세력 죽이기'라는 정치적 상황논리가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전 총리가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런 일(돈 수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것이 한 전 총리가 쌓아온 신뢰감"이라고 강조했다.

 

황씨는 "미국의 어느 주에서는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 1심에서 패소했을 때 항소를 못하게 돼 있다고 한다"며 "무리한 기소를 막고 피고인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검찰의 항소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연세대를 졸업한 이후 성남노련 정책실장을 지내는 등 경기도 성남에서 10여년간 노동운동을 벌였다. 지난 1998년 임채정 전 국회의장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노무현 대통령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2003년)에 참여했고,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정무2비서관과 정무수석으로 각각 이해찬 전 총리와 한 전 총리를 보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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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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