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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릴 적 속옷하면 '백양 메리야스'요, 색깔은 '흰색'입니다. 설빔과 추석빔처럼 흰색 러닝셔츠와 팬티를 부모님이 사주실 때마다 가슴 뿌듯했던 옛 생각이 납니다. 누렇게 변하고 구멍 송송난 러닝셔츠와 팬티를 버리고 흰눈보다 더 흰 속옷을 입고 나면 마음까지 깨끗한 기분이 들었던 생각이 새록새록납니다.

군대 복무때 두 달에 한 번씩 속옷이 나왔는데 러닝셔츠는 국방색(조금 진한 풀색), 팬티는 흰색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생각보다 깨끗합니다. 아마 태어나서 그 때 가장 깨끗하게 씻었던 것 같습니다. 몸에 땀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선임병이 가만히 두지 않았지요. 속옷 색깔이 국방색과 흰색이기 때문에 헷갈립니다. 그러므로 노란색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고참이 되면 흰색 러닝셔츠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흰색 러닝셔츠를 입을 수 있다면 고참이 되었다는 증표였지요.

사각팬티, 그것은 혁명이었다

그런데 그 때는 한결같이 다 삼각팬티였습니다. 생각이 가물가물거리지만 제대 후 얼마 되지 않아 사각팬티가 나왔습니다. 거의 혁명적인 발상이었지요. 저 역시 사각팬티를 한 번 입은 후부터 다시는 삼각팬티를 입지 않았습니다. 사각팬티 광팬이 된 것이지요. 색깔도 흰색에서부터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색깔이 다 있습니다.

속옷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각팬티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추억 때문입니다. 아주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사각팬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 것을 알고 지금도 충격과 공포(?)를 넘어 배꼽을 잡아 정신을 거의 놓은 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내될 사람이 사각팬티를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선물하면서 "팬티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았고, 친구 역시 그 때까지 팬티는 백양메리야스 흰색 '삼각팬티'만 있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내일 모레면 한 방에 같이 잘 사람이 선물을 했으니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이게 엄청난 사단을 낼 줄 친구도, 아내될 사람도 그 때까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겨울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는 여름이었습니다.

친구는 사각팬티를 반바지로 알고 삼각팬티 위에 사각팬티를 입고 시내를 돌아 다녔다. 위 사진은 우리집 막둥이 삼각팬티와 사각팬티입니다.
 친구는 사각팬티를 반바지로 알고 삼각팬티 위에 사각팬티를 입고 시내를 돌아 다녔다. 위 사진은 우리집 막둥이 삼각팬티와 사각팬티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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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동무는 삼각팬티를 입고, 위에 사각팬티를 입었습니다. 그 때까지 동무는 사각팬티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습니다. 당연히 그것은 '반바지'였습니다. 동무도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던지 '그런데 반바지가 왜 이렇게 작지? 이상하네'라는 생각은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자 반바지도 여자 반바지처럼 작은 것이 있는 줄 알고 그냥 입었지요. 한마디로 팬티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삼각팬티 위에 사각팬티, 시내를 활보하다

친구는 결국 삼각팬티를 입고, 그 위에 사각팬티를 반바지로 생각해 입고 시내를 활보했습니다. 차마 그 시내가 어디인지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마음 속으로 내일 모레면 나와 결혼할 사람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자랑이 잔뜩 배여 있는 얼굴로 말입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삼각팬티 위에 사각팬티를 입은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친구를 보고 웃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웃지? 얼굴에 무엇이 묻었나.' 지하철를 타도, 시내버스를 타도, 거리를 걸어다녀도 사람들은 동무만 보면 웃음보를 터뜨리기 직전이었습니다. 

"사각팬티를 처음 입어봤어?"
"그렇지. 팬티는 삼각뿐이잖아."
"입으면 반바지기 아닌 줄 알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몰라?"
"처음에는 이상했지. 그래도 조금 작은 반바지인 줄 알았지. 여자들도 반바지 짧게 입잖아? 남자 반바지도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사람들이 풍기문란죄로 잡아 넣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알고나서 정신이 없더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는 배꼽을 잡고 방바닥에 거의 누워 버렸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그 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아마 사각팬티가 처음 나왔을 때 친구처럼 반바지로 착각하고 삼각팬티 위에 입고 나간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친구, 지금 중국에서 선교사 일을 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은데,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아찔과 쪽팔림 사이, '노출'의 추억 공모 글입니다.



태그:#사각팬티, #반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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