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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학에 들어가 신문을 구독했는데 <조선일보>였습니다. 그때만해도 '찌라시' 소리는 듣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학년 마치고 군대를 가는 바람에 더 이상 <조선일보>와는 인연이 없었고, 지금까지 돈을 주고 본 적이 없었습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복학과 함께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1995년 1월 1일이었습니다. 진주시외터미널에서 집에 가면서 가판대에 있는 신문을 골랐습니다. 그때는 조중동이라는 말도 없었지요. 1월 1일에는 신문들 특집 기사를 싣기 때문에 발행면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신문 하나만 읽어도 두세 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그래도 작심하고 가판대에 놓여있던 일간지 신문은 다 샀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조선일보>는 뺐습니다. 옆에 있던 <조선일보> 직원이 왜 우리 신문은 사지 않느냐고 따지길래 "<조선일보>는 ○○○ 아닌가요" 했더니 그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군대 가지 전까지 구독 후 <조선일보>는 나와 인연이 없었지요.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대한민국 병원 중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시간 보낼 때 읽거나, 인터넷판인 <조선닷컴>을 통해 만났습니다.

 

'가난한 학생 돕는다'는 말 때문에 <조선일보>를 그만

 

그런데 어제 아침 느닷없이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말았습니다. 오전 10쯤 현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라고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낮에 온 걸 보니 이상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문을 열었더니 <조선일보>를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조선일보> 구독 부탁합니다."

"안 보는데요."

"내년부터 딱 1년만 구독하면 됩니다."

"안 볼 겁니다."

"조중동 잘 안 보시는 것 압니다. 그래도 이번에 우리 지역에 있는 가난한 학생들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독하면 그 학생들 도와줄 수 있습니다. 동참하는 셈 치고 구독 부탁합니다. 그리고 <스포츠조선>도 함께 넣어드립니다."

"......"

"정 보기 어렵다면 <○○경제신문>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가난한 학생들 도와주는 셈치고 부탁한다는 말에 "안 됩니다"를 못하였습니다. 내가 목사인 줄 알고 들어와서 부탁하는데 안 된다고 떠밀면 '교회가 한 달에 1만 5000원도 없나'는 말을 들을까봐 얼떨결에 구독 신청을 해버렸습니다. 아내가 나중에 알고 난리가 났습니다. 

 

 

"만날 <조선일보> 비판하더니...'사이비'네 사이비"

 

"<조선일보>를 구독했어요?"

"아니, 가난한 학생들 도와준다는데 어떻게 구독하지 않겠다고 말해요?"

"가난한 학생들 도와준다고 했는데 그 학생들이 누구인지, 정말 도와주는 것인지 확인했어요?"

"그것까지는 확인 못했어요. 설마 그것을 거짓말하겠어요?"

"그래도 어떻게 믿어요?" 

 

아내 말을 듣고보니 정말 그 사람이 가난한 학생들 지원하는 것이 맞는지 자세히 묻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목사와 교회가 그런 것을 묻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을, 저의 지론은 "가난한 자들을 도와줄 때 따지지 말라"입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도와준다고 속였으면 벌을 반드시 받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래도 화가나는지 계속 타박입니다.

 

"만날 <조선일보> 비판하더니, 지금 보니 사이비네요, 사이비."

"사이비?!"

"생각해보세요. '안티조선' 운동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사람이 말이야 한 번 마음을 정했다면 그냥 가야지. 작은 것에 마음이 흔들리면 안 돼잖아요. 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구독을 하던지 해야지. 어떻게 <조선일보>를 그렇게 쉽게 구독하는 거예요. 한 달에 얼마예요?"

"생각해보니 사이비 비슷하네. 1만5000원 정도 되나. 1년 해봤자 18만 원인데."

"그게 적은 돈이예요? 그렇게 모여 모여 <조선일보>가 되는 거예요."

"그럼 이렇게 할까요. 딱 한 달만 구독료만 지불하고 끊어버리면 되겠네요."

"혹시 다른 것 받은 것 없어요?"

"무엇을요?"

"아니, 주는 것 있잖아요."

"아, 자전거 같은 것? 없었어요. 만약 그런 것 줬다면 바로 신고해버리지." 

 

아내가 이렇게 화낸 적이 없습니다. 나보다 <조선일보>를 더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보면 아내는 강단이 있습니다. 한 번 정하면 그냥 내닫습니다. 저는 귀가 좀 '얇'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아내는 <조선일보> 이야기를 했는데 옆에 있던 큰 아이가 "<조선일보>는 진실을 쉽게 왜곡하는 신문"이라고 하더군요. 아들에게 한 방 먹은 것이지요.

 

한 달 동안 신문 차곡차곡 모아놓고, 나중에 가져다 주면서 구독을 끊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이비 벗어나려면 적어도 한 달은 지나야겠습니다. 과연 그때는 <조선일보>를 끊을 수 있을까요? 혼자 힘으로 안 되면 아내 힘을 좀 빌려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조선일보, #아내, #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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