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재밌는 책을 읽으면 기가 막힌 맛이 납니다."

인천 동구 금곡동의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아벨서점을 운영하는 곽현숙(61·여) 대표의 말이다. 곽 대표는 스물넷 되던 해인 1973년 이 거리에서 처음 책방을 연 뒤, 사정이 좋지 않았던 2년여를 제외한 36년간 낡은 책들과 함께 했다.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헌책방을 차렸다는 곽 대표는 지금도 재미있는 책에서 기가 막힌 맛을 느끼며 산다고 말했다.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위치한 아벨서점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위치한 아벨서점
ⓒ 서동일

관련사진보기


곽 대표는 현재 우각로라 불리는 배다리 맨 꼭대기 창영초등학교 앞에 처음 서점을 냈다. 서점을 내고 1년 만에 집주인이 건물을 팔아버려 가정집에서 책을 취급한 일도 했다. 책방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약 2년 동안은 스테인리스 제품을 만드는 공장에 다니거나 가정도우미일로 생계를 해결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완성된 것은 없다. 열심히 하다 보면 차차 만들어지는 것이고,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스미는 노동이 있다면 묵묵히 이 길을 걷다보면 내 삶도 완성되겠지.

어렵던 시절 우연히 읽은 김구의 <백범일지>가 그녀를 다시 헌책방으로 향하게 했다. 이후 대형 서점들이 생기면서 동네 작은 책방들이 하나씩 문을 닫았지만 그녀는 백범처럼 '묵묵히 이 길을 걷다보면 내 삶도 완성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한다.

초등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보물 찾듯 책 골라

책방은 입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책으로 빼곡하다. 20평 남짓한 공간에 다 쌓아두지 못한 책은 문 밖까지 내놓았다. 두 사람이 마주치면 서로 어깨를 좁혀야 겨우 지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 5만 권 넘는 책들이 촘촘히 꽂혀있다. 천장 가까이 높게 쌓인 책은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아 사다리를 쓴다. 서점 안에서 몇 발짝 걷다보면 책과 나무가 뿜어내는 독특한 공기가 훅 느껴진다. 낡은 간판은 지나간 세월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만화책부터 각급학교 교과서, 국내 소설과 전문서적뿐 아니라 외국 책까지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원하는 책을 찾으러 온 사람들은 수사관이라도 된 듯 날카로운 눈매로 책장을 살핀다. 무릎을 굽히고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인 채 책을 살펴보는 사람들도 있다.

평일에는 50~100명, 주말이면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이렇게 아벨서점을 뒤져 원하는 책을 고른다. 초등학생부터 백발의 할아버지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시중에서 1만5000천 원 정도 하는 책을 이곳에서는 4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좁은 공간 빼곡히 쌓인 책 사이로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좁은 공간 빼곡히 쌓인 책 사이로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
ⓒ 서동일

관련사진보기


곽 대표는 열심히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말없이 웃음이 난다고.

"집중해서 자기에게 필요한 책을 찾는 것 그 자체가 스스로를 가꾸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책 찾는 모습이 마치 기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헌책방 하길 잘했구나 싶죠." 

동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6·25전쟁 이후 형성돼 한때 40~50곳의 헌책방이 번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5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벨서점을 찾은 서경원(56·인천 부평구)씨는 "20대부터 이곳에서 책을 샀다"며 "분주하고 활기가 넘쳤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아 한산해진 게 아쉽다"고 말했다.

책장에 책들이 빈틈 없이 꽂혀 있다.
 책장에 책들이 빈틈 없이 꽂혀 있다.
ⓒ 서동일

관련사진보기


시 낭송회, 책 전시회 등 문화사업으로 확대

곽 대표는 헌책 판매와 함께 문화사업도 하고 있다. 아벨서점 근처에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이란 공간을 만들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시 낭송회를 열고 있다. 2층짜리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곳의 1층에는 헌책을 보관하고, 2층은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았다. 시 낭송회는 첫 회 랑승만 시인을 시작으로 벌써 40회가 훌쩍 넘었다.

"책방보다 더 큰 문화장르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은 평수 안에 우주가 다 들어가 있잖아요. 글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책 사가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책을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계획한 것이죠."

지난해 5월부터는 '한 권의 책 전시회'도 열고 있다. 책 한 권의 모든 페이지를 복사해서 전시하는 이 행사는 올해 2월의 경우 죽산 조봉암(1898~1959) 선생이 쓴 <우리의 당면과제-대 공산당 투쟁에 승리를 위하여>를 전시했다.

이 책은 조봉암 선생 사후에 만들어진 전집에도 실리지 않은 귀중본으로, 곽 대표가 20여 년을 소장하고 있다가 처음 공개한 것이다. '한 권의 책 전시회'는 사람들이 시대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도록 돕자는 목적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
ⓒ 서동일

관련사진보기


책을 보며 답을 찾고 책을 보며 고민해야

곽 대표는 책을 읽는 것보다 읽고 깨달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앎이 곧 삶이 되어야 해요. 그냥 머리에 집어넣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는 대로 행동하려 애쓰는 노력이 있어야 '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책을 통해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 앎이 삶으로 발현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그녀는 책과 멀리하는 젊은 세대가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단지 현재에 머무르며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한없이 아쉽다고 한다. 그녀는 20대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먹고사는 것만 생각하기엔 삶이 너무 아깝습니다. 진짜 고민을 하세요. 자신과 사회에 대해 고민하세요. 모든 물음과 답은 책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서동일, #아벨서점, #중고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