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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박원순 무소속 후보가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에서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박원순 무소속 후보가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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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대박. 3일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아니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원순 변호사가 야권단일후보로서 당선되었다. 조직도 돈도 없는 시민후보가 제1야당의 서울시장 후보를 이긴 것은 전통적 정치의 문법으로 보면 기적이다. 특히 2000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주도했던 대표적 시민운동가가 직접 서울시장 후보 선거전에 뛰어들어 제1야당을 업은 야권단일 후보가 된 것이다.

기적은 지난 추석 전에 예고되었다.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린 '안철수 신드롬'이 그것이다. 더구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0%를 받은 안철수가 막 산에서 내려오느라 수염도 못 깎은 지지율 5%짜리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자리를 양보한 것은 기성 정치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의 단일화'였다. 50%에서 5% 후보로 단일화한 명분은 고작 5% 후보의 출마의지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었다.

파격의 단일화 이후 안철수 지지율은 고스란히 박원순에게 옮겨 갔다. 그 때문에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후보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야권후보 단일화경선 방식에 합의한 이후, 박원순은 1차 관문인 TV토론 배심원단 투표에서 이미 박영선을 10%p 이상 앞섰고, 2차 관문인 시민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였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의 30만 당원들이 3차 마지막 관문인 선거인단 투표에서 압도적인 몰표로 열세를 뒤집어주길 기대했지만 그런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을 바라기에는 너무 노쇠한 민주당

3일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 투표마감 시간이 임박하자 세 후보가 투표소 앞에 총출동해 선거인단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3일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 투표마감 시간이 임박하자 세 후보가 투표소 앞에 총출동해 선거인단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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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바라기에 민주당은 너무 노쇠했다. 3일 오전만 해도 기적의 조짐이 살짝 비쳤다. 오전에 투표한 선거인단에는 확실히 노장년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조직동원도 있었다. 장충체육관에 마련된 선거인단 투표소 입구에 도열해 선거인단을 맞이한 민주당 의원들은 "한눈에 봐도 우리 편"이라며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오후로 갈수록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젊은 직장인들에서부터 손을 잡고 온 연인 혹은 부부, 그리고 사이클을 타고 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선거인단 투표 마감을 한 시간 앞둔 오후 6시쯤부터 투표장 입구 2층에 있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입구로 들어서는 선거인단을 향해 연신 '박영선!'을 외쳤다. 그러나 막상 선거인단 투표의 뚜껑을 열어보니 박영선 대 박원순의 득표수는 9132표(51.08%) 대 8279표(46.36%)로 표 차이는 853표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고 입장한 선거인단의 절반 가까이가 박원순 지지자였던 셈이다.

민주당은 실제로도 늙었다. 서울시에 지역구를 둔 한 정치인은 "민주당 청년 당원의 기준은 45세 미만인데 지역구마다 청년위원회 회원은 10명 미만이다"고 말했다. 농촌만 젊은이들의 씨가 마른 것이 아니고 서울의 민주당에도 젊은이들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60년 전통의 민주당에는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한 '머신'(machine, 대규모 유권자를 동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잘 조직된 지방의 정당조직)도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울 '머슬'(muscle, 근육)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동선관위에서 오후 7시 5분경 투표를 종료하고 개표 선언을 하자  체육관 밖에 있던 선거인단이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2층 스탠드를 메운 민주당 지지자들과 박원순 지지자들의 비율은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9 대 1이었다. 그러나 박영선 후보가 입장할 때보다 박원순 후보가 입장할 때 오히려 지지자들의 환호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들의 상당수는 촛불을 들고 있었다. 장충체육관 안의 박원순 지지자는 10%에 불과했지만, 표는 체육관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다.

이번 선거도 여느 선거 때처럼 투표율이 승패를 갈랐다. 민주당측은 당초 투표율을 50~55% 선으로 예상하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60% 대 40% 이상으로 이기면 역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종 투표율은 59.59%로 선거인단으로 선정된 3만 명 중에서 1만7891명이 참여했다. 연휴 마지막 날인 데다, 본선도 아닌 예선임을 감안하면 60% 투표율은 높은 참여율이다. 현장투표에서 두 후보의 격차는 4.77%p(853표)에 불과했다.

민주당에 대한 경고 넘어선 '반(反)한나라당 심판' 구도

3일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이 열린 장충체육관 앞에서 팬사인회를 가진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총수가 팬과 악수하고 있다.
 3일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이 열린 장충체육관 앞에서 팬사인회를 가진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총수가 팬과 악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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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도 트위터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투표 인증샷'이 퍼지면서 젊은 층의 투표율 상승을 견인했다. SNS로 무장한 자발적 게릴라들이 총동원령을 내린 60년 전통의 민주당 조직과 버스 동원을 이긴 것이다. 이번에도 조국 교수와 공지영 작가의 'SNS 사발통문'과 현장에서 사인회를 벌인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총수의 투표 이벤트가 위력을 발휘했다. 더는 조직과 동원 선거가 통하지 않음을 보여준 게릴라전의 승리였다.

또한 이번 선거는 시민들이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변화 요구를 표출한 것이었다. 현장 투표에 참여한 민주당원 중에는 본선 승리를 위해 박원순을 찍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 민주당의 자체 분석이다. 민주당의 변화와 본선 경쟁력,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인 셈이다.

10.26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이 열린 3일 장충체육관 앞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 지원에 나선 손학규 대표가 투표소로 향하던 시민들과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이 열린 3일 장충체육관 앞에서 민주당 박영선 후보 지원에 나선 손학규 대표가 투표소로 향하던 시민들과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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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손학규 대표는 대선주자로서의 리더십과 확장성은 상처를 받았다. 손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박원순의 민주당 입당도 '신중모드'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제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으로부터 '불임정당'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야권통합의 주도권도 민주당이 아닌 '혁신과 통합' 등 정당 밖 기구가 쥘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러나 이번 경선의 예상외 '흥행 대박'으로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새로운 형식의 연대 및 단일화 모델을 작동해볼 수 있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의지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를 확장하면 지난 2002년 흥행 대박을 일으킨 국민참여경선에서 진화해온 대선후보 단일화 모델로 적용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의 유불리를 떠나서 젊은층의 자발적 참여는 민주당에 혁신과 통합 또는 연대를 통한 'Again 2002'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오후 8시 넘어 선거인단 투표를 합산한 최종 경선결과가 발표되자 박영선 후보와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과 박원순 지지자들이 '박영선'을 연호하는 가운데 체육관을 빠져 나갔다. 손 대표가 나간 뒤에도 계속 박원순 후보의 당선연설을 지켜본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소감을 묻자 "국민이 지지해 주지 않으면 정당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유인태 "한 마디로 말해, 정당은 × 됐다"

3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에서 박원순 무소속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가운데,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축하하기 위해 박 후보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단일후보 선출 국민참여경선'에서 박원순 무소속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된 가운데,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축하하기 위해 박 후보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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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단일후보 박원순도 체육관을 빠져 나간 오후 8시 30분쯤 박영선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인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붙잡고 이 상황을 간명하게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걸쭉한 입담의 종결자답게 이렇게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해, 정당은 × 됐다."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는 사실상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여야의 대선후보들도 나서서 사활을 건 한 판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경선이 '흥행 대박'이라면, '재주'는 민주당이 넘고 '돈'은 박원순이 챙긴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은 흥행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그러나 후보 유세도 없는데 선거인단으로 선정된 10명 중에 6명이 투표장에 참석한 것은 민주당의 변화를 바라는 자발적 참여와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변화의 열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민주당의 몫이다.

범야권은 단일화 경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박영선 등 이번 경선에 나섰던 후보들이 박원순 후보 선대위의 공동본부장을 맡는 등 범야권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날 개표 결과 발표에 앞서 공동 정책합의문과 서울시정 공동운영 및 공동선대위 구성 합의문을 채택했다.

또 박원순 후보는 연설에서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민주당이 써온 역사 위에 새로운 미래를 써갈 것"이라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더 넓고 더 큰 정치를 세워나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어차피 서울시장 같은 큰판의 선거는 경험과 전략이 풍부한 민주당 중심으로 선대위를 꾸릴 수밖에 없다. 민주당 또한 "박원순 후보를 당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구도 싸움이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복원된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 대립구도'가 지속되고 있음은 지난 재보궐선거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 단일화 경선에서 드러난 젊은 층의 자발적 참여는 민주당에 대한 경고를 넘어선 '반(反)한나라당 심판' 구도가 재연됨을 보여준다.

그 구도를 만드는 전선에 민주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시민혁명의 바람을 등에 업은 시민후보가 서있는 셈이다. 10.3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당은 박원순 시민후보의 '불쏘시개'가 되었지만, 혁신과 통합 또는 연대를 통한 'Again 2002'의 가능성도 확인한 셈이다.


태그:#서울시장, #박원순, #박영선, #안철수,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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