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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투표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휴일로 지정된 투표일 날, 긴장이 풀어진 내무반에 부대 인사계나 선임하사가 나타난다. 부재자투표용지 등 관련 홍보물이 들어 있는 봉투 하나씩을 든 사병들이 줄줄이 60트럭에 올라타고 투표소로 향한다. 부대 내 부정선거가 사라지고 나서는 누굴 찍든, 어느 당을 지지하든 부대 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반드시 투표는 하고야마는 분위기다. 일일 외출외박 등 부대원 동향을 집계해서 보고하기 때문에 나처럼 감옥행 이후 군대에 가서 선거권이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열외없는 투표가 진행된다.

 

서울에 주소지가 있는 군인, 전의경, 경찰 등 선거업무 종사자들이 주로 이번에도 부재자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군인, 전의경 등은 언제나 그렇듯이 '줄투표'를 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부재자 선거참여율은 90% 이상

 

서울시는 지난 9일까지 우편 등으로 접수된 부재자투표 신고자 수를 각 자치구를 통해 잠정 집계한 결과 10만2831명으로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 이는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당시 부재자 수인 15만4721명 (전체 선거인수 8,211,461명의 1.88%)보다 수가 줄어든 것이다. 일반인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투표인 만큼 부재자 신고가 줄었기 때문에 이번에 신고된 부재자 수는 전적으로 군인과 전의경 등일 것으로 보인다.

 

부재자 신고자의 수는 줄어들었고, 전체 투표인 수에 비해 1% 대의 적은 비율이지만 그 속 내용을 따져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파괴력을 가진 것이 바로 부재자 투표다.

 

먼저 지난 2010년 6.2 서울시장 선거 당시 통계를 통해 부재자 투표가 이번 선거에서 어떤 파괴력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앞서 밝힌 것처럼 부재자 수는 전체 선거인 수의 1.88%에 불과하지만 실제 투표율로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서울시장 선거에서의 전체 투표율은 53.9%이었지만, 당시 부재자는 15만4721명 중 13만9458명이 투표에 참여해 무려 90.1%의 투표율을 보였다. 따라서, 전체 선거인 수에서 부재자 투표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88%에 불과했지만 이것을 실 투표참여자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따지면 3.15%로 상승한다.

 

부재자 줄투표로 오세훈 지지 구(區) 하나 더 생기는 셈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선거가 사실상 '찬반투표'가 아닌 "33.3%의 투표율"을 놓고 승패를 가르는 '참/불참 투표'이기 때문에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기준으로 선거의 승패를 가를 최종 투표율 33.3% (2,737,153명)로 가정하면, 부재자 139,458명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5.09% 나 된다. 이번 부재자 신고인 수가 줄기는 했지만 역시 전체 선거인 수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이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비율을 이번 선거에서 25개 자치구의 인구수를 무시하고 단순 적용해 보면, 서울 한 개 구(區)에서의 유효투표율(33.3%)에 해당하는 주민 수보다 많은 부재자 투표가 있을 것이므로 이번 투표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오세훈 시장에게 100% 찬성하는 구 하나가 더 생기는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모든 가정은 군대와 전의경 부대 내에서 습관처럼 해왔던 '줄투표'를 전제로 한 것이다. '투표는 당연히 하는 것으로 열외없다!'라는 착하고 단순한 군대식 사고방식이 나쁘고 복잡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동생들과 조카들의 밥그릇을 뺏어가려는 오세훈 시장의 정책에 격분한 군인들이 돌격전을 치르듯이 전체가 다 '반대'투표를 한다 하더라도 이번 투표의 특성상 '반대 함성이 찬성의 합창소리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해괴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의를 왜곡하지 않고, 이번 선거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군부대와 전의경 부대 내에서 이 투표의 내용이 정확하게 공유되어야 하고, '줄투표'가 아닌 '참여/불참'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투표율 싸움에서 줄투표는 사실상 찬성 줄세우기

 

선관위에 반대운동 대표 단체로 등록한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는 선관위에 시급히 요구해야 한다. 즉, 부재자들에게 발송할 우편봉투 안에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33.3%를 넘지 않으면 자동 무효가 되며 투표 불참도 중요한 권리라는 점을 안내하는 안내문을 함께 발송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선관위가 이미 '투표거부도 정당한 선거운동'이라고 유권해석을 한 만큼 이에 대한 적절한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국방부와 경찰청 등에도 이러한 투표관련 안내를 하고, '줄투표'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당부해야 한다. 이른바 '정훈교육' 시간 등을 이용해 선거안내가 있어야 함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선관위와 현 정부가 이러한 정당한 요구를 들어줄까? 그럴 리 없다. 시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군인을 둔 친구·애인·동생·형·삼촌·누나·이모에게 문자를 날리고, 전화를 해야 한다. 부대 안에서 같은 서울 출신들에게도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라고 말해줘야 한다. 군대 안에서 사병들과 전의경들이 투표에 아무 생각없이 동원되지 않도록 전 시민들의 눈물 겨운 저지운동을 펼쳐야 할 때다. 그래야 이번 주민투표는 무산되고 좌절될 것이다.

 

군대 간 친구들에게 투표거부 권리 알리기 시민캠페인 필요

 

군인과 전의경은 국방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왔으니 당연히 총과 군화와 군복, 잠자리와 먹을거리는 국가가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교육의 의무를 지키러 학교에 가는 자기의 조카 혹은 동생들에게 교과서와 책걸상과 함께 급식도 당연히 지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그들이 '투표거부가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반대'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그들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고 식판을 두드리며 외치게 될 것이다.

 

"사병들에게도 투표거부 권리를 허하라!"

 

이것은 동시에 나쁜 투표 무산을 위한 시민의 요구다.


태그:#오세훈, #박용진, #부재자투표, #주민투표,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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