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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루퍼트 머독.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는 루퍼트 머독.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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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5만3000명의 저널리스트와 임직원을 휘하에 거느리는 대표적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19일(현지 시각) 오후 2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자신이 소유한 타블로이드 주간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연루된 도청 사건과 관련해 영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여 강도 높은 추궁을 당했다.

전 세계 주요 뉴스에 생중계된 이날 청문회에서 머독은 이번 휴대전화 해킹 스캔들에 대해 알지 못했고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뉴스 코퍼레이션>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루퍼트 머독의 아들 제임스 머독 역시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강조하며, 도청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사태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번 도청 스캔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은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 언론, 경찰이 모두 연루되어 있는 충격적 사실들이 계속 폭로되고 있어 향후 더 큰 정치적 파장도 예상되고 있다.    

민심 이반 속에 계속되는 책임자들의 퇴진, 구속 그리고 정치권·경찰 연루설

이번 해킹 스캔들이 터진 후 머독의 영국 내 미디어 그룹인 <뉴스 인터내셔널(News International)> 전·현직 발행인, 편집장들과 런던경찰청 최고 책임자들의 사임과 체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자진 사임, 출두, 구속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특히 내년에 열리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테러 동향 파악 등 실로 막중한 현안이 몰려 있는 시기에 자진 사임한 런던경찰청의 최고 간부 2명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모두 이런 요직에서 그만두게 만든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런던경찰청 최고 간부들과 언론사 전·현직 편집장들은 퇴임 기자회견에서 하나같이 자신들은 "어떤 잘못된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번 일로 국민들의 신뢰(trust)를 잃었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맡은 임무를 떳떳이 수행하기 힘들어 사임한다"고 밝혔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란 말은 오래된 전통인 경찰과 언론의 밀월 그리고 특종 보도를 위해 어느 정도의 과도한 취재 행위는 부득이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둔 이야기로 여겨진다. 머독 부자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168년의 역사를 지닌 <뉴스 오브 더 월드>를 전격 폐간하는 결정을 내린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독자들의 신뢰 상실"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번 도청 스캔들이 밝혀진 계기는 지난 2002년 억울하게 유괴되어 살해된 한 여자아이의 휴대전화 메시지였다. 아이가 실종되었을 당시 자식의 휴대전화 음성메시지가 어디선가 계속 확인되고 삭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그 부모가 품은 생존에 대한 희망... 그리고 좌절.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분노였다.

이것이 며칠 전 전격 폐간된 대표적인 선정적 일간지 <더 선(The Sun)>의 일요판인 <뉴스 오브 더 월드> 기자에 의한 것이었음이 <가디언> 보도로 알려진 순간, 영국 국민들의 분노와 배신감은 머독 부자의 미디어 제국, 그리고 그와 연루된 경찰, 정치권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졌다. 최근 자진 사임한 자들이 모두 스스로 밝혔듯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에 대한 존중과 국민의 신뢰였음에도 그것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날 청문회는 <뉴스 인터내셔널> 측에서 그동안 휴대전화 도청 사건 재조사를 무마해달라는 뜻으로 런던경찰청에 거액의 돈을 제공해왔다는 사실, <뉴스 인터내셔널> 출신 기자들을 런던경찰청 공보관으로 채용하게 해온 점(공보관의 20% 정도가 <뉴스 인터내셔널> 출신) 등 경찰과 지배적 언론 간의 야합이 지나쳤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채택하여 캐머런 총리에게 보고했다.

유착은 특히 캐머런 총리의 대변인이었던 앤디 쿨슨이 <뉴스 오브 더 월드> 편집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5~2006년에 집중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주변의 많은 우려를 배제한 채 앤디 쿨슨을 자신의 공보 담당자로 임명하고, 현 정부에서도 실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캐머런 총리의 입지도 상당히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도청 스캔들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도청 스캔들로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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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 통해 문제 해결 계기 만든 영국... 한국은?

큰 틀에서 살피면 일면 비슷해 보이는 도청 스캔들이 한국에서도, 국민들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 의혹이 집중된 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벌어진 사건과 현상적으로 다른 면 또한 많다.

한국에서는 의혹이 불거진 후 벌써 몇 주의 시간이 흘렀지만, 영국과 달리 실제 도청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유력 언론사가 개입한 것인지, 정치권이 그 과정에 관련된 것인지 등 가장 핵심적인 부분조차 정확하고 상세히 밝혀진 내용 자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영국과 한국의 사건 전개 과정도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도청 사건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과정을 살펴보면 영국 해킹 스캔들의 내부고발자인 전 <뉴스 오브 더 월드> 기자 숀 호어는 도청 문제에 대해 괴로워하고, 습관적인 비윤리적 취재 행위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전해진다(숀 호어는 루퍼트 머독이 의회에 소환되기 전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언론사 내부의 자기 성찰적 고백을 통해 한 걸음씩 문제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를 만든 영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도청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유력 언론사가 누구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른바 해명 문구를 내놓고 '언론 자유 탄압'이라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런 한국의 현실은 영국과 적잖은 거리감이 있다.

실종된 자식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확인·삭제된(이와 관련, <가디언>은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다울러의 가족과 친구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확인·녹음한 것에 더해 저장 공간을 확보하고자 음성사서함의 메시지를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데서 느낀 '살아 있다'는 희망이 누군가의 도청에 의한 절망으로 바뀌어 버린 영국에서 도청 사건의 본질은 인간에 대한 윤리, 그리고 언론과 국민 사이의 믿음, 신뢰에 대한 성찰이다. 그 강력한 요구는 웬만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보다 더 파워 있는 루퍼트 머독조차 생애 최초로 의회에 자진 출두하여 생애 최악의 '굴욕'을 당하는 걸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KBS 수신료 인상안' 추진과 관련해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KBS 도청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KBS 수신료 인상안' 추진과 관련해 민주당 대표실 도청 의혹 사건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과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KBS 도청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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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 의혹은 매우 강력한 언론, 그것도 스스로 '국민이 주인'이라고 말하는 공영방송과 관련되어 있고, 더불어 정치권과도 연계되어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에게 야당의 핵심 정보를 비윤리적 방식으로 수집해서 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에 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핵심이다.

영국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언론에 대한 신뢰의 문제는 무엇보다 사안을 대하는 진정성, 책임감과 관련이 많다. 그런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핵심 인물들마저 의혹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를 꺼린다면 이는 더욱 큰 문제인 신뢰 상실의 주원인이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논란의 당사자들이 마치 도청 의혹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이면에, 그들에게는 아주 익숙해져 버린 듯한 국민에 대한 '무시'와 '위에서 내려다보기' 심리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 2003년 잘못된 보도와 처신을 통해 국민의 엄청난 불신을 초래하고 급기야 BBC의 세계적 명성까지 추락시킨 유명한 허튼 보고서(Hutton Inquiry) 관련 스캔들을 겪었다(2003년 BBC 기자가 이라크전과 관련해 "고위층이 정보 문건을 자극적으로 각색했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자 이 보도의 정보원이던 무기 사찰 전문가가 자살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한 '허튼 보고서'에 "BBC 기자가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정부 문서를 사실무근이라고 보도했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BBC는 큰 위기를 겪었다). 그 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담당기자, 편집장, 사장, 의장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은 그때 추락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자신들이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BBC의 사례를 보며, 혹시라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정확한 판단해야 한다. 또한 이 같은 우려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제기되는 의혹에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최근 전개되고 있는 영국 도청 스캔들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시사점이 아닌가 싶다.

영국 도청 스캔들 일지
▲ 2006. 8. 6 <뉴스 오브 더 월드(News of the world)> 왕실 부문 에디터 클리브 굿맨, 왕실 경호 요원 전화 도청 건으로 구속. 이후 4개월 형 선고.
▲ 2007. 1. 26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뉴스 오브 더 월드> 편집장 앤디 쿨슨 사임.
▲ 2007. 5. 31 야당 대표였던 데이비드 캐머런(현 영국 총리), 앤디 쿨슨을 자신의 언론 홍보 책임자로 임명
▲ 2009. 7. 21 앤디 쿨슨, 의회 문화미디어스포츠위원회에 출석하여 편집장 재임 당시 도청 등 적절치 못한 문제가 있었음을 실토.
▲ 2011. 1. 21 앤디 쿨슨, 캐머런 총리 행정부 대변인에서 사임.
▲ 2011. 1. 26 런던경찰청, <뉴스 오브 더 월드> 도청 사건 재조사 착수. <뉴스 오브 더 월드> 뉴스 에디터 사임.
▲ 2011. 7. 4 <가디언>, 2002년 유괴범에 의해 살해된 소녀 밀리 다울러가 실종되었을 때 <뉴스 오브 더 월드>가 다울러의 핸드폰을 도청했다는 사실 폭로.
▲ 2011. 7. 5 <뉴스 오브 더 월드> 편집장 레베카 브룩스와 캐머런 총리, "충격적인 소식이다"라는 입장 표명.
▲ 2011. 7. 6 루퍼트 머독, "슬프고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언급. 도청 피해자가 추가로 있을 가능성 제기됨.
▲ 2011. 7. 7 제임스 머독, <뉴스 오브 더 월드> 폐간 발표.
▲ 2011. 7. 10 루퍼트 머독, 사태 해결을 위해 런던 도착.
▲ 2011. 7. 13 <뉴스 코퍼레이션>, 영국 위성방송 BskyB 전체 지분 인수 계획 포기.
▲ 2011. 7. 14 런던경찰청장 폴 스티븐슨이 홍보 자문관으로 임명했던 전 <뉴스 오브 더 월드> 부편집장 닐 월리스 체포됨.
▲ 2011. 7. 15 머독의 최측근인 레베카 브룩스, <뉴스 오브 더 월드> 편집장 사임. <뉴스 오브 더 월드> 편집장 출신으로 뉴욕 다우존스 대표이자 <월스트리트저널> 발행인인 레스 힌튼 사임.
▲ 2011. 7. 17 런던경찰청장 폴 스티븐슨 사임.
▲ 2011. 7. 18 런던경찰청 치안감 존 예이츠 사임. 이번 스캔들의 내부고발자인 전 <뉴스 오브 더 월드> 기자 숀 호어, 숨진 채 발견됨(자살 추정).
▲ 2011. 7. 19 루퍼트 머독, 제임스 머독, 레베카 브룩스 등 핵심 인사들 전원 의회 청문회 소환. 추가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런던경찰청 로비설이 제기됨. 루퍼트 머독, "내 인생의 가장 부끄러운 날이다."
▲ 2011. 7. 20 캐머런 총리, 아프리카 방문 일정 축소 후 귀국해 의회 출석. 본인 관련 사항에 대해 견해 표명. 향후 방송사, 소셜미디어까지 조사 대상을 확대한 해킹 관련 특별조사위원회 구성키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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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연구자. 지역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함. 10여년 전 유학시절 <오마이뉴스>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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