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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송중기 분)는 기득권 위주 세상에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고자하는 젊은의 상징을 나타낸다. 이도만의 조선을 꿈꾸는 청년 이도에서 현재 21c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젊은이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청년 이도(송중기 분)는 기득권 위주 세상에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하고자하는 젊은의 상징을 나타낸다. 이도만의 조선을 꿈꾸는 청년 이도에서 현재 21c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젊은이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 sbs 뿌리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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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초반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총 24부작으로 기획되었고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기준의 정체마저 드러났으니 이야기 전개상으로도 중대한 국면전환을 맞은 셈이다.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의 관계를 촘촘하고 빼곡하게 설정하고, 거기서 탄탄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데 능한 김영현·박상연 콤비의 실력이 전작인 <선덕여왕>(2009)에 이어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그 빛을 발했다.

또한 <쩐의 전쟁>(2007) <바람의 화원>(2008) 등을 연출한 장태유 PD 역시 6월 중순부터 일찌감치 사전 제작에 돌입하면서 완성도 높은 영상으로 보답했다. 이 신인 감독은 두 전작의 흥행이 결코 운이나 우연이 아니었음을 <뿌리깊은 나무>를 통해서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는 듯하다. 10화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뿌리깊은 나무>의 현재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촬영 분량 바닥 난 <뿌리깊은 나무>

그러나 <뿌리깊은 나무>의 다른 의미는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다. <뿌리깊은 나무>는 현재 11화를 기점으로 촬영 분량이 모두 바닥났고, 지난 4일부터는 12화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전작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생방 촬영'이라는 악령이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듯하다. <바람의 화원>을 연출하던 당시 문근영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자 '이틀 연속 결방'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던 장 PD로서는 더 절박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는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뿌리깊은 나무> 역시 앞으로도 계속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물론 생방 촬영의 폐단이 비단 <뿌리깊은 나무>나 <바람의 화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100% 사전 제작의 필요성은 PD집단 내부에서도 언제나 있어 왔다. 100% 사전 제작을 목표로 했으나, 24화 중 20화까지 제작한 채 방송에 돌입한 <태왕사신기>(2007)의 사례를 보자.

<태왕사신기>는 극 중후반까지 수준높은 완성도를 유지해 흥행세를 이어갔으나, 방영 기간에 촬영을 하던 도중 배용준의 부상과 김종학 PD의 교통사고가 겹치며 '용두사미' 드라마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악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마지막 화에 대해 시청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작가인 송지나가 직접 진화에 나서는 등 촌극도 벌어졌다.

또한 지난해 상반기 최고 히트작인 <추노>(2010)의 연출자 곽정환 PD도 "사전 제작에서는 연출과 편집을 모두 관여할 수 있지만, 방송시간에 쫓기게 된 중반 이후부터는 연출조차도 쪼개야 할 경우가 많았다"라며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이 정도면 드라마 사전 제작의 필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라 하겠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종종 시도 되었던 100% 사전 제작 드라마들은 모두 흥행에서 고배를 마셨다. 곽정환 PD의 <한성별곡-正>(2007)이나 윤상호 PD의 <비천무>(2008) <탐나는도다>(2009), 그리고 이장수 PD의 <로드 넘버원>(2010)이 모두 100% 사전 제작되었으나 그들 모두 쓸쓸한 결과를 안고 퇴장했다.

현재 방영 중인 김경용 PD의 <더 뮤지컬>(2011)도 예외는 아니어서, 11월 4일 기준으로 3.7%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앞선 드라마들이 모두 작품성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으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구축했던 것과는 다분히 대조적인 흥행 성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대한민국 드라마 시장에서 사전 제작이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의 사례로 종종 활용되곤 한다.

이에 대하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분석은 다음과 같다. 바로 '시의성의 결여'라는 것인데, 드라마는 시대의 유행을 타기 마련이고 유행은 짧은 주기로 매번 바뀌기 마련이어서, 사전 제작 드라마는 그 유행을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비천무>가 처음 제작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해신>(2004) 등의 무협 사극이 크게 인기를 끌고 있었지만, 정작 편성이 되고 방영이 된 2008년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전 제작' 선택 아닌 필수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설명은 조금 비겁하고 치졸한 측면이 있다. 설령 유행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방송사를 찾지 못해 표류하던 <비천무>가 겨우 편성받은 시간대는 '금요일 저녁 2회 연속 방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하더라도 동시간대 예능 프로그램들과 경쟁해 시청률을 따내기도 힘든 시간대 편성이었다.

상황은 다른 프로그램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한성별곡-正>은 8부작으로 겨우 한 달 방영했을 뿐이었고, 젊은 여성층을 타겟으로 제작한 <탐나는도다>는 엉뚱하게도 중년 여성층의 시간대인 주말 8시에 편성되었다. 그나마 130억 원 제작비를 들인 <로드 넘버원>정도가 수목 저녁 시간대를 편성받으며 제대로 기회를 부여받는 듯 보였으나, 그 시간대는 이미 그해 최고의 시청률을 차지한 <제빵왕 김탁구>(2010)와 경쟁하는 땜빵용 편성이었다.

사전 제작 드라마가 그동안 크게 힘을 쓰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 사람들의 주장대로 '시의성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 제작 드라마가 '즉시 방영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땜빵 취급을 받거나 변두리 시간대를 편성받아왔기 때문이다. <한성별곡-正>은 KBS 드라마가 경쟁사에게 계속 밀리자 분위기 전환을 위해 편성된 모험수였고, <탐나는 도다>는 전작인 <잘했군 잘했어>(2009)의 조기 종영으로 주말 시간대에 급히 편성된 땜빵이었다. 또한 <비천무>가 금요일 변두리 시간대를 편성받기까지 4년을 기다렸고, <더 뮤지컬>이 1년을 꼬박 기다렸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억울하고도 분명한 사실은 이들 사전 제작 드라마들은 경쟁작들과 싸워볼 기회도 힘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충분한 프리프로덕션 기간을 갖고 충분히 사전 제작을 한 뒤에 방송에 들어간다. 또한 일주일에 1회 밖에 방영되지 않아 방송이 들어간 이후에도 충분한 제작 시간을 확보해 촬영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다. 일주일에 2회는 엄청난 분량이다. 영화로 치면 웬만한 영화의 전체 러닝타임에 필적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어느 정도 사전제작을 한 뒤에 방송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몇 주만 지나면 따라잡히고 마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몸이 두 개라고 한들 PD는 이 상황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24화 중 20화를 촬영하고도 악재가 겹치면 마지막화를 최악의 컨디션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태왕사신기>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깨닫지 않았는가?

쪽대본, 생방 방송이 치부가 아닌 당연한 풍토가 되면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는 영화계의 조소에도 우리는 이렇다 할 만한 항변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또한 지난 8월 배우 한예슬 사태 역시 언제 터지는지가 문제였을 뿐 폭발은 어느정도 예정된 상황이었다. 우리가 미국과 일본처럼 주 2회 방송을 1회로 줄이는 것이 어렵다면, 한국 방송계는 적어도 미니시리즈만이라도 100% 사전 제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땜빵용'이 아닌 '주연'으로 편성된 사전 제작 드라마는 흥행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완성도 높은 미국과 일본의 드라마들이 이미 세계 곳곳에서 듬뿍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한류가 예년만 못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영향력 있는 한국 드라마가 충분히 기획되고 촬영된 상황 속에서 제작된다면 국제 사회에서의 경쟁력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한 달 간 우리가 열광했던 것이 '생방 촬영' 된 <뿌리깊은 나무>가 아닌 충분히 기획되고 '사전 촬영' 된 <뿌리깊은 나무>였음을 기억하자. 사전 제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태그:#뿌리깊은나무, #사전제작, #비천무, #한성별곡, #태왕사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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