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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처음 트위터의 길로 인도한 것은 '이집트 혁명'이었다. 현대판 파라오 무바라크를 퇴진시킨 시민의 반정부 시위가 대한민국에 사는 어느 25살 여대생을 트위터로 이끌었다니, 나비효과도 이런 나비효과가 없었다.

사연인즉슨 그때는 재스민 혁명에 이어 이집트 혁명 등 중동의 반정부 시위를 분석한 기사들이 신문에 쏟아져나올 즈음이었다. 많은 신문과 주간지에선 혁명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고 그 대표적인 것으로 트위터를 꼽았다. 시민이 연대할 수 있었던 힘을 트위터에서 찾은 것이었다.

"트위터가 그렇게 대단해?"

최신, 최첨단, 유행과는 거리가 먼 올드한 20대가 스마트폰을 사고 계정을 뚫었다. 하지만  적응기는 혹독했다. 친구들의 조언을 따라 각종 유명인사들을 팔로우하고 지인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가끔씩 트위터를 들여다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득함과 피로함이었다. 이른바 폭트(폭풍트윗)이 트위터를 도배했다. 의미없는 140자의 낱말들이 흩뿌려졌다.

어떤 이들은 온갖 정치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피로함이 몰려왔다. 넓지만 얕은 트위터의 세계는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트위터를 끊었다가 다시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봇'들 때문이었다. '봇'이란 트위터상에서 이용자가 어떤 주제나 특정인의 인격을 가진 트윗을 반복해서 날리는 이들을 일컫는다.

처음 만난 봇은 하이개그 봇이었다.

통키와 피카츄가 길을 걷다가 담배를 발견 했다. 피카츄는 "피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통키가 하는 말 "피구왕~"

한시간 간격으로 올라오는 하이개그봇의 하이개그에 나는 계속해서 새로고침을 눌렀다. 잠들기까지도 손에 들려 있던 것은 핸드폰. 하이개그봇의 새로운 하이개그를 보며 잠을 청했고 어느날은 피카츄와 통키와 셋이서 길을 걷는 꿈을 꿨다.

봇 때문에 다시 시작한 트위터에 맛들리자 친구들이 하나씩 각종 '봇'들을 추천해줬다. 명대사봇, 드라마봇, 마르크스봇, 이상봇, 자본주의봇, 자본가봇, 치킨봇, 각종 봇들의 트윗을 보는 것은 각종 잡지들을 구독하는 재미와 비슷한 맛을 느끼게 했다.

궁금해지기 시작한 '봇'들의 세계

"나는 자본주의라고 하는데 내가 바로 직장인들이 하루 9시간을 일하고도 피트니스 센터에서 뛰는 이유이지; 마지막 남은 창의성까지 태워 없애려고 말야."

"죽어라 죽어 차라리 죽어라 나의 이 힘없는 발길에 거치적대지를 말아라 피곤한 이 다리를 위하야 평단한 길을 내여다오."

그렇게 하나 둘 점점 많은 봇들을 팔로우하고 소통했다. 하이개그봇이나 찌질봇이 웃음을 줬다면 마르크스봇이나 자본주의봇은 깨우침을 주기도 했다. 1920-30년대 활동했던 소설가 이상의 글을 트윗으로 날리는 이상봇은 어떤 날 새벽, 문학적 감성을 샘 솟게도 했다.  봇들의 세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봇들은 누가 만드는 것이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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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chicken_bot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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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마랅!!! 집에 아직 덜 큰 병아리들이 있닭!!!"
"치킨 거품가격 규탄한닭!! 반값치킨!! 투쟁!! 투쟁!!"
""기름이 너무 뜨겁닭! 어서 건져랅! 우아아아아앍!"

치킨봇은 복날이 되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쓸쓸해했다. 원래 나의 꿈은 저 하늘을 나는 거였다며 고백하듯 말하는 치킨봇에 왠지 모를 공감과 동정의 감정이 유발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자신을 먹지 말아달라며 호소하고 어느 날은 혼자는 외롭다며 두 마리는 시켜달라 주장하는 치킨봇의 이중적인 자아도 재밌었다.

치킨이 정말로 살아서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이런 센스가 넘치는 트윗을 날리는 치킨봇의 진짜 이용자는 누구일까. 어떻게 치킨봇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정말로 치킨에 살고 치킨에 죽는 치킨빠(팬)일까. 그렇다면 그는 어떤 치킨을 좋아할까. 치킨봇과 트윗 대화를 시도했다.

조심스레 봇 운영자의 정체를 물었다. 치킨이 치킨이지 무슨 소리하냐 할까봐 조심스러웠지만, 다행히도 치킨봇은 온 국민이 사랑하는 야식답게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대구에 사는 이십대 중반의 남성이란다. 그는 닭을 사랑하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하지만 그의 봇 운영은 우연한 시작과는 달리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날은 닭을 먹어랅, 어떤 날은 나를 먹지 말아달랅합니다. 처음 봇의 컨셉이었습니다. 사실 치킨봇은 닭의 희생에 초점이 맞춰져있기 때문입니다. 닭은 원래 수명이 10년이나 되지만 인간의 손에 의해 알에서 부화한 지 45일만에 깨끗이 해체가 됩니다. 어쩌면 인간은 닭에 입장에서 보면 학살자죠. 치킨봇의 까칠한 말투도 인간에 대한 피해의식이 깔려있다고 보시면 됩니다.하지만 지금은 팔로워들이 야식을 먹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존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가끔 닭 취급을 하며 닭드립을 하고 놀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주고 받던 농담을 봇을 통해 닭드립으로 확대시켜 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특별히 닭 싫어하는 사람은 잘 없잖아요? 성공할 줄 알았죠."

치킨봇의 상징이자 특징인 '닭체'에 대해서 물었다.

"일종의 언어 파괴인데 참 죄송스러워요. 처음에 트친이 올린 치킨 사진을 보고 "맛있겠다. 닭"을 줄여 쓴다고 쓴것이 "맛있겠닭" 이렇게 시작된 겁니다. 봇의 정체성을 살리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바로 쓰기 시작했는데… 팔로워들은 재밌어 하시는거 같아 다행입니다만…."

치킨봇에게는 라이벌 봇도 있단다.

"다이어트봇이에요. 먹지마! vs 먹어!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니 말이죠. 전에 한번 다이어트봇이 밤늦게 치킨 먹지말라고 하는 트윗에 농담조로 시비를 살짝 걸어본 적이 있었는데, 트친들이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봇들끼리 싸우는 모습이 재밌었겠죠. 싸워서 이겨달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치킨봇 아류로 중국집봇을 지인이 만들었었는데… 보고있나?"

마지막으로 치킨봇이 좋아하는 치킨에 대해 물었다. 네X치킨? 굽X치킨? 멕시X치킨? 아니란다.

"얻어먹는 치킨이요."

치킨봇 센스가 풍년이다.

"나 정말 두려워하는 여자가 한 명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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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capitalism_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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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픽 하고 웃고마는 그런 봇이 아닌, 재미를 넘어 좀 더 깊이있는 트윗을 날리는 봇들을 찾는다면 '자본주의봇'을 추천한다. 자본주의 봇의 운영자는 원래  @_Capitalism_ 이라는 영어 트윗봇을 팔로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이 계정의 트윗들 중 굉장히 촌철살인의 트윗이 많은 것을 발견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어도 괜찮은 글이 많다는 생각에 한글 번역봇을 만들었단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단다.

"나는 자본주의라고 하는데,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할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 나지"라는 트윗을 날리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자본주의는 한 인간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뜨리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작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트윗처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디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치이며 살면서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고 되뇌게 만드는 총체적인 작용인 것 같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봇은 자본주의를 설명함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폐단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 20대 후반의 작은 IT 벤처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지만,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것이 이 봇을 운영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고. 그는 팔로어들에게 '욕'을 먹을 때, '짜증'을 들을 때 뿌듯함을 느낀단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보람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관련된 트윗을 날렸을 때였다.

"김진숙님의 투쟁이 이슈가 되고 영도에서 충돌이 있었을 때 "나 자본주의가 정말 두려워하는 여자가 한 명 있는데, 지금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지"라는 트윗을 올렸었는데 많은 분들이 리트윗해 주시고 힐난해 주셨습니다. 그 때 운영하는 보람을 느꼈죠."

끝으로 자본주의봇은 자신 이외의 흥미로운 봇을 소개해주었다. 이름하야 회장님봇@HwejangNim 이다. 프로필에서는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삼성 이건희 회장의 어록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봇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나 대기업에 교묘한 비판각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자본가봇@kapital_bot 도 추천했는데 자본주의봇보다 한층 더 유머러스 하다고 했다.

"제 자본주의봇을 앞으로도 더욱 많이 미워해주시고, 여러분이 처한 노예제를 하루 빨리 깨닫고 혁명하시길 기원합니다."

고작 140자의 트위터가 위대한 혁명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그 잠재적인 힘을 이런 소소한 '봇'들에게서도 본다. 야식으로 치킨을 권하는 치킨봇조차 운영자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자본주의봇이나 회장님봇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곳에서 소개한 봇들 외에도 무수한 봇들이 트위터에 존재한다. 각자의 입맛에 맞는 봇들을 찾아 팔로우해보시라. 한층 더 트위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각종 봇들을 소개합니다
-가카봇(@GAKA_bot) -서울 경기지역에 많~은 비... 내리고 있는걸로 알고 있읍니다. 지난번 비 피해때도 피해주민께 말씀드렸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 이렇게 된 거니까 편안하게...

-거짓말봇(@lie_kbot) - 뱃살을 혼내거나 달래는 말을 하면 뱃살이 미안해서 빠집니다.

-교수님봇(@Professor_bot) -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연구실에 찾아와서 조교에게 물어보게나. 그래도 모르면 나한테 묻고.

-긍정봇(@Okay_bot) - 슬퍼하지 마세요, 웃음에 양보하세요

-김영삼봇 (@PresidentYSKim) - 맹박이가 아는 '문화' 카는 기 텔레비 보는 거 말고는 읎다는 기지. 그러니 소망교회 댕기는 탈렌트 중에서 돈 좀 만지는 놈을 문화부 장관으로 뽑을 수밖에.

-논문봇(@paper_bot) - 어디 한번 중간 결과물을 내놓아 보시지. (껌짝짝)

-다이어트봇(@diet___bot) - 한 순간의 포만감을 위해 평생의 자신감을 포기하지 말자

-드라마봇(@drama_bots) - 설렌다고 다 사랑이 아니야. 빛난다고 다 다이아몬드가 아닌것처럼.<로맨스가 필요해, 성수>

-마감봇(@magam_bot) - 있잖아..딴짓하고 있는거 다 보이거든?

-마르크스봇(@marx_krbot) - 계급투쟁은 항상 자본이 시작하거든요. 방금 설명한 것처럼 자본은 노동을 실질적으로 포섭하기 위해서 기계제대공업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발명했어요. 노동조합과 경제투쟁은 그것에 저항할 따름이에요

-명대사봇 (@FamousLineBot) -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늦은 거다." (박명수 / 무한도전)

-부장봇 (@Boojang_bot) - 애인도 없으면서 왜 일찍 퇴근하겠다는거야?

-사찰봇(@4chal_bot) - 민주용역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못 뺏은 카페 마리를 용역으로 되찾으세 강철같은 침탈의지 와서 모여 뺏으세 공권력 속에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껴보세

-아빠봇(@tweets_papa) - 구하라가 소녀시대니?

-엄마봇(@umma_bot) -오늘은 몇시에 들어오니?

-여친봇(@Yeochin_Bot) - 슬퍼하지마~ 내가 꼬옥~ 안아줄게염~

-이상봇(@LEESANG_0923) -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네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버려라 운운

-전남친봇(@exboyfriend_) - 나 오늘 술먹었다...취하니까 니 생각 나더라...

-찌질봇(@JJiJil Bot) - 남자한테 선물받고 싶다고? 그럼 택배주문하나 하고 까먹고 있으면 되~ 어느날 남자가 선물들고 나타날꺼니까

-현실봇(@hyunshill_bot)) -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거야.

-홈리스봇(@Homeless_bot) - 누워있는 내 머리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지나가는 밤 10시입니다.

-회장님봇 (@HwejangNim) - 대한민국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륩니다. 물론 삼성이야 초일류 기업이죠. 소비자 수준이요? ... 아하하하핫


태그:#트위터, #봇, #치킨봇, #자본주의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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