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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만이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불교는 현실을 떠나서 산 속에 들어가는 종교고, 이슬람교는 자기 종교를 따르지 않으면 죽이거나 테러를 한다. 기독교만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의 정치 참여는 문제없다"-9월 14일 <뉴스앤조이> "불교는 은둔, 이슬람은 테러, 기독교는 빛과 소금?"

김충립 사무총장(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이 지난 14일 한국교회언론회(대표 김승동 목사)가 주최한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가'라는 제목 토론회에서 기독교 정당 창당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불교가 은둔종교? 역사 공부 더 해야

기독교 교리가 배타성-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기독교 진리만은 배타성이다-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치 참여까지 배타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것은 처음 듣는다. 김 사무총장이 불교를 은둔 종교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가.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이다.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년) 중국 전진(前秦) 왕 부견이 사신을 보내면서 여기에 순도(順道)를 통해 불경과 불상을 전한다. 이게 공식적인 우리나라와 불교가 첫만남이다. 그리고 2년 후 374년 동진 승려 아도(阿道)가 성문사(省門寺: 肖門寺)와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세움으로써 첫 사찰이 된다. 물론 순도와 아도 이전부터 백성들 사이에는 이미 불교가 어느 정도 전파되었을 것으로 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백제는 384년 침류왕 때 동진의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었다. 침류왕이 궁궐에서 이들을 환영한 것으로 보아 백제 역시 고구려처럼 공식적 전례 이전에 백성들 사이에 이미 불교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백제는 승려들을 일본에 외교사절로 보내기도 했다.

신라는 고구려 묵호자가 서기 417년(눌지왕 1년), 소지왕 때  승려 아도에 의한 전래 설 등 다양하지만 고구려와 백제는 외교를 통해 전파된 것과 달리 신라는 민간 포교가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신라는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승인되었다. 

신라는 수도 서라벌에 황룡사, 불국사 등 사찰과 동해 바라다 보는 석굴암을 통해 불국토를 현세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특히 화랑도 윤리지침인 '세속오계'-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임전무퇴(臨戰無退)살생유택(殺生有擇)-는 공동체 정신과 유교와 더불이 불교정신이 함께한 것으로 '호국불교'나라였다. 원효는 '아미타불'만 외치면 된다고 했다. 민중 속으로 불교가 들어왔다는 방증이다. 은둔 종교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 불교는 '불교나라'로 불릴 정도로 백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광종은 불교와 손을 잡고 함께 공동으로 운영 관리하던 승려 선발 시험제도를 운영했고, 국사, 왕사제도 두어 국가, 왕실의 고문 역할을 맞겼다. 몽골 침략때 팔만대장경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고려 말기 불교가 세속 정치에 너무 깊게 관여해 병폐가 심해 고려가 망하는 데 일조한 것을 잘 알고 있다. 

불교가 산속으로 들어간 것은 조선이 건국과 통치이념으로 숭유억불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임진왜란때 서사대사와 사명대사는 직접 왜군과 싸웠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약 1700년이 되었다. 우리 조상들과 항상 함께 있었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싸웠다. 이런 종교를 은둔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전혀 공부하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으로 다종교 사회를 살아가는 종교인으로서 정당한 발언이 아니다.

이슬람교가 테러 종교? 기독교 잔혹성을 먼저 회개해야

이슬람교가 테러 종교라고 했던가.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오늘도 테러를 자행하는 것 맞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극단주의자들이지 이슬람교 자체가 테러 종교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잔혹성을 더 드러냈다. 신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른다. 십자가군과 인디언 그리고 잉카제국, 현대에 와서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십자가군'에 비유했다.

예루살렘 첫 주인은 히브리 민족 시조 아브라함이 아니라 살렘 왕 멜기세덱이 이끄는 원주민들이었다(창세기 14:18). '살렘'은 '평화'라는 뜻이며,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가 된 것은 지금부터 3000년 전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자, 예수 그리스도 조상인 다윗 왕 때였다. 다윗은 자신이 세운 예루살렘을 노래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시편 122편)

예루살렘이 이슬람 지배에 들어가자 기독인들은 거룩한 땅을 되찾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다. 첫 번째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되찾은 1099년 7월 15일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무슬림과 유대교인 14만명을 학살했다. 평화의 도시, 생명의 도시 예루살렘이 '피의 살륙 장'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행동했다.

"그들은 피 묻은 곳에서 깨끗한 새 옷을 걸치고 맨발로 걸어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밟고 지나간 거룩한 곳을 바라보며 울었다. 그리고 발치에 서서 한 지점에 입을 맞췄다."-(최창모 지음<예루살렘- 순교자의 도시>48쪽)

1996년 6월 예루살렘을 갔었다. 생명과 평화의 땅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철저히 짓밟은 것이다. 예수님 없는 십자가가 남긴 피의 살육이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만 앞세웠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잔인한 범죄가 약 900년만에 또 다시 십자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조지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은 200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면서 "이번 전쟁은 새로운 종류의 악(Evil)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테러를 응징하는 십자군 전쟁"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3년 이라크 침략 전쟁때는 조지 부시에게 올리는 전쟁 보고서 표지에 이라크에 진주한 미군탱크 사진과 함께 성경 구절을 적어 보고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지난 2009년 5월 18일 뉴욕타임스는 남성잡지 <GQ>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밝혀졌다. 이라크전쟁 시작 사흘 전인 2003년 3월 17일 보고서 표지에는 총을 잡고 기도하는 미군 병사들 사진과 함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해 갈꼬 하니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이사야 6장 8절)과  4월 7일에는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베드로전서 2장 15절)이 적혀 있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위대한 가르침은 어디다 팔아먹고 성경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삼는가. 이런 죄에 대하여 교회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슬람교를 테러 종교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예수님은 분명 사랑과 평화를 가르쳤고 본을 보여주셨는데 그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 2000년 역사는 오히려 '전쟁의 종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을 테러 종교라고 비난하기 전 전쟁의 종교로 전락했던 과거 역사부터 예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독교로 말미암아 고통 당했던 사람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이 먼저다. 

소금과 빛, 그런데 이렇게 썩었는가

기독교를 소금과 빛이라고 했던가. 맞다. 이를 절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 1천만명이 넘는 지금 왜 한국교회는 이렇게 되었는가.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가. 전광훈 목사는 토론회에서 기독교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이혼율 세계 1위, 청소년 흡연율 세계 2위, 저출산율 세계 1위다. 이러한 사회 문제로 인해 대한민국의 근본이 흔들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기독교 정당을 통해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도록 한국교회는 무엇했는가. 정당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는가. 거짓말 하지 말라. 속이지 말라. 바로 전광훈 목사 그리고 나 같은 목사때문이다. 목사가 썩어버렸기 때문에 교회가 썩어버렸고, 장로 대통령이 사랑과 평화 생명을 사랑하기보다는 탐욕에 눈이 어두워져 썩어 버려 나라를 이 모양 이꼴로 만들어버렸다. 제발 남탓하지 말자. 전광훈 목사와 나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모든 목사와 한국교회 책임임을 통감하자.


태그:#기독교정당, #불교, #이슬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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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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