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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문화운동의 대부이자 시민사회운동의 선구자'였던 동범 고 최병준 선생의 10주기 묘제가 동범상위원회 주관으로 오는 10월 10일 오후 3시 목련공원 묘역에서 열린다. 이날 오후 6시부터는 청주시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추모의 밤도 진행된다. 

 

프로그램 일정으로는 충북예총 또는 충북민예총에서 식전공연 및 문화공연이 있을 예정이며 오세탁 전 충북예총회장, 이상훈 충북지역개발회장 등이 추모사를, 윤석위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한다. 또 생전에 고인이 애정을 쏟았던 청주문화원과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각각 동범 선생이 쓴 시를 낭송하고 시민운동에 대한 철학과 희망이 담긴 논설을 낭독 할 계획이다.

 

동범 최병준 추모사업위원회에는 이상록, 이상훈, 우영, 오세탁, 장이두, 정종택, 김영회, 정상길, 김효동, 민명인 등 원로인사들이 고문으로 위촉되었으며 박영수 전 청주문화원장이 상임위원장을, 노영우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 황신모 충북경실련 공동대표, 이경수 청주로타리클럽 회장, 김현배 유네스코충북협회장, 전혜정 충북여성단체협의회장 등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추모위원으로는 동범 선생이 생전에 활동했던 단체의 주요인사 및 가까운 지인들을 대상으로 100인 이상을 위촉할 예정이다.

 

미망인 김영애 여사는 10주기 추모 행사에 대해 "유가족으로서 보답도 못하는데, 해마다 남편을 기억해 주셔서 송구스럽고 감사하다. 청주에 사는 큰 딸과 같이 살고 있는 아들과 함께 참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빈한 삶과 오욕의 상처

 

충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시민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최병준 선생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직지찾기운동, 자치단체장 평가운동, 지방의회의원 평가운동, 공명선거운동, 낙천낙선운동, 정치개혁운동, 환경보전운동 등에 쏟은 열정은 정의와 평화, 봉사를 갈구하는 조직과 단체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다.

 

남기헌 충청대 교수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의 인연을 회고하며 "남을 배려하고 옳고 그름에 냉철하고 자기 몸을 낮추면서 미래를 위해 살았던 그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신 분이라 말하고 싶다"며 동범 선생의 생애를 높이 평가했다.

 

칠십 평생을 충북 지역 문화 운동과 시민사회단체에 헌신한 동범 선생의 삶은 늘 가난했다. 도종환 시인은 지난 2004년 출간된 동범 선생의 유고집 <살푸슴>(새 색시인양 살푸시 웃는다는 의미) 추모글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시민운동의 대부'에서 이렇게 썼다.

 

"선생님은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본보기셨다. 시민회가 만들어지고 경실련이 만들어지고 문화운동에서 청주지역 시민운동의 대표이면서 대부로 활동하시는 분이 늘 동전 몇 개를 만지작거리며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청주지역사회는 오랜 세월 선생님께 진 빚이 많다. 평생 돈 한 푼 안 받고 일구어내시고 이룩해 오신 일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돈보다 훨씬 큰 것들이었다. 필요할 때마다 청주지역사회는 선생님을 불러다 썼다. 그러고는 귀중한 줄도 몰랐다."

 

일생을 청빈으로 살아온 그에게 2000년께 깊은 오욕의 검은 구름자가 다가왔다. 소위 '김영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일로 동범 선생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교육청 승진 인사에서 교감은 500만 원, 교장은 1000만 원은 건네야 한다는 의미인 '감오장천'의 일화를 남긴 김영세 전 교육감의 비리의혹과 관련해 주변 인물을 조사하던 검찰은 건설업자 이아무개씨가 1989년부터 매달 100만 원씩 동범 선생에게 송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김 전 교육감과 이씨의 관계를 추적하던 검찰은 김 전 교육감의 매제인 동범 선생에게 로비자금이 흘러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가졌던 것이다.

 

선생은 2001년 2월 충북참여연대 대표회장직을 사퇴하며 "비록 본의는 아니었지만 저로 인해 도덕적 순수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운동단체에 시민들이 의문을 품게 하고, 결과적으로 시민운동의 명예를 훼손한 점은 그 어떤 말로도 치유되기 어려운 아픔이자 고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단체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검찰에서 발표한 7000만 원 횡령혐의를 시인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밝힙니다. 저는 불우노인을 위한 후원금을 기탁한 이사장의 순수한 뜻을 존중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고, 이 돈을 전달하지 않고 보관해온 것은 이 사장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통해 보다 의미 있는 노인복지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적립해 두었던 것입니다"고 밝혔다.

 

누명은 벗었지만 건강 악화

 

지인들은 동범 선생이 나중에 횡령혐의가 무죄로 판정났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깊은 상처로 병을 얻은 것으로 보고 안타까워 했다.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찾은 동범 선생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판정 이후 1개월 정도 밖에 살지 못했다. 평생을 도덕성과 순수성으로 일관하며 무소유를 당연하게 알고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법정에 선 것을 무척 괴로워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동범 선생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분이 그럴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매형인 김병세 교육감이 아닌 상대편 교육감 출마 개소식에 축사를 해서 매형과 관계가 오히려 더 소원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횡령이란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생전에 동범 선생을 모셨던 이두영 충북경실련 사무처장도 "검찰, 사회로부터 떳떳하게 살아오셨는데 공금을 사사로이 쓴 것으로 오해받아 지목되어 무척 괴로워했다"며 "선생께서 보통 내색을 잘 안 하는 분인데 오죽 답답하고 괴로웠으면 저에게 속 얘기를 많이하셨다"고 말했다.

 

한편, 동범 선생을 기리는 차원에서 동상 건립을 세우자는 의견이 있다는 물음에 이두영 사무처장은 "기념비나 추모비는 모르겠지만 동상건립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송재봉 사무처장도 "그분을 기념 할 수  있는 어떤 조형물이 있으면 좋겠는데 동상은 뭔가 권위적인 것 같다. 흉상 정도를 만들어 그분의 흔적이 가득 담긴 중앙공원에 세웠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충북 시민운동의 씨앗 뿌리고 가꾼 사람

 

동범 고 최병준 선생은 1932년 충북 진천에서 출생했으며 1956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졸업하고 1957년 26세의 나이로 현 충북예총의 전신인 충북예술문화인협회를 창립했다. 이듬해인 1958년에는 청주문화원장 취임, 1970년까지 문화원장을 하며 정부 지원이 없는 열악하고 어려운 시절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시민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정력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1971년에는 정의로운 지역인사들과 뜻을 같이하여 관권과 금권선거가 판을 치는 현실을 바로 잡고자 공명선거추진협의회에서 공명선거운동을 주도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정권의 탄압을 받아 예총, 문화원 등 모든 사회 문화 관련 단체장에서 강제 퇴임을 당했다.

 

이후 1987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시작된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 충북시민회(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충북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청주경실련(현 충북경실련), 충북총선시민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하며 지역시민운동에 씨를 뿌리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토대를 만드는 데 역할을 다했다.

 

또 지역시민단체 간 갈등과 경쟁보다 연대와 협력, 화합과 양보의 정신을 발휘하도록 하는 포용의 리더십으로 충북지역 시민운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이처럼 정력적인 활동을 하던 동범 최병준 선생은 지난 2001년 10월 11일 오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으며, 유족으로는 미망인 김영애 여사와 현주·기현·호균 등 1남 2녀 자녀를 두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청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범, #최병준, #충청리뷰, #청주문화원, #목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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