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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에 그려진 종성. 두만강을 끼고 있는 읍성이다.
▲ 종성 고지도에 그려진 종성. 두만강을 끼고 있는 읍성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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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옥이 이끄는 군대가 회령을 통과하여 종성에 입성했다. 북봉을 지나 국사당령을 넘으면 조선의 최북단 온성이다. 두만강이 흐르는 북방 전략거점으로 경원과 함께 삼각 요충이다. 종성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은 숨소리를 죽였고 백성들은 환호했다. 종성에 도착한 이징옥이 종성 교도(敎導) 이선문을 불렀다.

"이 땅은 대금(大金) 황제가 일어난 땅이다. 영웅도 때가 있으니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내가 지금 큰 계책을 정하고자 하니 너는 조서를 초안하라."

이징옥이 조서라는 낱말에 힘을 주어 명령했다. 예를 갖춰 붓을 잡으라는 것이다. 임금이 내리는 훈유서가 교서(敎書), 황제가 내리는 선포문이 조서(詔書)다.

"소인은 글이 짧아 붓을 잡기가 민망합니다."

혼란의 시대, 난세(亂世)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처세다.

"어려울 것 없다. 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

이징옥이 나직이 타일렀다. 마지못해 이선문이 붓을 잡았다.

"대금(大金) 이후로 예의와 법도가 끊어져서 안타깝다. 야인들이 넘어와 무죄한 우리 백성들을 죽이고 우리 땅에서도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가 있는가 하면 도성에서는 반란역적들이 원로대신을 죽이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하늘이 노하여 이 세상을 참하게 다스리라 유시하였다. 짐(朕)이 박덕하여 하늘의 명을 다 받들 수 있을까 염려되나 하늘의 뜻을 폐하지 못하여 황제의 위(位)에 오르노니 대소 신민(臣民)은 그리 알라."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이징옥의 황제즉위조서
▲ 조서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이징옥의 황제즉위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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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朕)이라는 말은 황제들만이 쓸 수 있는 전용 언어다. 고려의 왕들이 한동안 짐이라는 용어를 썼으나 원나라가 한번 눈을 부릅뜨자 고(孤)로 낮춰 불렀고 조선의 왕들은 북경의 눈치를 보느라 감히 써보지도 못하고 과인이라 불렀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할 때까지 505년 동안 그랬다.

1897년 10월 2일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유제를 올렸던 곳
▲ 원구단 1897년 10월 2일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고유제를 올렸던 곳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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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옥이 감정을 잡고 읊었으나 붓을 잡은 이선문이 한 글자도 나아가지 않았다. 맥이 빠진 이징옥이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왜 쓰지 않았느냐?"

"지병이 도져 쓸 수 없었습니다."

이선문이 억지로 콜록거렸다.

"나에게 대꾸할 힘이면 충분히 쓸 수 있지 않느냐?"

"글이란 모름지기 힘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쓰는 것인데 머리가 아파 쓰지 못하겠습니다."

버티는데 장사 없다. 단칼에 날려 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민심을 얻어야 할 때다. 이징옥이 이선문을 포기하고 진무(鎭撫) 황유에게 쓰도록 했다. 마지못해 붓을 잡은 황유가 '유시하였다'의 유(惟)자를 유(由)자로 썼다.

"글자가 틀리지 않았느냐."

추사 김정희가 쓰던 붓과 벼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붓과벼루 추사 김정희가 쓰던 붓과 벼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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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옥의 지적에 황유가 유(有)자로 고쳐 썼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이징옥이 이선문을 노려보았다.

"몸이 아파서 글을 쓰지 못할지라도 틀린 글자는 바로 잡아줄 수 있지 않느냐? 너는 글께나 배운 유생인데 왜 가르쳐 주지 않느냐?"

"우둔한 생각에는 유(有)자가 마땅한 듯합니다."

이선문의 입가에 조소가 흘렀다. 무식을 흔들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예전에 유명자천(有命自天)이란 말이 있으니 지금 유(有)자를 붙이는 것이 무엇이 불가하겠습니까?"

"유명불우상(惟命不于常)만 못하다."

싸움밖에 모르는 무반이 설마 어려운 시경(詩經)을 알겠느냐며 대아편을 인용했는데 이징옥이 서경(書經) 강고(康誥)편으로 맞받아쳤다. '착하면 천하를 얻게 되고 착하지 못하면 천하를 잃게 된다'는 뜻을 알고 있다니 놀랍다. 머쓱해진 이선문이 꼬리를 내렸다.

"개원(改元)한 뒤에 다시 써서 유시하겠다."

황제 즉위조서 발표를 유보한 이징옥이 종성 절제사 정종(鄭種)을 불렀다.

"장졸들에게 상을 주려는데 곡식과 비단이 얼마나 있는가?"

"두세 차례 시행하여도 남을 만큼 충분합니다."

창고 문을 열라 명한 이징옥은 창고에 가득 쌓인 곡식과 비단을 백성과 장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군사들은 입이 귀에 걸렸고 백성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축제 분위기에 싸인 종성은 해방구였다.


태그:#이징옥, #두만강, #종성,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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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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