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에 있는 418기념비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에 있는 418기념비
ⓒ 박의연

관련사진보기



"안녕, 안녕, 안녕하십니까! 민족 고대! 호성 미디어! 파릇파릇한 11학번! 제 이름은 ○! ○! ○! 당차게 인사드립니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필자가 올 3월, 주야장천 외쳐댔던 구호, 그렇다. 바로 '에프엠(FM, 큰 소리로 자기를 소개하는 것) 구호이다. 학기 초 대학가 술집에는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각양각색의 에프엠 구호가 울려퍼졌을 것이다.

이 에프엠의 첫머리는 지난 민주화투쟁 시절 만들어진 각 학교의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시작한다. '통일연세', '청년서강', '애국한양', '자주경희', '해방이화' 등. 그중에서도 필자의 모교인 고려대학교의 이름 앞에는 '민족'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왜 고려대학교를 '민족고대(民族高大)'라 부를까? 그 이유는 '사발식', '고연전'(해마다 가을에 펼쳐지는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간의 정기 체육경기. 홀수 해에는 '고연전', 짝수 해에는 '연고전'이라는 공식명칭을 번갈아 쓴다. 올해는 홀수 해이므로 고연전이라 표기)과 함께 이른바 '고대생의 3대 관문'이라 불리며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4·18구국대장정'에서 찾을 수 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그때' 고대생들

'나라를 구하고자 먼 길에 나선다'는 '구국대장정(救國大長程)'. 1960년 4월에는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고대생들이 그 거리로 나온 날이 바로, 역사적인 4·19혁명이 시작하기 하루 전인 4월 18일이었다.

그날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그 뒤로 해마다 4월 18일이면 수백에서 수천 명의 고대생들이 서울 안암동 고려대에서 수유리 4·19묘역까지 왕복 16km의 행진을 한다. 지금은 거의 '달리기' 수준이 돼 버렸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행진을 막는 경찰과 몸싸움을 했을 정도로 격렬한 행진이었다.

4·18구국대장정의 더 자세한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고려대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찾아보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 고려대에 있는 '4·18기념관에는 4·18구국대장정 관련자료가 있다? 없다?

정답은 "없다!"이다. 4·18기념관 담당자는 4·18기념관은 이름만 4·18기념관일 뿐 4·18구국대장정에 관한 자료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더욱이 4·18구국대장정은 '학교' 행사가 아니라 '학생' 행사이므로 총학생회에 알아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고려대 총학생회의 418대장정 안내 포스터
 고려대 총학생회의 418대장정 안내 포스터
ⓒ 고려대학교총학생회

관련사진보기


4·18구국대장정에 대한 기록은 없는 4·18기념관

그래서 총학생회에 연락을 해보았다. 매년 4·18구국대장정을 주최하는 것은 총학생회가 맞지만 4·18구국대장정에 대한 기록은 보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고려대 학보사인 <고대신문>에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나 고대신문사에도 자료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고려대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4·18구국대장정의 역사에 대해 다룬 내용은 없었다.

수소문 끝에 고려대 홍보실을 통해 '100주년기념관'에 4·18구국대장정 관련 초창기 자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관련 자료는 100주년기념관 기록자료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연도순으로 상세히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사진자료 위주로 보관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KTN(고려대TV방송국)과 KUBS(고려대교육방송국) 등 교내 방송국에서 4·18구국대장정 관련 촬영파일을 소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내행사 기록용 파일이라 일반인이 쉽게 열람할 수는 없었다.

"선배들이 뛰라니까 뛰는 거죠"

그렇다면 4·18구국대장정에 참여하는 고대생들의 머릿속에는 4·18구국대장정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지난해 4월 15, 16일 고려대 KUBS가 55명의 고대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먼저 "4·18구국대장정에 참여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참여 28명, 불참 27명으로 비슷한 수의 답변이 나왔다. 참여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과/반, 동아리 내의 친목도모를 위해" 또는 "동기나 선배의 강요 때문에" 참여한다고 답했으며, 단 한 명만이 "4·18구국대장정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반면 4·18구국대장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학생들 가운데 40퍼센트는 그 까닭을 "참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고, 다른 40퍼센트는 "중간고사 시험 준비를 위해"라고 답했다. 심지어 고려대 포털 사이트인 '고파스' 게시판에는 "4·18구국대장정으로 인해 시험공부에 방해가 된다"라는 의견이 올라오기도 했다.

올해 4·18구국대장정에 참가한 조아무개씨(미디어학부, 1학년)는 "요즘 4·18구국대장정은 죽은 행사이다. 참여하는 학생들이 진정한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오늘날의 4·18구국대장정에 대한 고대생들의 인식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418대장정에서 학생들이 내건 펼침막
 418대장정에서 학생들이 내건 펼침막
ⓒ 박의연

관련사진보기


51년 전 그날의 정신, '반값등록금'으로 이어지길

"그저 '잘난' 고대인의 통과의례 정도로 4·18에 참가하게 된다면 그것은 폐쇄적인 엘리트 문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거리로 뛰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선배들의 의로운 정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줄임) 값비싼 등록금, 무한경쟁, 청년실업 등 우리의 앞에 놓여진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정의에 대한 선배들의 의지를 기리며 시대의 고민을 각자의 가슴 속에 품고 거리로 향하는 고대생이 됐으면 합니다."

올해 4월 18일, 51주년 4·18구국대장정을 맞아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이 쓴 글의 일부이다. 분명 고대생들이 기억해야 할 4·18구국대장정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민족' 고대라는 이름의 걸맞은 현 시대에 대한 고민을 품고 달렸어야 했다.

4·18구국대장정에 대해 조사하면서 필자의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었다. 바로 "깨어 있는 지성인,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과거 어느 해 4·18구국대장정의 기조였다. 이 기조를 보면서 지난 6월 광화문에서 참여한 반값등록금 집회가 오버랩됐다.

대학생들이 "깨어 있는 지성인,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성인으로서 가져야 할 시대정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는 이미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 버린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고대생들의 가슴속에도 '민족고대'라는 이름을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이 남아 있음을 믿고 싶다.

부정의에 항거하며 거리로 나선 '그 시대'의 대학생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보다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해 촛불을 드는 '이 시대'의 대학생들을 생각한다. 고려대의 자랑스러운 전통인 4·18구국대장정과 더불어 올 상반기 '뜨거운 감자'였던 반값등록금 집회 역시 다시 한번 불타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박의연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려대 , #418, #구국대장정, #419혁명, #반값등록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