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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장소는 미스터리 소설의 무대가 되기에 적당한 곳이다. 학교 안에는 성장배경과 가정환경, 성격 등 거의 모든 것이 다른 학생들이 모여있다. 그러니 그 안에서 온갖 종류의 사건과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

 

걸핏하면 치고받는 싸움이 일어나고 집단적으로 누군가를 따돌리기도 한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알력이 있을 것이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교사도 있을 테고, 권력 다툼에는 관계없이 자신의 업무에만 집중하는 교사도 있을 것이다.

 

생기발랄한 학생들이 모여있는 학교는 언뜻 밝은 생명력의 상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거기에는 수많은 갈등이 모여 있다. 학생과 학생 간, 학생과 교사 간, 교사와 교사 간 불만과 반목이 얽혀있다.

 

학교마다 여러 가지 괴담이 전해져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풀리지 않은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괴담으로 변질된다. 문제의 소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폐쇄적인 장소인 학교. 미스터리 소설의 무대로 이만큼 좋은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인기가 많지만 이중적인 젊은 교사

 

일본 작가 기시 유스케도 학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작가의 2010년 작품 <악의 교전>은 일본의 한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다. 이 고등학교에는 하스미 세이지라는 이름을 가진 32살의 영어교사가 근무하고 있다. 하스미는 중학교 시절에 사고로 부모를 잃었지만, 그 이후에 미국유학길에 올라서 MBA를 취득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하스미는 이 학교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밝고 행동력이 있는데다 학생들을 위하는 좋은 교사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학교에 부임한 1년째부터 학생지도부에 들어가서 다양한 문제를 시원시원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하스미는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교사의 책임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수업을 이끌어가는 교사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졸거나 지겨워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하스미는 50분의 수업시간 동안 적절한 농담을 뒤섞어가면서 활기차게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이 정답을 말했을 때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학생들은 하스미를 '하스민 쌤'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하스미 친위대까지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하스미가 모든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묘한 통찰력을 가진 여학생 가타기리 레이카는 하스미를 경계하고 있다. 왠지 모르지만 하스미가 하는 짓이 모두 가식처럼 느껴진다. 그 상쾌한 웃음이나 평소 학생들을 대할 때의 따스함, 배려를 잊지 않는 행동 모두 마찬가지다.

 

실제로 하스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어둡고 뒤틀린 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스미를 자극하는 일들이 연달아 생기면서 하스미의 내면이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스미의 어두운 면이 학교에서 어떤 형태로 표출될까, 아니 그 이전에 MBA를 취득한 유학파가 왜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을까.

 

조금씩 무너져 가는 학교의 일상

 

약간만 관점을 바꾸어서 본다면, 하스미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 또는 사이코패스의 인상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겉으로 보기에 친절하고 예의바른 젊은이처럼 행동한다. 직장에서는 모범사원이고 동네에서는 다정한 이웃이다. 다만 그 가면을 벗겨보면 그 안에는 일반인이 상상하기도 힘든 사악한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스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가면을 벗겨도 그 안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뿐이다. 하스미에게는 타인과 감정을 교류하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 학교에서는 일부러 유쾌하고 자상한 표정을 끝없이 연출한다.

 

하스미라는 괴상한 선생 이외에도 이 고등학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주기 위해서 커닝을 시도하는 학생도 있고, 전국시대의 군인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교사도 있다. 조직폭력배가 실수로 교직에 몸 담은 듯한 인물도 있고, 주어진 수업을 하고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진 교사도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도 다채롭다. 학생들은 특정 교사만 골라서 골탕 먹이는 행동을 하는가하면, 수학여행지에서 들뜬 기분으로 깔깔대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도 하스미의 이중성 때문에 조금씩 무너져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교문만 닫아버리면 폐쇄되는 공간인 학교가 이런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악의 교전> 1, 2. 기시 유스케 지음 / 한성례 옮김. 느낌이있는책 펴냄.


악의 교전 1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느낌이있는책(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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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에는 괴물이 있다!

태그:#악의 교전, #기시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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