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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반도.
▲ 한반도 중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반도.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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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을 떠난 저승사자 3인방이 철령에 올랐다. 단발령과 추가령보다는 낮지만 해발 685m 고갯길이다. 눈앞에 고산준령이 펼쳐졌다. 동쪽에는 칼을 짚고 서 있는 장군의 모습과 닮은 장수봉이 우뚝 솟아 있고 서쪽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풍류산이 새색씨처럼 얌전히 앉아 있다. 10월도 중순을 넘겨 절정은 지났지만 아직도 단풍이 곱다. 가을 금강을 풍악이라 하는데 금강의 단풍이 남성적이라면 풍류산의 단풍은 여성적이다.

함길도 안변과 강원도 회양 사이에 있는 철령은 관북지방과 관동지방을 가르는 경계다. 한성에서 서수라진까지 2200리. 북관대로 그 중심에 철령이 있다. 고개를 넘어가면 척박한 땅 관북이고 넘어오면 풍요의 땅 강원이다. 한성에서는 강원을 화전의 땅이라 폄하하지만 이곳에서는 강원이 동경의 대상이다.

백두대간을 타고 흘러내리는 태백산맥이 등뼈라면 철령은 목뼈다. 사람도 목뼈에 압박을 가하면 질식하듯이 철령도 한반도의 사활이 걸린 전략요충이다. 남하하는 북방세력과 저항하는 남방세력이 충돌하는 군사요충이다. 반도세력이 융성할 때는 밀고 올라갔고 북방세력이 강할 때는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다.

영토 신라가 고려에 물려준 영토. 한중 국경이 청천강과 철령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영토 신라가 고려에 물려준 영토. 한중 국경이 청천강과 철령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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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연합이라는 미명아래 당나라 치마폭에 뛰어든 신라는 정신줄을 놓고 헤메다 북방 영토 대부분을 내주었고 청천강에서 철령에 이르는 영토를 고려에 넘겨주었다. 고토 회복에 매진하던 고려는 상당 부분 영토를 확장했지만 몽고에 시달리던 고려 역시 의주에서 길주에 이르는 영토를 조선에 넘겨주었다. 이것마저도 중국은 배 아팠는지 조선 초, 표전문 사건으로 이성계를 압박하며 철령 이북 점령을 위협했다.

함길도라는 명칭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태종시대까지만 해도 함길도 없는 조선7도였다. 그땐 동북면이라 불렀다. '육진을 개척하라'는 세종의 명에 따라 김종서가 변방을 평정한 이후. 비로소 조선 8도 체재를 갖추었다.

세종의 위대성은 한글 창제만이 아니다. 영토 확장이다. 비록 허리는 두 동강 났지만 오늘날의 우리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준 군주가 세종이다. 오늘날과 같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한중 국경은 그때 획정되었다. 그 중심에 세종이 있었고 1등 공신은 최윤덕과 김종서, 2등 공신은 이징옥이다. 헌데, 그 1등 공신은 공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자들에 의해 이미 죽임을 당했고  2등 공신의 목을 거두러 저승사자가 가고 있는 것이다.

4군과6진 세종대왕이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명하여 확보한 4군과 6진. 오늘날의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이다
▲ 4군과6진 세종대왕이 최윤덕과 김종서에게 명하여 확보한 4군과 6진. 오늘날의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이다
ⓒ 중학교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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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관, 송취, 박호문 저승 3인방은 유람 나온 것이 아니다. 역적을 베고 체포하여 압송하라는 특명을 받고 가는 길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마루턱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 일행은 잰 걸음을 놓았다. 이들이 내리막길을 내려가자 올라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한명회가 밀파한 석동이다. 석동이는 노원 참(站)에서부터 한식경 간격으로 이들의 뒤를 밟고 있었다.

3인방이 함흥에 입성했다. 한성을 떠난 지 3일만이다. 함길도란 지명 자체도 함흥과 길주에서 첫 글자를 따왔으리만큼 관북지방의 최대 성읍이다. 관찰사 성봉조의 환대를 받은 이들은 다음날 아침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흥대로 2200리길에서 한성에서 이제 900리 온 셈이다. 여기서부터 길주까지 800리길. 갈 길이 멀다.

영토 고려가 조선에 물려준 영토.의주에서 길주까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영토 고려가 조선에 물려준 영토.의주에서 길주까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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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길주에 도착했다. 현안의 주인공 이징옥이 있는 곳이다. 한성에서 1700리. 숨 돌릴 틈 없이 달려온 셈이다. 도절제사 군영에 도착했다. 관북지방 최대의 군사 고을답게 요새나 다름없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도 절제사 이징옥이 영문(營門) 앞까지 나와 정중히 맞이했다.

"장군께서 그동안 변방을 수호하느라 수고가 많으셨는데 그 대임을 소장이 맡게 되어 광영입니다."

구치관과 송취는 뒤로 빠지고 박호문이 앞으로 나서며 인사를 나누었다.

"본관이 수행하던 함길도 도 절제사직을 귀관이 맡았다면 귀관 혼자 올 일이지 함께 오신 두 분은 어떤 일이고 뒤따라온 군사들은 무슨 연유입니까?"

이징옥의 눈초리가 구치관과 송취에게 꽂혔다.

"하, 하, 이분은 경성도호부에 가실 분이고 이분은 다시 한성으로 돌아가실 분입니다."

이징옥을 체포하여 압송하라는 특명을 받은 송취는 길주 도착 즉시 이징옥을 체포하면 그를 추종하는 군사들과 충돌이 일어날 것을 염려했다. 어떻게 마찰 없이 체포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한성에서 여기까지 오는 여정에서 세 사람이 묘안을 짜낸 것이 이징옥에게 해임을 통고하고 그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 함흥을 벗어나면 체포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전례 없는 괴이한 일이오. 한성으로 돌아갈 사람이 무에 할 일이 없어 예까지 온다 말입니까? 여기가 무슨 이웃 동네인줄 아십니까? 자그마치 한성에서 여기까지 1700리 길입니다."

이징옥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성에서 여기 오는 길이 도적이 많은 길이라서 이분은 소장과 경성으로 가실 저분을 호위하고 오셨고 또한 장군께서 한양으로 돌아가실 때 호위해 드릴 것입니다."

박호문이 송취를 가리켰다.

"야인들도 내 이름을 들으면 줄행랑을 놓고 호랑이도 꼬리를 내리는 곳이 이곳 관북지방 이오. 하물며 도적 따위가 감히 내 앞에 나타난다 말이오? 호위 따위는 일 없소. 나는 내일 이른 아침 떠날 터이니 여기서 객고를 풀다 돌아가시던, 내 뒤를 따라오던 마음대로 하시오."

말을 마친 이징옥이 불쾌하다는 듯이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문신이 들어오라면 들어가고 나가라면 나가는 것이 무신들이다

이튿날. 이징옥이 영문(營門)을 나섰다. 감회가 새롭다. 비록 3년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37년 군 생활에서 가장 정들었던 곳이 길주다. 태종16년(1416) 무과 친시1등에 합격하여 영북진 절제사로 처음 군문에 들어섰다. 이 때 그의 나이 17세. 소년 절제사로 화제를 뿌렸다. 경원 절제사, 경원 병마절도사, 회령 북진 절제사를 역임하며 육진을 개척하던 김종서를 도와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에 세종은 그의 아버지에게 어주(御酒)를 내리며 그 공을 치하했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은 이징옥에게 종일품 숭정대부(崇政大夫)를 하사했다. 무신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품계다. 이에 그는 향리 경상도 절제사를 사임하고 변방 장수직으로 화답했다. 평안도 도절제사를 명받은 그는 아직도 두만강을 넘어 우리 백성들을 괴롭히는 야인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함길도 도 절제사를 원해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군졸들의 배웅을 받으며 이징옥이 정들었던 군영을 떠났다. 도성의 문신(文臣)들이 들어오라면 들어가고 나가라면 나가는 것이 무신(武臣)이다. '무반(武班)들은 평생을 사람 죽이는 일밖에 모른다'고 문반(文班)들이 폄하한다. '무신들은 학문이 짧다.'고 문신들이 평가절하 한다. 무반을 얕잡아보는 문관(文官) 우월주의 사상이다.

뒤쫓아오는 저들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성진을 지나 함흥으로 향하던 이징옥 일행이 마천령 고개에서 잠시 다리쉼을 했다.

"우리를 뒤쫓아 오는 저들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큰 아들 자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송취가 이끄는 10여 명의 장정들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뭐가 수상하다는 거냐?"

이징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남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곳 한성에는 보고 싶은 부인이 있다. 물론 군영이 있는 길주에도 영처(營妻)가 있지만 그래도 한성에 있는 부인이 조강지처다. 빨리 보고 싶다.

"우리를 감시하는 것만 같습니다."

자원이는 뭔가 모르지만 기분이 안 좋았다.

"괜한 소리를 하는구나. 우릴 도와주러 멀리 한성에서 예까지 온 사람들을 공연히 의심하면 안 되느니라."
"저도 큰형 말에 동의합니다."

철동이가 나섰다. 그는 이징옥이 현지처가 낳은 서자다.

"왜 그러느냐?"
"저들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하나같이 엄지와 검지 사이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습니다. 이는 칼을 잡고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굳은살입니다. 저들은 단순한 호위 병졸이 아니라 정예군사들 입니다."

예리하다. 군 생활 37년차 이징옥이 놓친 것을 철동이가 본 것이다.

"소자 생각에 이해 안 되는 얘기를 저들에게서 들었습니다."

둘째 윤원이가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냐?"
"대호 장군이 돌아가셨으면 아버님께서 알고 계셔야 하는데 아버님은 모르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뭐라 했느냐?"

이징옥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소자가 엿들었는데 김종서 장군께서 돌아가셨다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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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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