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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 조선은 자전거의 나라였다. 자전거는 자동차 등 다른 교통수단을 압도했을 뿐만 아니라 통근, 통학, 업무, 레저 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쓰였다. 그 시대 자전거문화는 어땠을까.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앞으로 다가올 자전거 시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진 않을까. 그 시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본다. - 기자 말

불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죽음의 신이 탄 자전거

"자전거 1대가 곡예 하듯 차도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캄캄한 밤인데도 전조등을 밝히지 않은 것은 물론 후미반사경(야광판)도 달지 않았다. 때마침 시내버스가 자전거를 향해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들었다. 아슬아슬한 순간 뒤늦게 자전거를 발견한 시내버스 운전사가 핸들을 확 꺾어 가까스로 충돌만은 면했다. 지난달 30일 밤 서울 성동구 화양동 167의 76 앞길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향신문> 1983년 10월 17일 치)

자전거 도입 초창기, 등을 달리지 않고 밤거리를 달리는 자전거는 사람들에게 공포였다.
 자전거 도입 초창기, 등을 달리지 않고 밤거리를 달리는 자전거는 사람들에게 공포였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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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 제목은 '死神(사신) 싣고 달리는 밤거리 자전거'다. 죽음의 신이라니, 무시무시한 별명이다. '아니, 자전거 정도에 그렇게 겁을 먹다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밤중 도로에서 만난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자전거는 조용하다는 특징 때문에 19세기부터 전쟁에 널리 쓰였다. 말과 달리 먹을거리를 줄 필요가 없으니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어떤 교통수단보다 가벼워 들고 움직일 수 있다. 말이나 노새는 때때로 돌발 행동을 하지만 자전거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소음이 없어 야간에도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 대부분 나라가 자전거부대를 만든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모든 건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침투하는 쪽에서야 은밀하고 조용히 움직이는 자전거가 고맙겠지만, 당하는 쪽에선 황당하기만 하다. 오래 전 시속 4km 보행속도로 움직이던 시절, 걸음 몇 배 속도로 나타난 자전거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때가 밤이라면 말이다.

'불을 켜지 않는 자전거' 문제는 그 역사가 꽤 깊다. 1930년대 이미 자전거 교통사고의 주원인으로 불을 켜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 무등화(無燈火)' 문제가 지목되고 있으니 말이다.

"교외 일대가 대경성으로 편입되면서부터 경성 부내의 교통량은 날을 따라 증가일로를 달음질 치고 있다. 이리하여 가지가지의 사고가 발생하여 뜻하지 아니한 참사를 빚어내고 잇는데 특히 근년에는 자전거 교통사고가 많아 경찰이 이 방면의 원인을 탐색해본 바 그 대부분이 밤에 무등화로 말미암음이 판명되어 이를 취체하리라는데 본정서에서도 이들 위반자를 적출하기 위하야 근근 각처 교통 요중에 서원을 배치시켜 위반자에게는 엄벌을 하리라 한다." (<동아일보> 1938년 2월 21일 치)

1930년대 후반 불을 켜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는 꽤 골칫덩어리였다. 오토바이나 자동차와 달리 엔진 소리를 나지 않으면서 꽤 속도를 내는 교통수단. 게다가 당시는 자동차와 우마차, 인력거와 자전거, 사람이 모두 뒤엉켜서 다니던 시절이다. 어둠 속 무법자를 단속하기 위해 경찰은 단단히 칼을 갈았다. 그런데 효과가 크진 않았던 모양이다. 무등화 자전거 엄벌 기사가 계속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야광등을 켜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를 단속한 역사는 사실 일제강점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고종·광무 9년) 12월 30일 제정된 가로관리규칙엔 '야간에 등화(燈火) 없이 자전차(自轉車)의 통행을 금(禁)한다'란 구절이 나온다. 밤에 불을 켜지 않고선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뜻이다. 자전거 도입 초창기부터 소리 없이 다가오는 밤의 무법자는 경계 대상이었다.

수시 야간 단속, 불 없는 등잔 달고 다니다 '딱' 걸린 자전거

일제강점기 도심 곳곳에서 불을 켜지 않는 자전거를 단속했다. 자전거 운전자 가운데는 조그만 등잔을 준비해서 다니는 이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도심 곳곳에서 불을 켜지 않는 자전거를 단속했다. 자전거 운전자 가운데는 조그만 등잔을 준비해서 다니는 이도 있었다.
ⓒ 우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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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을 전후해서 자전거 대회가 열리기 시작하고 자전거 경기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는다. 짐을 나르는 장사치들 사이에서도 자전거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10년대 초반 1000여 대 정도에 불과했던 경성 시내 자전거는 1922년에 이르면 5700여 대 정도로 늘어난다. 빠른 성장이었다.

갑자기 자전거가 늘었으니 안전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긴 어려웠다. 정부에선 강력하게 단속해 기강을 잡고자 했다. 경찰서에선 수시로 야간에 등을 켜지 않은 채 달리는 자전거를 단속했다. 지금의 음주운전 단속처럼 말이다. 1924년 9월 12일 밤 진남포서가 그랬다. 경찰서는 그 날 단속을 위해 비번순사까지 동원했다. 그 날 풍경을 <시대일보>(1924년 9월 17일 치)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취체를 한 결과 취체를 받은 자가 52명이나 되는데 그 중에는 본래 자전거에 등화의 장치가 없이 야간통행을 한 자도 많고 또는 조그만 등잔을 준비하여 가지고도 불을 켜지 않고 다니는 자도 많았음으로 그들은 경찰규칙에 위반하였음으로 엄중한 처벌을 당하였다 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앞등 뒷등을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요령껏 등을 달아야 했는데, 집에서 쓰는 등잔을 자전거에 달고 다닌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기름이 아까워서 켜지 않은 채 생색만 내 경찰에 걸리긴 했지만.

당시 경찰이 자전거만 놓고 야간 무등화 단속을 한 건 아니었다. 도로를 다니는 모든 교통수단이 대상이었는데, 유독 자전거가 많이 걸렸다. 동대문경찰서가 1920년 11월 20일 밤부터 21일 새벽까지 벌인 무등화 단속차량 검문에서 자전거는 48건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하차(짐수레) 47건, 하마차(말이 끄는 짐수레) 41건, 하우차(소달구지) 19건 순이었다. 자전거가 교통규칙을 가장 많이 어겼다기보다는 가장 많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당시 경찰은 엄벌만 하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수시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라디오 보급률도 낮았다. 문맹률 또한 높았으니 정부 조치가 쉽게 먹혀들긴 힘들었을 것이다. 무조건 잡아들여 벌금을 매기면 그 원성을 감당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1928년 함흥경찰서의 단속기준을 보면 단 한 번 등을 달지 않았다고 해서 바로 처벌을 하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함흥경찰서는 매월 6회 이상 수시로 등 없이 다닐 때 단속한다고 언급했다. 우연히 또는 실수로 등을 달지 않았을 때는 선처를 베풀었으며, 자주, 꾸준히 등을 달지 않았을 때만 처벌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자전거 등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1937년 8월 26일 치 <동아일보> 기사에 잘 나타난다. 기사가 나온 시기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온 나라가 전쟁체제로 돌아가던 때였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폭격을 피하기 위해 야간소등을 실시했다. 광고등 옥외등은 모두 꺼야 했고 실내등은 불을 켜되 검은 보자기로 가려서 불빛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했다. 예외는 있었다. 우편국과 병원 야간시장은 종전처럼 불을 켤 수 있었다. 전차 자동차 자전거 또한 그대로 불을 켜고 달리게 했다.

자전거 등화 의무 규정 사라진 현재, 다시 자전거가 늘어나는데...

자전거가 조금씩 느는 추세다. 다시 생활자전거 시대가 돌아오면 밤길 운전도 늘어날 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자전거등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자전거가 조금씩 느는 추세다. 다시 생활자전거 시대가 돌아오면 밤길 운전도 늘어날 터.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자전거등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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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어느덧 21세기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무등화 자전거를 골치 아파하기는 지금 경찰 또한 매한가지다. 특히 신군부가 집권한 5공화국 초기 무등화 자전거에 대한 엄포는 서슬이 퍼렜다. 1983년 내무부 치안본부는 밤에 전조등을 켜지 않고 다니는 자전거를 철저히 단속하겠다며 "반드시 전조등을 달도록 계몽하고 두 번 이상 적발될 때는 교통법규위반통지서를 발부, 범칙금을 물리거나 즉결심판에 넘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두 번 이상 등 없이 다니면 바로 범칙금이나 즉결심판이었으니 일제강점기 때보다 오히려 더 강력한 처벌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사람들이 등을 켜지 않고 다닌 이유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전거는 주로 생활용으로 쓰였기 때문에 대부분 자전거는 전조등이 달린 상태로 만들어졌다. 전조등 또한 자전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전거 전조등을 켜지 않았을까.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애초부터 전조등이 없는 중고 자전거를 샀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힘들어서였다.

"현재 시판되는 각종 자전거 가운데 밤에 다닐 만한 표준차와 경쾌차 및 운반차 등은 모두 전조등과 야광판이 부착돼 생산된다. 그런데도 자전거들이 한결같이 '빛'을 잃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관계자들은 "밤에 자전거를 모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시장이나 점포에서 일하는 서민들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아예 전조등이나 야광판이 떨어져나간 중고자전거를 사는데다 "발전식 전조등을 밝히려면 페달을 밟는데 힘이 더 든다"고 아예 전조등을 떼어버리고 만다는 얘기다." (<경향신문> 1983년 10월 17일 치)

야간 자전거 운전은 위험하다. 자전거 운전자들이 도로를 다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가 도로를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야간 자전거 운전은 위험하다. 자전거 운전자들이 도로를 다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가 도로를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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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도로에서 자전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자동차가 대신하면서 자전거 등화 의무 조항은 사라지고 만다. 경찰과 자동차 운전자, 보행자들을 놀래키던 '밤길 무등화 자전거'는 자전거의 퇴장과 함께 먼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허나 역사는 돌고 돈다. 가난하던 시절 서민들 손발이던 자전거가 이젠 좋은 여가용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드문드문 찻길에도 자전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 불을 켜지 않고 달리던 자전거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서였을까.

2008년 9월 25일 경찰청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기엔 '자전거도 밤이나 비나 눈이 많이 내릴 때는 전조등과 미등을 켜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즉 과거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반드시 불을 켜도록 한 것이다. 경찰에서 야심만만하게 집어넣은 법안이었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서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아직까지 자전거가 교통용으로 쓰이기보다는 여가용으로 쓰이는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비판이 있었다. 자전거 활성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전거 등화 의무 조항은 사라졌지만 그 필요성은 여전하다. 정부는 사용자의 의무를 강조하기보다는 생산자의 의무로 방향을 돌렸다. 2010년 12월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시민단체와 함께 47개 제품에 대한 안전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엔 반사경 부착 여부가 포함됐다. 35개 제품은 반사경 성능 안전기준 미달이었고, 14개 제품은 아예 반사경을 달지 않은 상태였다. 대부분이 낙제점이었다. 현재 자전거의 실태다. 자전거 사용자 또한 자전거등에 대해 둔감하지만 만드는 쪽은 더욱 심각하다.

일제강점기와 5공화국 시절엔 자전거등을 켜지 않는 사용자만 엄벌에 처했지만, 이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태양열을 받아 밤이 되면 반짝이는 전조등이나, 낮에 한껏 받은 햇빛으로 야간에 반짝이는 페인트, 몸통에 '쏙' 들어가 악조건에도 잘 망가지지 않는 후미등 등 관련 기술들이 다양하다. 지금도 자전거박람회 때면 깜짝 놀랄 만한 부속품들이 나오곤 한다.

1983년 내무부 치안본부는 "도심의 교통체증을 부채질하는 것은 물론 갖가지 교통사고도 일으키고 있다"며 자전거에 대해 때려잡을 듯이 덤벼들었지만, 지금 자전거는 애물단지가 아니다. 자전거를 어떻게 하든지 잘 활용해 기름문제, 공해문제, 도심정체 문제의 해결사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자전거 무등화' 문제도 좀 더 사용자 편의적이 되지 않을까. 적어도 일제강점기 때나 군사정부 시절보다는 더 세련돼야 하지 않겠는가.


태그:#자전거, #자전거무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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