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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병대에서 군내 집단 따돌림인 '기수열외' 등으로 총기사건과 자살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휴가 나온 해병대 병사들이 공중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최근 해병대에서 군내 집단 따돌림인 '기수열외' 등으로 총기사건과 자살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휴가 나온 해병대 병사들이 공중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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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그렇게 힘들게 낳으면 남자들은 (군대에서) 죽이는 거 배워 오지 않는가."
"처음부터 그거 안 배웠으면 세상은 평화롭다."

2010년 EBS 인터넷 수능방송 강사가 군대 비하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남자들은 폭력적이고 좋지 않다"라며 "도대체가 뭘 지키겠다는 건지, 죽이는 거 배워오면서"라고 폄하했으니 오죽했겠는가. 누가 뭐라 해도 군대를 비하하는 발언임에 틀림없지만 나는 그 강사의 발언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 군대는 아직도 인생에 있어 선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가수나 운동선수라면 가짜 수술 몇 번 받으면 쉽고 해결하고, 병역의무를 질질 끌다가 결국 면제를 받아도 집권당 대표까지 될 수 있으니….

하지만 '어둠의 자식들'에게 군대는 여전히 피할 수 없는 숙명일 뿐이다. 군대의 무게가 지워진 순간부터 그 인생은 무거운 중량을 부여받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존중과 배려를 기대하기 힘든 곳이 바로 군대라는 사실이다. 이런 걸 듣고 보고 배운 강사의 눈에 비친 군대가 정상이었겠는가?

구타, 알고도 모른척 했던 군대의 자화상

역시 내게도 3년의 군대생활은 추억하고 싶은 기간이 아닌 '인생에서 지워진 기간'으로 남아있다. 내 청춘의 몇 년을 앗아갔지만 배운 거라고는 '맞고 때리는 일' 밖에 없었다. 비인간적인 상급병의 자의적인 구타, 아마도 기성세대 중 군대 구타의 공포를 겪지 않은 이가 과연 있을까? 어쩌면 알고도 모른 척, 당연시했던 군대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폭력에 대한 주된 기억은 군대였음을 확신하고도 남는다. 무시무시한 내무반의 기억을 떠 올리는 것조차 몸서리쳐진다. 구타를 통해서 군기가 바로 세워지고, 병영 속의 전우애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내가 입대한 것은 1988년 겨울 무렵이었다. 논산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마치고 의정부 306보충대에 도착한 나는 최전방 A사단의 보급병으로 배치됐다. 하지만 나름대로 근무여건이 좋다는 사단 직할대인 보급수송근무대도 결코 구타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생활한 3년간의 군 생활 중 정말 무서운 것은 전쟁도 북한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무자비한 구타였다.

구타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인상 쓴다고 맞고, 밥 늦게 먹는다고 맞고, 군기가 빠졌다고 맞고, 대답 크게 했다고 맞고, 선임 때문에 맞고, 쫄다구 때문에 맞고…. 매일 맞고, 또 맞고, 온통 터진 기억뿐이었다. 정말 내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구타의 시작은 '얼차려'였다. 군대에서 일반화된 이 얼차려는 구타를 알리는 신호탄 역할이었고, 때리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한 구타로 향하는 일종의 과정에 불과했다. 얼차려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응징으로 가하는 구타의 방법은 비인간적이었다. 특히 구타를 예고하는 얼차려의 방식은 더욱 악랄해져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수치심과 자존심마저 밟아 버렸다.

치약뚜껑에 머리박기 해봤나?... '얼차려'는 구타의 신호탄

1996년 방영된 KBS <신고합니다> 중 한 장면. 얼차려의 기본은 일명 원산폭격이다. 머리를 바닥에 박는 이 얼차려는 구타를 알리는 신호탄 역할이었다.
 1996년 방영된 KBS <신고합니다> 중 한 장면. 얼차려의 기본은 일명 원산폭격이다. 머리를 바닥에 박는 이 얼차려는 구타를 알리는 신호탄 역할이었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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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전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기합은 머리박기(일명 원산폭격)였는데, 역시 이것도 어느 정도 짬밥이면 머리를 바닥에 박고 잠이 들 만큼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은 치약 뚜껑을 알기 전까지였다.

내가 군대 생활 중 가장 괴롭고 견디기 힘들었던 게 치약뚜껑에 머리를 박는 일이었다. 볼펜, 반합뚜껑, 야삽자루, 구둣솔 등 여러 가지 소품(?)에 머리를 박아봤지만 치약뚜껑만 한 게 없었다. 두 손을 뒤로한 채 (두 다리는 관물대 상단에 올려 체중을 머리에 실어) 군용치약 뚜껑에 머리를 박는 건데, 잘못하여 뚜껑이 삐끗하면 이마에 살이 움푹 패는 불상사까지 감수해야 한다. 잘 버틴다 해도 보름 정도는 이마에 치약뚜껑 문신이 남는 아주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얼차려다.

아, 이걸 처음 생각해낸 인간은 과연 어떤 놈일까? 치약뚜껑의 고통, 아마도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고통이 아니었을까?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면 야삽자루로 온몸을 닥치는 대로 내리치는 무자비한 구타가 기다리고 있지만, 오죽하면 몇 대 터지는 것이 더 편했다. 잠깐 동안이라도 치약뚜껑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니까….

1989년 2월, 노오란 새우깡(이등병) 때였다. 함께 새벽 초소근무를 나온 박 일병은 "야, 이 개XX야!"라는 입에 담지 못할 육두문자와 동시에 다짜고짜 머리박기를 시켰다.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바닥에 박혀 있는 내 얼굴을 전투화로 인정사정없이 걷어찼다.

이제 일병 2호봉 정도인 그는 사회에서 주산학원 강사 출신이었지만, 나에게 무자비하게 가했던 구타는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이라고 하기에 딱 어울릴 만했다. 몸무게가 90kg에 육박하는 덩치답게 구타의 위력은 정말 무자비했다.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행동들이었다. 폐쇄적 공간에서 내 인격은 이미 내팽개쳐졌고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모욕은 정말 수치스러웠다.

결국 내 얼굴은 피가 낭자하고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피가 너무 많이 흘려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자 이젠 소총 개머리판으로 하체를 내리 찍었다. 꼼짝도 못하는 내게 무릎 위 허벅지 부위 한 곳만을 개머리판으로 집중적으로 때렸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르리라. 2시간 동안 한 곳만 맞는 그 고통을….

구타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네 동기들이 요즘 군기가 빠진 것 같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전부였다. 그가 전투화로 걷어 찬 내 얼굴은 온통 피멍이 선명했고, 음식조차 씹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개머리판으로 맞은 허벅지는 피가 배겨 전투복이 살점에 붙어 버리고 말았다. 거구의 몸으로 체중을 실은 두 발로 내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강타했던 그 인간 박 일병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감히 고백한다. 나에게 있어서 3년이란 청춘을 바친 군대는 이미 인생에서 지워진 시간이었다. 군대라는 이름 속에 감춰진 구타, 나는 군대생활을 떠올릴 때면 인격말살의 극치를 보여준 구타의 기억이 떠올라 몸서리가 쳐진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사실 하나, 당신은 그저 병영구타의 선한 피해자에 불과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구타 피해자가 어느새 구타자로... '구타악습 대물림' 쓰나미

어느 순간부터 당신은 구타 피해자를 벗어나 누군가에게 가해자이지는 않았었나? 계급이 올라가고 후임병에 대한 장악권을 손에 쥐니 어느새 구타의 장본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내재된 폭력성을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구타의 악습은 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대물림 쓰나미에 휩쓸려 머리와 손과 몸이 따로 움직여 버렸다. 결국 '구타유발자' 시기를 지나니 '구타자'가 되고 만 것이다

혹시 종교에 의지하고, 부대 내 인성교육을 강화하여 구타근절을 향한 개인의 의지만 바로 서 있다고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착한 고참(?)은 '능력 없는 고참'이 되고 마는 구조에서, "나는 절대로 선임이 되면 구타 안 할 거다"라고 다짐했던 내무반원 가운데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었다.

지금 당신의 아들, 남편이 구타행위의 가해자였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반성 없이 평범한 서민인양 선량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제대한 지 20년이 지났다. 하지만 구타의 추억은 전설이 되지 못하고 아직도 현실로 남아있다. 해병대원 몇 명 영창 징계한다고 일단락되었다고 생각 말라. 선량한 척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역자들과 그들로부터 대물림 받은 구타의 악습은 무슨 수로 징계한단 말인가?

지휘관들이야말로 가장 큰 '구타유발자'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군대 구타의 근본적인 원인에 지휘관들의 묵인이 상당 부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직안정과 군기 유지라는 미명하에 구타와 가혹행위를 외면하고 침묵하지는 않았나?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들이 해야 할 책임을 사병들에게 맡기고 떠넘기니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병사 신분인 선임병이 후임병에게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더 이상 '군기유지'라는 핑계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젠 지휘관들이 직접 챙기라. 가족처럼 생각한다면서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내무생활과 인성교육에 직접 참여하고, 구시대적 연좌제인 연대책임만 축소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원인을 찾고 그 연결 사슬을 과감하게 끊어버리는 지휘관의 결단력과 용기가 절실하다.

언제까지 은폐하고 축소하는 데만 급급할 것인가? 입대를 앞둔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눈물을 안기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병영 구타의 추억' 응모 기사입니다.



태그:#구타,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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