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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등록금 분할납부 제도가 생기자마자 바로 신청했죠. 그런데 막상 이용해보니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더라고요."

 

서울 소재 사립대학인 A대 정보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ㄱ(22)씨. 그녀는 현재 은행으로부터 720만 원을 학자금 대출 받은 상태다. ㄱ씨는 매 학기 4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내고 있다. 학교에서 받은 성적장학금이 아니었다면 ㄱ씨의 대출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ㄱ씨는 "또 다시 대출 받기에는 부담스러워" 지난해 등록금 분납을 신청했지만 A여대의 등록금 분납은 2회가 전부였다. 최초 분납금을 납부하고, 한 달 후에 나머지 금액을 모두 납부하는 방식이었다. ㄱ씨는 "가지고 있는 돈을 두 번에 걸쳐 나눠 내는 것이라면 모를까 한 달 안에 학생이 그 많은 돈을 직접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분납제도의 미흡함을 지적했다.

 

"등록금 400만 원 중에서 성적장학금으로 40만 원을 제했고, 분납 첫 회는 부모님께서 200만 원을 내주셨어요. 나중에 제가 160만 원을 냈죠. 2회 째 납부할 때는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다행히도 이한열 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 리포터로 활동하며 받은 활동비를 더해 가까스로 마련했어요."

 

평균 3개월 동안 3회 분납... 생색내기 '등록금 분할납부제도'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등록금넷이 실시한 서울소재 주요 4년제 사립대학 등록금 분납실태 조사결과, 대학들은 평균 3개월에 걸쳐 3회의 분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대학마다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 분할납부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서울 소재 B대학 사회학과에 재학중인 ㄴ(21)씨는 "학자금 대출을 피해보려고 분납을 생각해 봤지만, 한 달에 120만 원이 넘는 분납금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이번 학기에도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대학들은 최저 2회에서 최고 6회까지의 횟수를 정해 등록금 분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분납횟수가 아니라 '분납기간'이었다. 대부분의 학교가 3개월에 걸쳐 분납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매달 126만 원씩을 마련해야 한다.(2010년 사립대 연간 평균 등록금 753만 원 기준)

 

"주말알바로 한 달에 40시간을 일해서 30만 원 정도를 벌어요. 평일까지 일하는 친구들도 한 달에 50만 원 이상 벌기 어렵죠. 그런데 어떻게 분납을 하겠어요. 제 주위에서도 대부분 학자금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했어요."

 

앞서 분납금을 감당할 수 없어 대출을 받았다는 ㄴ씨는 최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주어져야만 등록금 분납제도가 실효성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6개월 이상 나눠 낸다면 저도 이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 같은 경우는 한 달에 60만 원(ㄴ씨의 등록금은 360만 원) 정도 나눠 낸다면, 어렵지만 대출 안 받고 분납할 것 같아요."

 

전문가들 "6개월 이상이 바람직"... 대학 "학생들 의견 반영하겠지만"

 

학생들의 분납제도에 대한 불만과 요구에 대해 대학들은 "대체로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구체적 대안을 가진 대학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분납기간 연장에 대해 A대학의 한 관계자는 "분할납부 제도를 확대 보완하는 과정에 있으며, (분납제도에 대한)학생들의 의견이 있으면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과 시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B대학의 관계자도 "분납기간을 6개월까지 늘리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지만, 연체하는 학생들이 생긴다면 행정적으로 곤란해 질 수 있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대학들의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분납기간을 연장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국대학연구소 김재삼 연구원은 "학교입장에서 분납기간 연장과 관련한 행정처리의 어려움이 있다면, 최소 4개월로 분납기간을 정하고, 부득이한 경우 분납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제도를 수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학생들이 분납을 3개월 이내로 나눠 내는 것은 비용이 높아 어렵기 때문에 분납제도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대학들이 10조에 달하는 적립금을 쌓아놓는 동안, 학생들의 경제적 고통을 덜기 위해 손쉽게 할 수 있는 기숙사 건립과 등록금 분납제도 개선 등은 외면해왔습니다."

 

대학 32곳 중 7곳만

'등록금 카드 납부 가능'

등록금 카드 납부는 조사대상 32개 대학 중 7개 대학에서만 실시해 22%의 낮은 비율을 보였다.

 

대학들은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고 있었다. 한편 카드납부를 실시하는 7개 대학에서도 무이자 할부를 운영하는 대학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 대학 관계자는 "그 문제는 카드사와 직접 이야기해야 한다. 학교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며 카드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 역시 자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해결책을 외면하는 대학들을 비판하며 "6개월 이상의 분납과 신용카드 납부 등 등록금 납부제도와 관련한 입체적 접근을 통해 대학생과 학부모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고 등록금 납부와 관련한 대학들의 제도개선 필요성을 설명했다.

 

한편 대학들의 등록금 분납 현황에 대해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요즘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크기 때문에 교과부에서도 분할납부에 대해 6개월 이상의 분납을 최대한 권장하고 있다"면서도 "법으로 징수 방법을 학교장이 정하게 되어 있기에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분납기간 6개월 이상 명문화에는 난색을 표했다.

 

지난 13일 OECD가 발표한 '2011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등록금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나라 국·공립대에 해당하는 주립대학 재학생 비율이 66%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사립대학 재학생 비율이 80%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2위라는 순위 이상의 고통을 담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등록금 분납기간 현실화는 학생들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각 대학들이 실행해야 할 최소한의 제도 중 하나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형섭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등록금, #등록금 분납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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