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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임마누엘, 노얌 촘스키, 박유근 서울대 연구원
▲ 하버드 박사 한국표류기를 낸 임마누엘 왼쪽부터 임마누엘, 노얌 촘스키, 박유근 서울대 연구원
ⓒ 노마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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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후보단일화니 뭐니 하며 정치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한국에서 자주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비빔밥 정치'의 필요성이다. 언뜻 보기에 이것저것 아무거나 서로 섞어서 만든 음식이 비빔밥 같지만, 요모조모 잘 살펴보면 뜻밖에 상당히 과학적인 음식이란 걸 알 수 있다."- 154쪽

17세기(1668년)에 나온 <하멜표류기>가 아니라 21세기에 새롭게 나온 '한국표류기'가 있다. <하멜표류기>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럽에 처음 알린, 어찌 보면 조선 관광 안내지도쯤이라면 '한국표류기'는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푸른 눈으로 빠짐없이 툭툭 건드리며 꼬집고 쓰다듬은 책이라 할 수 있다.      

하버드 박사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가 이번에 펴낸 한국표류기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저, 노마드북스 펴냄)가 그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낯이 확확 뜨거워진다. 푸른 눈을 가진 외국학자도 우리나라 속내를 이토록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데,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우리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참 부끄러워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요즈음 지구촌 곳곳에 있는 여러 나라로 나들이를 자주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에 가서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가이다. 혹 그저 경치 구경이나 하고, 그 나라 독특한 음식이나 맛보고, 호텔에서 잠자는 것, 곧 놀고 먹고 마시고 자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까.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우리나라 이름으로 '이만열'. 그는 우리나라 말을 제 나라 말처럼 잘한다. 그가 동양으로 눈을 돌리게 된 까닭은 고등학교 때 '세계정세'란 자료를 찾을 때부터다. 그는 그 자료를 통해 '앞으로 동양, 특히 중국이 전 세계를 이끌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그가 서울대에서 중문과 대학원 연구생이 된 것도, 그가 우리나라에 머물게 된 것도 동양문화, 그 가운데 한국문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초고속 성장, 그 그림자에 가려진 삶과 정신 되찾을 때         

"내가 생각하는 '표류'는 단순히 바다를 떠돌다가 정착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난 하나의 '정신사적 흐름'이라는 의미에서 표류를 생각하고 있었다. 일종의 철학적인 개념이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은 나름대로의 문화적 흐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기 문화 속에서는 자기 문화의 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표류기란 이처럼 다른 관점에서 보는 한국문화의 흐름을 뜻한다." - '저자의 말' 몇 토막

21세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표류기' 라 할 수 있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그가 이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인 까닭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살면서 느낀 우리 사회 모든 문제를 한 문장으로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겪은 뒤 초고속 성장을 통해 눈부신 경제발전은 가져왔지만, 그만큼 인문학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우리들 삶과 정신이 지닌 가치를 많이 잃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프롤로그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 이어 모두 7부에 35꼭지가 마치 하멜 표류기처럼 눈을 굴리고 있다. 1부 '하버드박사의 한국표류기' 4꼭지, 2부 '질문이 정답이다' 2꼭지, 3부 '나의 독서노트' 6꼭지, 4부 '한국인들과 살다보면' 8꼭지, 5부 '인문교육의 부활을 위하여' 5꼭지, 6부 '하버드에서 만난 사람들' 6꼭지, 7부 '내가 예일대를 선택한 이유' 3꼭지가 그것.

5~6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임마누엘은 '저자의 말'에서 "다문화사회에서의 한국은 외국인들에게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재미교포나 재일교포들이 미국과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외국인들 역시 한국의 전통문화를 낯선 이색문화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한 마디 툭 던진다. 그는 "나는 한국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이름 그대로 '큰 나라'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한'의 크다는 말은 영토가 넓다는 것도 아니고 인구가 많다는 것도 아니다"라며 "포괄적인 문화라는 개념에서 큰 나라라는 뜻"이라고 썼다. 그가 이 책을 펴낸 까닭도 우리나라가 지구촌 곳곳에 있는 모든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전통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민족'이란 비좁은 틀에서 벗어나 지구촌 리더가 되기를 바라서다.  

"뜨거운 물 마시고 '어~ 시원하다'고요?"

21세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표류기’ 라 할 수 있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임마누엘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21세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표류기’ 라 할 수 있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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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문학의 뜻을 품고 한국에 와 여러 가지를 느껴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게 몇 가지 있다. 말하자면 '언어의 역설' 같은 반어법이다… 가령 뜨거운 물을 마시고도 '어~ 시원하다!'라고 탄성을 내지르고, 미인이 지나가는 데도 '헉! 죽인다!'라고 감탄하는 경우다. 이것은 어쩌면 한국의 정서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일지도 모른다."- 22쪽

1부 '하버드 박사의 한국표류기'에서는 우리나라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문화와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우리 모습을 찬찬히 살핀다. 2부 '질문이 정답이다'에서는 '가장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글쓴이 스스로 느낀 어릴 때 경험담을 통해 토론과 독서가 정답이라는 것에 밑줄을 진하게 긋는다. 

3부 '나의 독서노트'에서는 글쓴이가 눈여겨 읽었던 책에 대한 짤막짤막한 이야기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열하일기>를 비롯해 장자가 쓴 <나비>, 시대통찰을 담은 <홍루몽>, 다산 정약용이 펴낸 인문서들, 프리모 레비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 등이 그 책들이다. 프롤로그와 4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교수로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점을 콕콕 찌른다.

친구 현각 스님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뱉는 독특한 반어적 표현법, 예절과 가부장 문화, 환경문제를 다룬 초콜릿과 오랑우탄, 한일 월드컵 응원, 우리나라 발효음식, 맛은 이념이 아니라 양념, 비빔밥 정치, 우리나라 사교문화, 세계와 우리나라 문화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비빔밥처럼 비벼가며 인문학으로 풀어낸다.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의 연봉이 달라진다!"???

"교육은 '사실을 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컴퓨터의 작업처럼 학습에 있어서 가장 단순하고 표피적인 것이다. 교육은 세계를 인식하며, 모든 세상의 현상에 대해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주는 것이다. 교육은 개별 사실을 모으고 모든 현상에 대해 그 뒤에서 작용하는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195쪽

5부는 우리나라 인문교육을 다시 살리기 위해 우리 교육 현실을 파헤친다. '한국의 교육위기, 우리는 자녀에게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 '21세기 인문학은 왜 중요한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등이 그것. 6부 '하버드에서 만난 사람들'에서는 글쓴이가 하버드 대학원 때 만나 함께 연구하며 인연을 맺은 지구촌 예술가와 학자들에 얽힌 이야기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인문을 공부하는 첼리스트 요요마, '인문학의 야전사령관' 도정일 교수, 성찰 비평가 김우창 교수, 유럽만행을 떠난 현각 스님, 꾸준히 이메일로 글을 주고받는 지구촌 지성인 노암 촘스키 MIT교수 등이 그들이다. 7부 '내가 예일대를 선택한 이유'에서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고교 때 학업생활을 꼼꼼하게 소개하고 있다.

임마누엘은 "7~8개의 다양한 클럽활동과 끊임없는 독서와 토론이 핵"이라며 예일대 입시 준비과정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밝히면서도 우리나라 수도권 지역에 있는 한 여고 급훈을 떠올리며 입맛을 씁쓸하게 다신다. 그 급훈은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의 연봉이 달라진다!"이다. 그가 글을 쓴 그대로 참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우리나라 문화 구석구석 살피며 꼬집고 보듬다     

"한국에 살면서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다소 난감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비결을 좀 알려달라는 질문이다. 아마도 내가 한국에서 소위 '명문'으로 일컫는 예일대와 하버드대 출신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들은 내가 미국 명문대 입학에 필요한 어떤 특별한 노하우를 따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282쪽

미국 MIT 노암 촘스키 교수는 '추천글'에서 "난 한국에 대해서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내 '아들의 아들'이 아주 관심이 많아서 소식을 수시로 듣는다"라며,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가 한국에서 나온 데 대해 "축하드리며, 책이 출간되면 한번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현각 스님(독일 뮌헨 '불이선원' 선원장)은 "나는 임마누엘 교수가 불교신자인지 아닌지 잘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라며 "임마누엘은 빛나는 문화유전자와 외부의 적들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는 한국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다. 난 한국인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며, 동시에 그의 생각이 한국에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란다"고 썼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가 이번에 펴낸 한국표류기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는 푸른 눈을 가진 이방인이 몸과 마음에 담은 우리나라 안방 엿보기다. 그는 마치 우리나라를 서양에 처음 알린 네덜란드인 하멜(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이 쓴 표류기보다 더 정밀한 눈으로 우리나라 문화 구석구석을 때로는 날카롭게 꼬집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문화로 꼬옥 보듬기도 한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manuel Pastreich, 한국 이름 이만열)는 1964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태어나 1985년 대만국립대 중문과 교환학생이 되었으며, 1987년 예일대 중문과 및 전체 우등 졸업을 했다. 1991년 동경대 대학원을 졸업(비교문화학 석사)하고, 1995년 서울대 중문과 대학원 연구생이 되었으며, 1997년 하버드대 겸임교수,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겸임교수를 맡았다.

1998년에는 하버드대 대학원을 졸업(동아시아언어문명학 박사)하고, 일리노이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및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객원교수, 동경대 교환교수를 맡았으며, 2005년 펜실베니아대 동아시아학센터 객원 연구원, 2006년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2007년 우송대 솔브릿지 국제경영학부 교수를 맡았다. 지금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를 맡고 있다.

펴낸 책(영어 저서)은 <The Observable Mundane>(중일 고전소설의 세속성 비교관찰)이 있으며, 옮긴 책(영역)으로는 <The Novels of Park Jiwon>(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이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하버드 박사 이만열 교수의 大한국 표류기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지음, 21세기북스(2016)


태그:#임마누엘, #노마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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