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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아침, 아내가 만들어 준 배추전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김장철을 전후해서 먹는 배추전 맛은 기가 막히지요. 내가 처음으로 배추전 맛을 본 때는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하루라도 안 보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매일 붙어 다니던 시절이었지요.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명절 때였는지 제사 때였는지 아내의 집을 인사차 방문했습니다. 그때 장모님은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기름이 튈까봐 신문지를 잔뜩 펼쳐놓고 열심히 부침개를 부치고 계셨습니다. 배추를 한 잎 한 잎 뜯어서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그 위에 물에 풀은 밀가루를 국자로 퍼서 살짝 끼얹는데…. 꼭 파전을 부치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배추전 잘 먹으니 경상도 사람 다 됐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그 위에 배추잎이 두어장 올려놓고 물에 풀은 밀가루를 국자로 살짝 끼얹어 준다. 한쪽면이 익은 다음에 뒤집는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그 위에 배추잎이 두어장 올려놓고 물에 풀은 밀가루를 국자로 살짝 끼얹어 준다. 한쪽면이 익은 다음에 뒤집는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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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배추전을 얼마나 많이 부치시는지 쟁반 한가득 배추전이 쌓여 있었습니다. 장모님은 체구가 자그마하셨어도 손은 참 크셨습니다. 언제나 음식을 넉넉하게 하셨지요. 그도 그럴 것이 장모님은 종갓집의 맏며느리셨습니다.

모든 게 어색하고, 꿔다놓은 보릿짝 모양으로 서 있던 내게 장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네, 배추전 먹어 봤나?"
"아뇨."
"그래, 한번 먹어 볼 텐가?"

장모님은 맛을 보라며 노릇노릇한 배추전을 손으로 찢어서 접시에 담아 양념간장과 함께 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맛이란 게 싱겁기도 하고…. 솔직히 아무 맛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배추전은 경상북도 토속음식으로 명절 때나 제사 때 온 가족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아내의 고향은 경북 영주였습니다. 아내와 결혼을 하고 처갓집을 내 집 드나들듯이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배추전은 처갓집 밥상의 단골메뉴였습니다.

처음 배추전을 먹었을 땐 싱겁기도 하고, 아무 맛도 없어 간장 맛으로 먹었습니다. 그런데 먹으면 먹을수록 고소하고, 입맛이 당기는 게 아무리 먹어도 위에 부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속도 편했지요. 결국, 그 맛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명절 때나 제사 때, 배추전을 많이 부쳐 소쿠리에 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뒀다가 먹을 때마다 프라이팬에 데워먹곤 했습니다. 장모님은 내가 배추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고, 갈 때마다 배추전을 부쳐주셨습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늘 흐뭇하게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박 서방은 뭐든지 잘 먹으니 참 좋다. 배추전을 잘 먹는 걸 보니 경상도 사람 다 됐네."

배추전에 문득 떠오른 기억, 장모님이 그립습니다

배추전을 노릇노릇하게 익힌 다음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다.
 배추전을 노릇노릇하게 익힌 다음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다.
ⓒ 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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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갓집에 갈 때마다 배추전을 부쳐주셨던 장모님은 7년 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는 장모님이 살아계실 때 어리광을 많이 부렸습니다. 내가 막내 사위여서 그랬던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모님은 내 농담도, 어리광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나를 참 예뻐해 주셨던 것이지요.

아침에 아내는 배추전을 부치면서 틀림없이 장모님 생각을 했겠지요. 우리집 아이들도 나를 닮아 배추전을 좋아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아내는 계속 배추전을 부치고 있습니다. 집안 전체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합니다.

요즘도 비가 오거나 날씨가 쌀쌀해지면 장모님이 부쳐주셨던 배추전이 생각납니다. 장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움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아침입니다. 제일 늦게 일어난 늦둥이 은빈이가 식탁에 앉아 엄마랑 소곤소곤 얘기를 하면서, 아침밥 대신에 아내가 부쳐준 배추전을 먹고 있습니다. 모든 게 그리운 계절입니다.


태그:#배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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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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