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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22번째 이야기다.

① 모텔 자동차번호판 가리기, 유죄냐 무죄냐? (대법원 8. 25.)
② 쇼트트랙 승부조작, 어떻게 이뤄졌나 (서울중앙지법 8. 12.)
③ 애인에게 "낙태하라"던 의사의 책임은? (서울남부지법 8.12.)

모텔 자동차번호판 가리기, 유죄냐 무죄냐

[사례 1] 서울 강남의 모텔 종업원인 A씨는 손님 차량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텔에서 사용하는 간판으로 차량의 번호판을 가리는 일이다. 손님의 요청에 따라 프라이버시를 위해 모텔이 제공하는 일종의 서비스였다. 그런데 A씨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출석통지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번호판을 가리는 것이 범죄라는 황당한 얘기도 들었다.

호텔이나 모텔에서 번호판을 가려주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 그게 죄가 된다면 숙박업 종사자들 중에서 전과자가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검찰이 적용한 법률부터 찾아보자.

자동차관리법 제10조 (자동차등록번호판)
⑤ 누구든지 등록번호판을 가리거나 알아보기 곤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러한 자동차를 운행하여서도 아니 된다.

제82조 (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10조제5항을 위반하여 고의로 등록번호판을 가리거나 알아보기 곤란하게 한 자

검찰은 이런 법 조항에 따라 A씨를 재판에 넘겼다. 유죄일까, 무죄일까. 법원의 판결도 엇갈렸다.

1심은 무죄라고 봤다. 판결의 요지는 이렇다.

'자동차관리법은 효율적인 자동차 관리, 자동차 성능과 안전 확보를 위한 법이다. 처벌조항도 이런 입법 취지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번호판을 가린다고 다 처벌하다 보면 범위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 사건은 고객의 요청으로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한 행위라서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항소심은 판결을 뒤집고 A씨에게 벌금 5만 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유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법 조항에 자동차 관리를 침해한 행위만 처벌한다고 나와 있지 않다.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야 처벌을 받는다는 문구가 없는 이상, 침해할 위험성이 있는 행위는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고 봐야 한다. 처벌 근거 조항을 제한하여 해석한 1심 판결은 잘못이다. A씨는 유죄다.' 
    
어느쪽이 더 타당할까. 대법원은 1심 판결(무죄)이 옳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5일 "행위가 이루어진 의도, 목적, 내용 및 장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자동차 안전확보, 교통 범죄 단속과는 무관하게 사적인 장소에서 행해진 경우에는 처벌대상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일이 재판이라면 굳이 판사가 필요 없을 것이다. 법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다.

쇼트트랙 승부조작, 어떻게 이뤄졌나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 수상 경력으로 점수를 매겨 선수 사망시까지 평생 연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사진은 미국의 쇼트트랙 간판스타인 안톤 오노를 표지로 다룬 미국의 스포츠 잡지.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 수상 경력으로 점수를 매겨 선수 사망시까지 평생 연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사진은 미국의 쇼트트랙 간판스타인 안톤 오노를 표지로 다룬 미국의 스포츠 잡지.
ⓒ 안톤 오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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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2] 동계올림픽 종목인 쇼트트랙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이아무개(46)씨는 고교 코치를 맡고 있었다. 그는 작년 전국대회 입상 경력이 없는 고3 선수들에게 대학입시 체육특기자 전형 지원 자격을 주기 위해 큰 일을 저질렀다. 어느 전국 대회에서 다른 코치, 선수들과 짜고 입상대상자와 순위를 미리 결정한 것이다.

일부 코치들과 선수들은 처음엔 반발했지만, 이씨의 의지가 확고했고 동참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승부조작에 동참했다. 이씨는 실력있는 선수들에겐 "경기 결과는 이미 정해져있으니 편하게 타라"고 말하거나 기권을 지시하여 순위밖으로 밀려나게 했다.

반대로 입상대상자들에겐 "넌 메달을 따기로 되어 있으니 다른 선수들이 뒤따라 줄 것이다. 열심히 타라"고 지시하며 경기결과를 미리 알려주었다. 결과는 이씨의 '시나리오'대로 나왔다.

말로만 떠돌던 스포츠의 승부조작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최근 프로축구에서도 광범위한 승부조작이 이뤄졌다는 증거가 속속 밝혀지면서 팬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줬다.

이 사건도 이씨를 비롯한 코치 14명과 수십 명의 선수들이 모두 동참해야만 가능한 일이어서 그 충격은 더했다. 서울중앙지법은 12일 "이씨가 승부를 조작하여 경기운영 업무를 방해하였다"며 업무방해죄를 적용,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이 사건 범행은 정정당당히 치러져야 할 운동경기의 승부를 미리 조작함으로써 정상적인 대회 운영을 방해함은 물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입상을 노리던 어린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건전한 스포츠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며 징역형 선고 배경을 밝혔다. 이 사건은 이씨의 항소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애인에게 낙태시술 권유한 의사의 책임은?

영화 <집행자> 가운데 한 장면. 재경은 여자 친구 은주(차수연)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갈등한다. 결국 은주는 낙태를 하고, 이 둘은 헤어진다.
 영화 <집행자> 가운데 한 장면. 재경은 여자 친구 은주(차수연)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갈등한다. 결국 은주는 낙태를 하고, 이 둘은 헤어진다.
ⓒ 영화사활동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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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3] "난 아빠가 될 준비가 아직 안 되었어. 의사로서 전문의 과정을 더 밟아야 하고. 아직은……."
"무슨 소리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난 아이를 낳을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어. 결혼한 후에 낳자. 애는 지우자."
"……."

애인 사이인 B씨(남)와 C씨(여)는 임신이 되고 나서 자주 실랑이를 벌였다. 의사인 B씨는 공부를 더 해야 하니 결혼 후 애를 낳자고 줄기차게 요구하였고 C씨는 결국 낙태시술을 받게 되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세 곳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낙태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진은 SBS 드라마 <산부인과>.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세 곳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낙태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사진은 SBS 드라마 <산부인과>.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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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범죄로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현행법으로 낙태는 엄연한 처벌대상이다(단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강간으로 임신하거나 산모의 건강이 위태로울 경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형법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B씨는 여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죄가 되지 않을까. 형법에는 교사범이 있다.

형법 제31조(교사범)
①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B씨는 낙태를 교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낙태를 강요하거나 교사한 적이 없고 의견제시 또는 권유한 것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교사란 "타인에게 특정의 범죄를 실행할 결의를 가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며 "그 수단에는 명령, 지시, 위협, 기망, 감언, 유혹, 종용, 애원, 이익의 제공 등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즉 설득이나 애원을 통해서 낙태를 결심하게 만들었더라도 죄가 된다는 얘기다.

서울남부지법은 12일 B씨에게 벌금 2백만 원을 선고했다. 검사와 B씨는 모두 판결에 불복, 항소한 상태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인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펴냈습니다.



태그:#낙태, #승부조작, #번호판가리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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