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르웨이 경찰이 공식 발표한 사망자 수는 수도 오슬로 인근 우토야섬에서 발생한 청소년 캠프 총기테러에서 85명, 이 사건 발생 두 시간 전쯤 발생한 오슬로의 정부청사 폭탄테러에서 7명 등 모두 92명이다.
▲ 연기가 피어오르는 노르웨이 정부청사 노르웨이 경찰이 공식 발표한 사망자 수는 수도 오슬로 인근 우토야섬에서 발생한 청소년 캠프 총기테러에서 85명, 이 사건 발생 두 시간 전쯤 발생한 오슬로의 정부청사 폭탄테러에서 7명 등 모두 92명이다.
ⓒ EPA=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 22일(현지시각) 평화의 나라로 알려진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의 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로 93명이 살해 당했다. 안타깝게도 사망자 수는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테러 용의자 브레이비크는 극우 민족주의자로 노르웨이 토박이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노르웨이 집권당인 노동당 연립정권의 이민자 포용정책에 반대를 표하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으며, "잔혹했지만 필요했다"고 밝혀 사람들을 더욱 경악케 했다. 이번 테러 사건과 관련해 노르웨이를 포함한 북유럽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 언론보도가 사실 관계 확인보다는 선정적인 문구와 자극적인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어서 그 본질을 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 테러, 이민정책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다

우선 '오보 문제'인데, MBC, <연합뉴스>, <조선일보>, <한겨레> 등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국내 주요 언론사들이 테러 배후로 '알카에다와 연관된 이슬람 무장단체가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기여한 국가들에 대해 보복하려는 목적에서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오보는 노르웨이에 특파원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언론의 서구 언론 받아쓰기 관행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테러=이슬람, 알카에다'라고 공식화하는 편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테러 배후에 대한 오보 소동이 지나고 나자, 이에 대한 사과는 없이 테러범의 최고 형량이 21년형에 그칠 것이며, 최고 형량인 21년형을 받더라도 숨진 피해자 1명당 불과 82일의 징역을 사는 셈이라는 등의 형량 타령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촌 개방적 이민정책 비상등'과 같은 문구로 이번 테러 사건을 마치 이민정책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테러 용의자 브레이비크는 노르웨이 집권당의 이민자 포용정책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미치광이 테러범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적고 의미를 부여하는 언론의 보도행태에 불만이 많지만, 주요 언론사들이 보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로이터통신은 "극우주의에 반(反)무슬림, 반(反)이민 등 편견과 어려운 경제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고, 뉴욕타임스는 "이번 테러는 무슬림과 이민자, 세계화, 유럽연합(EU)의 영향력 확대, 다문화주의 확산 등에 대한 반발이 정치세력화하면서 일부 폭력행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우리 언론 역시 서구 언론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보도는 결국 테러범의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긴 하지만, 그의 주장이 어떤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판단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언론이 테러 사건 보도에서 테러범의 주장을 받아 적으며 분석하는 보도 행태는 본의 아니게 언론이 나서서 테러범을 옹호, 변론, 대변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극우민족주의자인 테러범 입장에서는 자기 입장을 사회에 전달하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언론의 도움으로 이미 충분히 달성한 것이다. 언론은 테러범의 의도대로 놀아난 꼴이다.

이번 테러 사건 이후, 언론 보도는 무슬림을 비롯한 이민자 등 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담론 확산에 기여했고, 사건 해결이나 예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이번 테러 사건 오보로 이미지에 피해를 본 노르웨이 이슬람 사회는 벌써부터 유럽 내에서 반(反) 이슬람 기류가 확산되지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테러범 주장 받아쓰기 하는 언론들, 뻔뻔하다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베링 브레이비크가 25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의 법원을 떠나고 있다. 브레이비크는 첫번재 심리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베링 브레이비크가 25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의 법원을 떠나고 있다. 브레이비크는 첫번재 심리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 AP=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요즘 언론에서 쏟아내는 노르웨이 이민자 통계가 들쭉날쭉한데,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의 박노자 교수에 의하면, 노르웨이는 외국 태생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2% 정도 되며, 외국 태생 주민의 자녀까지 합하면 약 15%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중 노르웨이 수도인 오슬로는 비유럽 출신 비율이 17%나 되며, 이민과 이민자 사회와 관련된 문제들은 국내 정치 의제의 핵심적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인구 비율과 정치 의제에서 보면 노르웨이는 이미 이민사회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전통적으로 철저한 이민통제를 취해 왔다. 노르웨이는 70년대 초반 토박이들이 피하는 저숙련 노동자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유럽 바깥에서 노동자들의 유입을 허락했다. 이후 경제 붐이 끝나고 저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자, 1975년에 '자유로운 노동 이민의 중지'를 선언한다.

지금은 취직, 가족 재결합, 난민 등의 이민이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인구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인구 정책에 기인한다. 즉 이민을 철저한 목적의식을 갖고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민자들에게 토박이의 소외와 배제를 가져올 만한 혜택을 주거나 유인책을 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테러범의 주장이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나는데, 노르웨이의 경우 이민자들의 취업률은 전체 인구의 취업률 66%보다 10% 이상 낮은 55% 밖에 되지 않는다. 높은 실업률은 이민자들로 하여금 국가복지체제에 의존케 만들거나 노동시장에서의 하위 배치라도 받아들이게끔 만들고 있다. 때문에 이민자들은 토박이 노동자들이 피하는 저임금 업종 및 직종에 진출할 수밖에 없다. 토박이들과의 경쟁 관계 혹은 노동시장에서의 대체를 가져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테러 사건의 배경에는 매우 광범위한 문제들이 있고, 단순화 시켜 말하기 쉽지 않다. 단순화하다 보면,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 총격 사건의 조승희나 프랑스 무슬림 이민자 폭동 등은 이민자의 사회통합 부적응 문제로, 노르웨이 총격 사건 같은 경우는 극우 민족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의 광기로 치부해 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광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번 노르웨이 총격 사건의 배경에는 잃어버린 국가 정체성을 되찾자며 민족 감정을 자극하고 있는 일부 포퓰리스트 극우파 정당들이 있다. 이러한 정당들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이민자 등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담론을 통해 피해의식에 젖은 개인들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유럽의 우파 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그동안 금기시됐던 특정 종족 집단에 대한 증오 표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고, 일부 유력 정치인들마저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금년 초 줄줄이 다문화주의 실패를 선언했던 독일, 영국, 프랑스만 살펴봐도 그렇다. 금년 들어 유럽 각국 유명 정치인들의 보수 성향 발언이 줄을 잇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다분히 표를 의식한 정치적 선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런 발언들은 다들 유럽 경제위기에 따른 것으로 노동 임금 감소와 고용 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자국민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면서 우파 정당들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유력정치인들마저 표를 의식한 정치적 발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다문화주의 어디로 가고 있나

먼저 한국은 현재까지 이민정책을 공식적으로 취한 바 없고, 출입국정책이 있을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주민 130만 시대에 접어들며, 전체 인구의 2.6%의 이주민이 체류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민정책을 총괄할 이민청 신설에 대한 논의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르웨이 테러 사건 관련해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며 유감스럽다고 모두에 언급했는데, 언론의 테러범 주장 받아쓰기 보도 행태와 궤를 같이 하는 주장들을 손쉽게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죽 했으면 총질을 했겠나. 외국인 때문에 오죽 살기 힘들었으면 그 짓을 했겠나. 몹쓸 짓이긴 한데, 심정적으로 동정이 간다.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테러범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한 이주민들은 테러의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가 되고 만다. 테러범은 동정을 받고, 이주민들은 돌팔매를 당하는 이 아이러니한 현실이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인테넷상에서 이민정책 혹은 다문화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안티 이주민단체들이 내리는 공통적인 결론은 이민정책과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대다. 이들은 외국인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체류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범죄를 경험하거나 외국인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민족, 인종, 종교, 문화 차이로 인한 사회 갈등 요인이 증가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며, 불특정 다수의 외국인에 대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출하고, 특정 국가 외국인의 입국 자체를 반대하거나,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원천적으로 제한하자고 주장하는 것을 온당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주민들에게 지나치게 우리사회로의 동화를 강요하며, 이주민을 하류 계급으로 고착화시키려 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소수자 지원 예산은 아랫돌 빼어 웃돌 괴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의 예산 편성에서 인기 있는 다문화가족 지원 사업 전체 예산은 2008년 285억 원에서 2011년에는 941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한 반면,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2012년도 예산안에서는 기초생활 수급자를 위한 주거급여비와 저소득층 생계비 융자 사업비가 삭감되고, 경로당 난방비 지원이 삭제됐다고 한다.

이런 통계적 자료들을 보면서 소외와 배제를 당한다고 여기는 시민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실제적으로도 그런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워낙에 없던 예산이 필요에 따라 책정된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집단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받아야 할 지원을 받게 되는 집단이 원성을 받게 되며 사회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세심한 예산 배분 외에도 사회적 관심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인 노력 역시 필요하다 하겠다.


태그:#노르웨이 총격사건, #이민정책, #다문화주의, #브레이빅, #이주노동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