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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거리에 있는 쌀을 팔던 점포. 민속촌에서 촬영한 자료사진입니다.
▲ 싸전 저자거리에 있는 쌀을 팔던 점포. 민속촌에서 촬영한 자료사진입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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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거리는 사람들로 술렁거렸다. 김종서를 비롯한 조정 대신들이 효수되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밤새 안녕이다. 백성들은 우매한 것 같지만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혀를 잘 못 놀리면 경을 치게 된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으로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살벌한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의 서글픈 지혜다.

긴 밤 지새웠다. 참으로 긴 밤이다. 한명회에게는 가슴 졸이는 하룻밤이었다. 거사가 수포로 돌아가면 공명은 고사하고 삼족이 멸(滅)하게 된다. 하지만 멸하게 될 대단한 식솔도 없다. 사나이 한 목숨 바치면 그만이다. 것도 완전한 몸도 아니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구부정한 몸매에 칠삭둥이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모른다.

"안평대군은 어떻게 할까요?"
한명회가 수양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살생부에 기록된 대로 처치하는데 주점함이 없었다. 하지만 안평은 다르다. 분명 살부(殺部)에 올라있지만 수양의 동생이 아닌가.

"어디에 있는가?"
"성녕대군 댁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형님이다. 관악산 연주암 효령각에 있다.
▲ 효령대군 세종대왕의 형님이다. 관악산 연주암 효령각에 있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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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안평이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은 성녕대군 사저 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수양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왕실 어른으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있다. 양녕은 폐 세자 되면서 날개가 꺾였지만 효령은 막후의 실력자다.

하지만 한명회는 자신들의 거사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양녕과 효령이 안평의 몸을 숨겨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한명회는 예민한 후각으로 정치 지형도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최사기와 신선경을 보내 용(瑢)을 강화에 부처하라."

유배령이다. 세종은 왕후 소생 적자(嫡子)만 여덟 명이다. 두 명의 공주를 포함해서 소헌왕후는 열 명을 생산했다. 왕비 외에 다섯 명의 후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세종이 자신의 아버지 때문에 친정아버지를 잃은 왕후를 위로해주기 위하여 왕비만 사랑한 것 같지도 않다.

이렇게 많은 남자 형제 중에서 수양은 야심이 컸고 안평은 풍류를 즐겼다. 때문에 한 살 터울인 두 형제 집엔 항상 내방객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바람은 구름을 모으고 세(勢)는 사람을 모은다 하지 않았던가.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사저에 사람이 몰리자 자연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서로 견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금부도사 신선경과 최사기가 군사 1백을 이끌고 옥인방 안평대군 집에 들이닥쳤다. 순간, 대군 사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수많은 시인 묵객과 무사들이 드나들던 세력가의 저택이었지만 물줄기를 돌리는 질풍 앞엔 한 잎 낙엽이었다. 가노들은 허둥지둥 도망가기 바빴고 부녀자들은 울부짖었다.

"이우직을 압송하여 양화나루에서 기다려라."
의금부도사 신선경이 삼군진무 나치정에 명했다. 아래채에 살고 있는 이우직은 안평의 아들이다.

"네 죄가 참으로 커서 주살을 면키 어려우나 아버지와 형님이 너를 사랑하시던 마음으로 너를 용서하니 그리 알아라."

안평대군을 거적자리에 꿇리고 도사가 수양의 편지를 읽었다. 고개를 숙이고 도사의 소리를 듣고 있던 안평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제부터 내 목숨은 내 목숨이 아니다. 수양 형님 손에 달려있다. 아니, 그 한 방인가 두 방인가 하는 한명회 손에 달려있다. 나에게도 소인배스러운 이현로가 아니라 한명회 같은 책사가 있었으면 내가 수양을 교동에 보낼 수 있었을텐데... 아! 원통하다."

안평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통한의 눈물이다.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먼저 치자고 했다. 하지만 안평의 생각은 달랐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피를 나눈 형님과의 싸움에서 선제공격은 의(義)에 어긋나며 피를 보는 것은 군자의 도(道)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허나, 이제는 모든 것이 소용없는 일. 후회스럽기 짝이 없었다.

현명한 책사는 주군을 앞세우는 그림자였고 우매한 술사는 싸움닭이었다

수양에게 한명회가 있었다면 안평에게는 이현로가 있었다. 한명회가 과거 낙방 동인이라면 이현로는 급제자 출신이다. 그가 부교리로 처음 출사한 집현전에는 수찬(修撰) 성삼문과 부수찬 유성원이 있었다. 한명회가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고 있을 때 이현로는 촉망받는 조선의 동량이었다. 허나, 이현로는 주군의 적과 맞서는 싸움닭이었고 한명회는 주군을 전면에 내세우는 철저한 그림자였다.

"백악산 뒤에 궁궐을 짓지 아니하면 정룡(正龍))이 쇠하고 방룡(傍龍)이 발(發)한다. 태종과 세종은 모두 방룡으로서 임금이 되었고 문종은 정룡이라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폭탄발언이다. 이현로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조선왕실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다. 왕실을 능멸했다는 혐의로 능지처참을 당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어 수양대군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참설이 이러니 네가 옥좌를 넘보지 않느냐?'는 것이다. 역설의 역공이다. 양심에 칼침을 당한 수양은 이현로를 불렀다.

"네가 혀를 놀려 우리 골육(骨肉)을 이간하려 하느냐?"

격노한 수양은 종(從)으로 하여금 매질하게 했다. 감추고 싶은 곳을 들추면 더 반발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이현로가 수양에게 매를 맞았다는 소식을 접한 황보인이 수양을 찾아갔다.

"조관(朝官)을 매질한 것은 나를 비롯한 조신(朝臣)들을 욕보인 것입니다. 대군은 모름지기 전하께 술이 취해 잘못되었다고 아뢰시오."
사뭇 명령조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함부로 하시오. 나는 그날 술 마신일도 없을뿐더러 현로가 맞을 짓을했기 때문에 종으로 하여금 때리게 한 것이오."
일언지하에 황보인을 돌려보냈다. 이현로가 맞은 것을 핑계로 몸져누웠다. 한명회가 문병 길에 나섰다.

오만한 선수를 찾아간 장자 예비선수

"어째 이런 일이...?"
한명회가 이현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수양대군이 나 보기를 역질(疢疾) 보듯 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는 반드시 나를 없애고자 할 것이다."
"포의천부는 국사에 참여함이 없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하는가?"
한명회가 겸손하게 말했다. 포의천부(布衣賤夫)는 벼슬 없는 천한 사람이다.

"너는 포의(布衣)로서 아는 이가 없으므로 내가 이미 안평대군에게 추천하였다. 한 번 가서 뵙는 것이 옳을 것이다. 평생의 길을 얻는 것이 모두 여기에 있다."
이현로가 한명회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나는 관직에 있고 너는 관직이 없는 천한 필부이나 내 너를 어여삐 여겨 대군 나리께 천거하겠다는 투다.

"일없소이다."
자존심이 상한 한명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권람의 천거로 수양의 장자방이 되기 전 일이다. 이후 두 사람은 각각 제 갈 길을 갔다. 이현로는 안평의 책사가 되었고 한명회는 수양의 장자방이 되었다.

급기야 '이현로 구타사건'은 조정의 쟁점이 되었다. 황보인과 김종서는 왕실의 종친이 조신(朝臣)을 구타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만행이라고 수양을 성토했고 사간원과 사헌부는 '이현로가 맞을 짓을 했다'고 수양을 두둔했다.

수양이 일갈했다. 인신공격이지만 정곡을 찌른 것이다. 계산된 강공은 자신에게 쏟아지던 의심의 눈길을 불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사건으로 안평과의 전선이 확연히 구분되었으며 천하의 장자방 한명회를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앙화진 나루터 표지석. 한양에서 김포와 강화로 가는 길목이다.
▲ 양화도 앙화진 나루터 표지석. 한양에서 김포와 강화로 가는 길목이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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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장이 오라에 묶인 안평을 문밖으로 끌어냈다. 가노들이 뒤따라 나와 대성통곡했다. 안평대군 압송 일행이 돈의문을 통과하여 애오개 마루에 올라섰다. 여기저기 무덤이 즐비하다. 먼저 태어났지만 늦게 간 사람, 늦게 태어났지만 먼저 간 사람, 빨리 가야할 이유도 많고  늦게 가야할 이유도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이윽고 광흥창을 지나 양화진 나루터에 도착했다. 한양에서 김포와 강화로 가는 길목이다.

나루터는 도성에서 벌어지는 정변과는 상관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소금과 어물을 가지고 도성으로 들어가는 장사꾼들, 한양에서 방물을 가지고 김포와 강화로 나가는 부보상들. 그들은 고관대작이 잡혀가는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짐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영기를 발견한 안평이 그를 불렀다. 안평대군댁 가노 영기는 나졸들의 눈을 피해 압송 행렬을 뒤따라왔던 것이다.

"급히 가서 김 정승에게 전하라. 수양의 습격을 받아 잡혀가고 있다고..."

안평은 김종서의 집이 쑥대밭이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북녘 땅 변방을 호령하던 대장군 김종서가 빨리 와서 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강화에 들어가기 전에 구원군이 와야 할텐데..."
안평은 입술이 타들어갔다.


태그:#수양대군, #한명회, #효령대군, #세종대왕, #안평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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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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