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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실시되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여야의 투표운동이 찬반이 아니라 '투표 독려'와 '투표 거부'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은 분명히 비정상이다.

 

여야가 각종 선거와 주민투표에서 지금까지 보여 왔던 양상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투표 거부 운동을 하고 있는 민주당과 민노당 등 야당은 4·27 재보궐선거와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투표 독려에 온 힘을 쏟아서 결국 승리했다.

 

지난 2007년 9월 20일 광역 화장장 유치를 추진하는 김황식 전 경기도 하남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당시 김 시장 측의 전략은 투표 거부운동이었고 한나라당이 이를 전폭 지원, 결국 31.1%의 투표율로 개표가 무산됐다. 2009년 한나라당 소속 김태환 제주도지사 주민소환투표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랬던 한나라당은 야당의 투표 거부 운동을 "반헌법·반민주적 작태"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렇게 여야의 입장이 서로 돌변해 투표권자들을 헛갈리게 만든 원인은 주민투표법 24조에 있다. 이 조항은 '전체 투표수가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에 미달되는 때에는 개표를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는데, 쉽게 말해 투표율이 3분의 1이 안되면 주민투표 자체가 무효가 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주민소환법도 마찬가지인데, 과거엔 한나라당이, 지금은 민주당이 이 조항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조항은 2003년 주민투표법 제정 당시 주민투표가 대표성을 가지려면 일정 정도 이상의 투표율이 확보돼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됐다. 평일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주민투표일과 실시환경이 비슷한 역대 재보궐선거의 투표율을 검토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투표율이면서도 대표성을 가지는 투표율을 '3분의 1 이상'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현재 여당의 미움을 받고 있다. 지난 22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 지표가 오 시장 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데도 민주당의 불법적인 작태로 투표함을 못 열면 그걸 어떻게 오 시장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느냐"며 "현행 주민투표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홍 대표의 이런 시각에 대해 2004년 전북 부안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았던 하승수 변호사는 일침을 가했다. 하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한나라당은 그동안 제주도와 하남시 주민소환투표에서 '주민소환이 남용되면 안 된다'면서 '3분의 1 투표율 조항'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이제 와서 한나라당이 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니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폐장 주민투표' 하승수 변호사 "시장 주도, 비정상 선택지, 거부 이유 충분"

 

주민투표에서 투표 불참 운동이 정당성을 갖느냐 하는 부분도 논란거리다. 투표불참 운동에 대한 여당의 비난이 거세지만, 중앙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거부를 투표참여와 같은 주민투표운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주민투표 선택지로 제시된 1안과 2안 둘 다 찬성하지 않는 시민은 투표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대해 하 변호사는 "주민투표가 유권자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투표거부를 해도 되는지, 또 반대로 무조건 투표를 독려해야 하는지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하 변호사는 "이번 주민투표를 보이콧할 충분한 근거는 있다. 이번 주민투표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하 변호사는 "주민투표 제도는 자치단체장의 주도가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지방자치제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예를 들어 주민들이 원자력발전소 유치에 반대하는데 자치단체장이 주민들 얘길 듣지 않을 경우처럼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주민투표인데, 이번처럼 시장이 주도하고 시장이 사실상 투표운동에 나서는 건 주민투표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이어 "주민투표는 보통 찬성과 반대로 투표권자가 명확한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번 주민투표는 찬·반이 아니라 1안·2안을 선택하도록 해 상당한 혼란을 주고 있다"며 "이런 투표 방식 자체가 주민투표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점도 투표 거부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찬반이 아니라 1안·2안으로 진행되는 투표는 '제3의 방안'을 지지하는 시민을 대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오 시장은 무상급식에 대한 정책 투표를 하겠다고 해놓고, 다시 시장의 거취를 걸어 사실상 주민소환투표로 만들어 버린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다"며 "이번 주민투표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끌고 오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무리수와 갈등만 증폭시킨 비정상적인 주민투표"라고 평가했다.


태그:#오세훈, #주민투표, #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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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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