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23일 오후 정부청사 뒤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자은 한대련 의장(왼쪽)이 정부 여당의 등록금 대책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6월 23일 오후 정부청사 뒤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자은 한대련 의장(왼쪽)이 정부 여당의 등록금 대책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 홍현진

관련사진보기

올 상반기 등록금 투쟁을 위해 발 벗고 뛴 대학생이 어디 한둘이겠냐만은, 매일 같이 열리는 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것은 물론, 연행과 삭발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내던진(?) 여대생이 있다. 오죽하면 별명이 '강철 여대생', '잔 다르크 대학생'이겠는가. 그 주인공은 바로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박자은 의장(23,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이다.

나는 우리 학교 총학생회 집행부를 하고 있어서 오다 가다 박자은 의장과 마주치는 일은 잦았지만, 그때마다 나와는 다른 '특별한' 대학생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반값등록금 집회뿐 아니라 각종 사회적 이슈의 현장에서만 주로 만나는 박자은 의장을 보면서 정말 '강철 여대생'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5월, 개인적으로 이 강철 여대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하여 광주에 내려갔는데, 거기서 박자은 의장과 함께 술을 마실 기회가 생겼다. "아직 총학에서 안 짤렸네요?"라고 던진 장난스런 한마디에 '이 언니도 주변에 있는 선배들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박자은 의장이 내게 그런 농담을 한 것은, 내가 지난 5월 1일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대학생 대표 삭발식에서 우리 학교 총학생회장의 머리를 밀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엄청난 미용 실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그날 이후 대학생들의 결의에 찬 삭발식 자리를 망친 것 같은 자책감에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박자은 의장이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장난 섞인 말로 인사를 건넨 것이다.

이렇게 '언니' 같은 박자은 의장의 모습이 궁금했다. 한대련 의장으로서의 '빡센' 모습뿐만 아니라, 박자은이라는 여대생으로서의 솔직한 모습. 2학기 개강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8월 26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박자은 의장을 만났다.

"반값등록금 투쟁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 지난 한 학기, 그리고 방학 동안의 반값등록금 투쟁을 한마디로 정리해달라.
"기적이었다. 지난 한 학기, 반값등록금 운동은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이전까지의 한국 대학생들은 스펙, 학업, 취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잘 돌아보지 않는 이기적인 대학생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촛불을 만드는 과정부터 그것을 유지하고 이어 나가는 데에 대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대학생들이 거리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학업 등을 내려놓고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싸웠다. 최근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대학생들의 모습에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서 지난 한 학기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이는 어느 사람 하나가 잘나서가 아니라 헌신과 연대 등의 복합적 요인들로 이루어진 기적이었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며 8월 12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인 박자은 한대련 의장(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이 경찰에 강제연행되며 울부짖고 있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요구하며 8월 12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인 박자은 한대련 의장(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이 경찰에 강제연행되며 울부짖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벌써 2학기 개강이다. 올해 안에 반값등록금을 성사시키기 위한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한대련 의장은 대학생 대중을 책임지는 자리다. 비장의 무기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 학생들이 잡혀갔을 때 '내 친구를 돌려달라'는 마음으로 순수하고 절실하게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오로지 그런 일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2학기 반값등록금 투쟁 계획 중 '전국학생총회'에 대해 설명해달라.
"현재의 상황에서는 반값등록금 논의에 관한 이견과 온도 차이를 좁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짓는 12월 국회까지 바라보고 초심을 잃지 않고 목소리를 다 같이 모아야 한다. 그 일환으로 9월 29일 전국학생총회를 준비 중이다."

- 한대련이 반값등록금 투쟁으로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한대련이 대학생 문제 외에 사회적 문제에 연대하는 것은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어떠한 직업을 가졌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은 혼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아이스초코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컵을 만들고 누군가는 빨대를 만들고 또 누군가는 이 음료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을 수 있는 거다.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로 국한시킬 수 없는 이유다.

우리 등록금 문제도 대학생들만의 문제라기보다, 부모님, 교수, 경비 아저씨, 청소 아주머니 등 많은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인 것이다. 노동자들의 문제 역시 우리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당연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가까이는 우리 가족, 이웃들의 문제 아닌가. 설사 자기와 관련이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살다가 누구라도 부당한 일을 당할 수 있는데 내가 먼저 남을 돕지 않는다면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누가 나를 도와줄까."

"연애하고 싶지만 잘해줄 자신이 없어서..."

- 한대련 의장으로 살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이 많았을 텐데.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원래 국어국문학과 안의 연극학회에서 배우를 했다. 연극에서 의미와 재미를 느껴 졸업한 후 극단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 외에도 친구들과 밤새 수다 떨기,해 뜨는 거 보러 동해 가기, 멜로영화 보고 눈물 흘리기 등 여대생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을 만한 일들을 하고 싶다. 하지만 사실 2학년 때부터 총학생회 활동을 한 후에는 이 일 자체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되었다. 결국 지금 한대련 의장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 현재 남자친구는 있는가.
"지금은 없고 2학년이 되던 해 겨울까지 있었다. 좋은 분이 계시다면 만나보고 싶기도 하다. 근데 과연 내가 다른 여자친구들처럼 남자친구를 내 생활의 '1순위'로 생각할 수 있을까 고민은 든다. 현재 가족, 친구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데 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 잘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연애는 당분간 보류하고 싶다. 그리고 머리도 짧고, '강철여대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를 누가 좋아할까 하는 걱정도 든다."

- 박자은 의장 관련 기사에 보면 악성댓글들이 있다. 이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는가.
"'꼴에 쌍수(쌍꺼풀 수술) 했네' 이런 얘기부터 '북한으로 가라' 같은 종류의 댓글들이 있었다. 사실 성격이 매우 소심한 편이라 요즘은 댓글은 잘 보지 않는다. 악플 안에 있는 비판은 겸허히 받아드리지만 무조건적인 비난은 안 보려고 하는 편이다. 악플에 상처받을 때는 산책을 하거나 수다를 떨어서 잊으려고 한다."

5월 2일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며 삭발하는 박자은 한대련 의장.
 5월 2일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며 삭발하는 박자은 한대련 의장.
ⓒ 양태훈

관련사진보기


- 삭발식을 할 때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또 여대생으로서 머리를 자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때의 심경을 말해 달라.
"어머니께 삭발을 한다는 말씀을 드리기 전에 기사가 났다. 어머니께서 먼저 기사를 보시고 전화를 하셔서 걱정하시면서 '다른 사람들만 자르면 안 되냐', '안 자르면 안 되냐' 하고 걱정을 많이 하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엄마, 내가 대표자잖아'라고 했더니 딸이 대표자로서 책임지고 싶어하는 걸 아셨는지 그 이후부터는 어머니께서 새벽기도를 나가셨다고 한다.

삭발하던 날 아침 어머니께서 '널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를 사랑한다'라는 내용의 감동적인 문자를 보내주셨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덕분에 편하게 머리를 자를 수 있었다. 삭발을 한 후 어머니께서 뉴스에서 삭발한 내 머리를 보시고 '너 머리 크다. 뒤통수가 안 예쁘다'라는 문자를 또 보내셨다. 또 '머리를 자르니 아들 같구나. 큰 아들 생겨서 좋다'고도 하셨다.

머리 자르기 전에 사실 무덤덤했는데, 막상 머리를 자르는 날을 앞두고 새벽까지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다시 머리를 기르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이런저런 고민들로 우울해서 술을 마셨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렇지만 아침에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올 한 해 동안 학우들을 위해 살기로 했는데 머리를 자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대학생들의 힘든 현실을 사회에 알리고, 죽어간 친구들과 고통을 함께한다는 의미 앞에서 개인적 이유들로 고민해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건 내가 응당 해야 될 일이라는 것이 다시 느껴졌고, 또 나를 믿고 함께 머리를 자르기로 한 다른 대학생 대표자들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 <쎄씨(ceci)>라는 잡지에 기사가 나온 것으로 안다.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패션 잡지에 나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감사한 일이다. 기자분이 '아무 생각 없이 잡지를 열었을 누군가에게 반값등록금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 분들의 노력과 기획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반값등록금을 알리는 방법의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었는데 대안을 제시해준 거나 다름없는 이런 기획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난 한 학기 대학가의 가장 '핫'한 이슈였던 반값등록금. 그 중심에는 분명 박자은 의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강철여대생'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대생이기도 했다. 그녀가 유난히 강해서, 우리와 달라서 한대련 의장이 된 것이 아니다. 반값등록금 이슈는 이렇게 '평범한' 대학생들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 우리 사회에 던져질 수 있었다. '여대생' 박자은은 그 책임을 끝까지 다하기 위해, 2학기에도 열심히 달려갈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 안타깝게도 박자은 의장은 9월 2일 현재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 박의연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자은 , #반값등록금, #한대련, #삭발, #여대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