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세인트 제임스 공원(St. James Park)을 찾은 것은 약 2주 전인 10월 18일이었다. 공원은 때 아닌 캠핑장으로 변해 있었다. 500여 개의 크고 작은 텐트들이 공원 전체를 '점령'하고 있었다. 'Occupy Toronto(토론토를 점령하라)'는 99%의 덜 가진 자들이 1%의 더 많이 가진 자를 항거해서 일어난 운동이다. 전 세계 어느 이름 있는 도시마다 이 운동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공원은 뉴욕의 월가에 빗댈 수 있는 토론토의 재정 중심가인 베이 스트리트에 걸어서 가기에 가까운 위치다.

 

 

'안내'(Information)라고 손글씨로 사인을 건 텐트 안에는 미모의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비록 전문기자는 아니지만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여기 머무를 것입니까?"

"이 운동으로 세상이 바뀔 때까지요."

대리석처럼 고혹적인 그녀의 즉각적인 대답이었다. 물론 그녀는 앞에 놓인 노트북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대답으로 된통 펀치를 얻어맞은 셈이다.

 

 

"저 자들은 불법으로 공원에 거주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게 해서 비즈니스가 타격을 입고 있지요."

 

공원 길 건너 '스타 피시(Star Fish)'라는 고급음식점 주인의 말이다. 롭 포드(Rob Ford) 토론토 시장은 공원 주위의 점주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원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으로 판단이 서는 날 공원에서 캠핑하고 있는 개인들을 축출하는 것을 고려하겠습니다."

 

시장의 이 계획은 "99%의 덜 가진 자들이 원하는 세상으로 바뀔 때까지 머물겠다"는 미모의 점령군 대변인이 한 말과 상충된다. 시장의 결심에 의해 '점령군의 해방구'가 하루아침에 풍지박산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2 주 만에 가 본 공원의 '점령군'들은 사기가 여전해 보였다. 우선 직업들이 없는 젊은 백수들이 주로이다 보니 딱히 잃을 것도 없어 보였다. 풍경을 잠깐 스케치해보자. 공원에 영구적으로 세워진 지붕이 있는 건물이 '점령군들의 연단'이자 아고라의 센터다. 그 근처엔 대여섯의 순박한 남녀들이 기타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구경꾼들이 모이지 않고 있다. 둘러보니 여기 저기 개인적인 논쟁이 벌어지고도 있다.

 

안내 천막 앞에서 털모자를 눌러쓴 점령군 전사가 미디어에서 온 리포터와 인터뷰인지 아니면 설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같은 점령군 동지들 간의 토론도 눈에 뜨인다. 가까이 가서 들으니 "지난 번 베이 스트리트 있는 트럼프 빌딩으로 가지 않았나? 시위자는 겨우 33명이었는데 그 빌딩 안에 있는 변호사들 수만 55명이니 무슨 수로 우리가 해 볼 것인가?" 젊은이의 고충에 대해 수염이 풍성한 노인은 그렇다고 딱히 묘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점령'할 것이 뭔지를 다시 정의해야 해. 결국 우리가 '점령'할 것은 '민심'이지. '99%의 민심 말이야."

 

그러나 그 바다 같은 '민심을 점령'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점령군의 해방구'는 월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즉흥적인 전투가 아니라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통나무들이 잔뜩 쌓이고 건장한 청년이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사실 '점령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포드 시장의 위협도 아니고 눈초리를 치켜든 경찰도 아니다. 야금야금 다가오는 혹독한 캐나다의 겨울이다. 온타리오 공무원노조(Ontario Public Service Employee Union)를 비롯한 노조들은 몽고에서 사용되는 월동용 원형천막을 3 채나 기증했다. 이 알록달록한 원형천막 3 채의 값은 2만 달러가 넘는다.

 

 

그 중 하나는 도서관으로, 다른 하나는 치료소로, 나머지 하나는 여자 전용천막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도서관이라고 문을 연 원형천막에 들어가 보았다. 원형천막은 땅바닥에 마루를 깔고 내부구조물은 각목으로 돼 있고 그 밖을 모직 천으로 덮었다. 천정에 큰 구멍을 내 놓은 것은 안에서 요리를 하거나 난방을 할 경우 연기를 밖으로 뽑기 위한 것이다. 나무 구조물들은 알록달록 페인트칠을 해서 장식해 놓았다. 도서관 내부는 아직 장서가 미미했다. 밀크 박스에 책 몇 권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다. 세계적인 지성이자 좌파진보 학자인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저서 '언어와 정치(Language and politics)'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점령군'들이 고뇌하는 것은 두 가지 질문이다. 첫째는 '왜 너는 항거하는가?' 둘째는 '무엇을 항의하는가?' 이다. 중구난방의 주장들이 표출됐지만 그 중 모범답안으로 뽑힌 것을 소개한다. 다 길게 번역하지 않기로 한다.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에게 항의하는 게 아니다. 경제적인 번영에는 피할 수 없는 악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 그러나 재정기업이나 거대산업이 그들의 이윤만을 위해 시장을 조작하고 대중들을 억압하며 이 세계를 황폐화시키도록 정부가 방관하거나 또는 상도덕을 지키는 기업들이 그렇지 않는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또는 부패하고 무책임한 공공기관들을 나 자신 상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 나는 항거할 수밖에 없다."

 

아직 토론토의 밤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2주 후에 그저께 다시 가 본 공원은 경찰도 보이지 않고 '점령군'들은 그런대로 태평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주 미국 뉴욕 인근에 때 아닌 눈이 내렸듯 어느 날 상황은 돌변할 수 있다. 갑자기 강추위가 몰아치면 여름용 얇은 천막에서 자다가 하루아침 동상에 걸릴 수도 있다. 일찍 지는 늦가을의 석양을 등지고 집을 향할 때 "세상이 바뀔 때까지 운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안내 천막 안의 젊은 아가씨, 그녀의 단호한 말이 귓전에 남았다.


태그:#토론토를 점령하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