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방위 훈련병 시절 유일한 사진 - 오른쪽이 필자. 왼쪽이 내 친구 종록이.
▲ 방위 훈련병 시절 방위 훈련병 시절 유일한 사진 - 오른쪽이 필자. 왼쪽이 내 친구 종록이.
ⓒ 박병춘

관련사진보기


나는 탱크니, 몇 미리 박격포니, 수류탄이니, 비무장지대니, 계급 군장 마이가리니 하는 군대 용어에 익숙하지 못하다. 왜! 나는 방위병 출신이니까. 흔히들 말하는 '방위 무서워서 김일성이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농담은 해학을 넘어 방위에 대한 은밀한 인신공격이었다. 지금까지 20대 방위시절 14개월 동안 집에서 부대까지 출퇴근하면서 동네 새악시(새색시)들에게 온갖 따가운 눈총을 다 받고, 그것도 모자라 부대 안에서 현역병들에게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억울해서 잠이 안 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니 훌훌 털어버리는 심정으로 회고하고자 한다.

때는 1982년 3월, 동장군의 기세가 제법 남아 있을 때 충남 조치원에서 4주 동안 훈련병 시절을 보냈다. 기억컨대 유격 훈련이 제일 힘들었고 화생방 훈련 때는 실신했다. 이런 방위 얘기를 들으면 현역, 특전사, 해병대 출신 분들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나는 방위병 소집 대상자로서 내 생애 그토록 빡센 훈련은 처음 받아봤다.

이제 존재 가치조차 없는 칼빈과 M1 소총 사격 연습을 했고, 당시 최고였던 M16 소총 사격 연습도 했다. 안경을 썼던 나는 사격 중에 소총의 반동을 제압하지 못해서 오른쪽 안경알이 깨졌다. 그러자 교관은 "이 등신 같은 자식아! 안경 하나 간수 못하고 왜 지랄을 떠냐!"며 허벅지를 걷어찼고 나는 교관을 바라봤다가, '바라보다'가 '노려보다'로 격상돼 모진 발길질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체중 53킬로그램에 불과했던 나는 뼛속까지 밀려오는 통증에 신음하며 하소연 한마디 못하고 훈련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훈련 첫날부터 밥을 먹을 때는 급식소 앞에서 식판을 옆구리에 끼고 군가 10곡은 불러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합창 소리가 작으면 중대원들이 꼴찌로 밥을 먹어야 했으므로 악을 쓰고 불렀으니 당연히 배가 고팠다. 맛이라는 건 느껴보지도 못한 채 첫 끼부터 무조건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다.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이 군가를 부를 때는 어지간히 양심에 찔렸다. 더구나 '싸움에는 천하무적!'으로 이어지는 대목에서는 방위로 전락한 주제에 현실과 맞지 않는 군가를 부른다며 자책했다. 목이 터져라 군가를 부르며 차라리 현역으로 가지 못한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소한 체격에 컸던 군복... '무자비한 폭행'에 찢어진 귓바퀴

4주 훈련을 모두 마치던 날, 막사에서 연병장으로 이동할 때였다. 막사 입구에서 조교 몇 명과 상사 한 명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에 최고 계급인 상사가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다짜고짜 이단 옆차기로 가슴팍을 내질렀다. 군화의 뒷굽이 그대로 가슴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주먹으로 양쪽 뺨을 별이 보이게 때렸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상사의 태극권(?)에 몸을 내주었다. 귀와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내게 몇 차례 육두문자를 내뱉더니 아주 간명하게 때린 이유를 설명했다.

"왜 손모가지를 소매 속에 넣고 다니나!! 손 빼고 다니란 말야, 이 XXX야!!!"

체구가 작은 내게 군복 소매는 길었다. 소매를 걷어붙이지 않는 이상 내 손이 군복 소매 밖으로 나오기란 불가능했다. 그 상사는 그런 개인적 사정은 고려조차 하지 않은 채 부하들 앞에서 현란한 태극권을 과시하며 방위 훈련병 한 명을 까뭉개버렸던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디에도 하소연 할 데라고는 없었다. 그렇게 나의 방위 훈련병 시절은 막을 내렸다. 집에 돌아와 병원 신세를 지며 찢긴 귓바퀴를 치료했다. 원망하고 탓해봤자 오히려 손해 보는 세상이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공병대대 한 중대에 소속돼 매직 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차트병이 되었다. 현역병 사수는 자신보다 낫다며 대대 내 대부분의 차트를 내게 만들게 했다. 그나마 수송부나 식당, 이발소, 세탁소에 근무하는 동기들보다는 근무 환경이 훨씬 나았다. 대부분 방위들은 현역병들 등쌀에 밀려 소소한 잔심부름까지 도맡아하며 모진 고통을 받아야 했다.

현역병들의 놀림감,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 뭔가 결함이나 결핍이 있어서 방위병이 된 듯한 느낌들이 근무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나는 중대장과 현역 행정병들의 군화를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닦아야 했지만, 다른 동기들처럼 창고나 무기고 안에 끌려 들어가 고문에 상응하는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다. 성질 고약한 현역병들은 방위들 때리는 재미로 산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현역병들의 놀림과 구타... '방위'라는 이유로 시달려야 했던 과거

영화 <마지막 방위>의 한 장면
 영화 <마지막 방위>의 한 장면
ⓒ 아브라삭스

관련사진보기


방위병 생활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퇴근 시간에 점호를 할 때였다. 당시 한 현역병은 영화 <빠삐용>이나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악역 간수들처럼 우리 방위병들을 괴롭혔다. 현역병들은 그 사람을 '원뽕'이라고 불렀다. 이름 두 글자 중에 첫 글자가 '봉'자여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표범으로 알았고, 방위병들은 고양이보다 훨씬 무서운 표범 앞에 놓인 생쥐였다. 그 현역병은 불규칙적으로 날을 정해 퇴근 시간 10분을 남겨놓고 중대 막사 부근 넓은 마당에 우리 방위병들을 집합시켜 혹독한 통과의례를 즐겼다. 그가 개발한 통과의례는 아주 규칙적이고 살벌했다.

자기 이름 가운데 한 글자가 '봉'이어서였을까? 그는 먼저 봉 체조를 하게 했다. 예닐곱 명이 한 조가 돼 구령에 맞춰 '앉았다 일어서'를 반복하는 봉 체조는 말 그대로 진을 빼게 했다. 온몸의 근육이 뭉치는 느낌이었고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숨쉬기조차 곤란했다.

그 첫 번째 의례가 끝나면 자기 눈길 가는 대로 무작정 방위병을 지적하여 구타를 했다. 그 구타의 방식에도 나름 규칙이 있었다. 그는 방위병 앞에 1미터 가량 거리를 두고 근엄하게 서서 '차려! 열중쉬어!'를 반복했다. 그리고 갑자기 '뒤로 돌아!'를 외쳤다. 그렇게 뒤로 돌게 해놓고 다시 '뒤로 돌아!'를 명령한 후, 방위병이 뒤로 도는 순간! 주먹으로 가슴을 때렸다.

그의 원투 스트레이트에는 웬만한 덩치의 방위병도 견디기 힘든 파워가 있었다. 보기 좋게 뒤로 나자빠지는 걸 봐야만 원뽕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일장 연설이 끝나야 우리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부대 정문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가슴팍에 멍이 들어 오랜 시간 아파야 했고, 뻐근함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아파야 했다.

우리는 그가 전역하는 날 각목과 쇠사슬, 체인 등을 준비해 '보복 응징'을 하자고 얘기하기도 했으나, 타 부대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방위병을 괴롭히는 일을 철저하게 즐길 줄 아는 못 돼 먹은 현역병이었다.

현역병 앞에서 방위병은 군대 속어로 소위 '따까리'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불합리했지만 대꾸 한 마디 못했다. 현역병은 마치 우성 인자를 지닌 인간이었고, 방위병은 열성 인자를 지닌 노예였다. 방위병은 '방위'라고 하는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희한한 신분으로 범사회적 조롱거리로 전락됐다. 특히 여성들로부터 받는 눈초리는 남성적 역할에 의심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했다.

국가 시책으로 방위병 임무를 수행하며 혜택을 안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방위라는 신분 자체로 이것저것 시달려야만 했던 과거가 아프게 기억된다. 그 가운데 특히 구타로 받은 상처가 너무나 깊었다. 대략 30년 전에 발생했던 병영 구타의 아픔은 끝끝내 앙금으로 남아 나를 슬프게 한다. 지날 만큼 지났으니 잊어도 좋을 터! 이 글을 쓴 걸 계기로 깨끗이 잊어버리려 한다. 구타 없는 군대, 구타 없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병영 구타의 추억' 기사 공모 글입니다.



태그:#방위, #방위병, #방위 훈련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