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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과학기술부는 2015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종이책 교과서를 없애고 태블릿 피시 등 디지털 기기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교육 환경의 전면적인 전환을 가져올 중대한 발표임에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여기서는 <한겨레>에 실린 이옥화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의 '창의력 기르기 위한 스마트교육'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는 창의적 학습 사회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정보기술 발전에 따라 정보 활용 및 처리 역량이 향상되어 개인과 사회의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다. 또 인터넷에서의 활동도 달라졌다. 지식의 단순 소비자를 넘어 지식의 공개·공유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프로슈머(참여형 소비자)로 살게 되어 창의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 이옥화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의 <창의력 기르기 위한 스마트교육> 중

'스마트 교육'의 의의를 제시하기 위해 창의성의 중요성을 언급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과연 학교에 무선 인터넷망을 설치하여 디지털 기기로 교과서와 학습 자료를 활용하면 학생들의 창의성이 향상될까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의 사용이 많은 모순을 수반한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넷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긴 하지만 결국은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뺏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멀티미디어에 따른 집중력의 분산이 우리의 인지적 능력에 더 많은 노동을 가해 학습성과를 낮추고 이해력도 약화시킨다고 합니다. 인터넷이 주는 혜택에만 집중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교육이 우리를 더욱 지적으로 만든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죠.

미국 국립신경질환뇌졸증연구소 소장인 조던 그래프먼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도록 온라인 상에서 끊임없이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 교육'이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창의성, 독창성과 같은 고차적 사고력의 신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스마트교육이란 21세기 학습자 역량 강화를 위한 지능형 맞춤학습 체제로, 교육의 환경·내용·방법·평가 등 교육체제를 혁신하는 동력이다. 스마트교육 정책의 내용은 기술 도입보다 정책 변화가 중심이 된다. 스마트교육이란 표준화된 지식이 아니라 개별화된 학습을 지원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는 장소이다. 개인의 학습을 유연하게 맞춤형으로 구현하고, 집단 지성과 소셜 러닝 등의 방법을 활성화하여 같이 배우는 협력학습을 중시한다. 따라서 체험 중심, 현실에 기반한 문제해결 중심,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내용을 학습할 수 있는 스마트환경이 교수학습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옥화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의 <창의력 기르기 위한 스마트교육> 중.

좋은 말씀이 많이 담긴 스마트 교육의 취지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맞춤 학습은 7차 교육과정 이래로 추구하고 있는 수준별 교육과정과 수준별 수업의 다른 말로 보입니다. 이외에도 부진아 지도와 영재 교육, 학생의 요구를 바탕으로 한 방과 후 학교, EBS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교육은 '맞춤학습 체제'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협력학습이나 체험 중심, 문제해결 등의 교수학습 방법도 '개별적인 학습 활동과 더불어 소집단 공동 학습활동을 중시하여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많이 가지게 한다', '각 교과 활동에서는 학습의 개별화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발표·토의 활동과 실험, 관찰, 조사, 실측, 수집, 노작, 견학 등의 직접 체험 활동이 충분히 이루어지도록 유의한다'는 7차 교육과정과 표현만 다를 뿐 교육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수년 전에 만들어진 종이 교과서에는 최신 자료도 부족하고 동영상도 없다. 멋진 사진을 확대해 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을 할 수도 없다. 이미 스마트기술로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이러한 교실 수업은 답답하고 획일적이다. 교사들에게도 그 답답함은 마찬가지이다. 멋진 수업을 하고 싶어도, 매번 그 많은 자료를 무슨 수로 찾아서 수업에 임할 수 있겠는가?" - 이옥화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의 <창의력 기르기 위한 스마트교육> 중. 

얼마나 답답했으면 동영상과 최신 자료를 직접 교실에 공급할 생각을 다 했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교육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의 위상에 대해 큰 오해가 있는 듯 하여 부연 설명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7차 교육과정 이래로 우리 교육은 '교과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교육과정 중심'의 학교교육 체제로 전환해 왔습니다. 이는 21세기 정보화, 세계화 사회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획일화된 교육에서 탈피해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과서를 금과 옥조형으로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교육 과정 구현을 위한 다양한 자료 중의 하나라는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7차 교육과정에서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과용 도서 외에 교육방송, 시청각 기자재, 각종 학습 자료 등을 활용한다', '교과서 중심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교육 정보망, 멀티미디어 등 컴퓨터를 활용한 교육이 활성화되도록 한다'고 제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듯 21세기의 교수·학습 자료는 서책에 머무르지 않고 PC, TV, 실물 화상기 등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종이 교과서'의 답답함이 '교실 수업'의 획일성으로 귀결되는 양 묘사하는 것은 우리 교육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발문과 답변, 다양한 활동 및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학교 수업인데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할 수 없다니 권위적인 일제 시대 수업을 염두에 둔 걸까요?

"스마트교육의 성공은 우리의 또 다른 미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핀란드 교육이 피사에서 거둔 성공으로 관광산업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듯이 우리는 스마트교육의 성공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정보통신 강국 이미지와 국제비교평가에서의 우수한 성적(디지털 능력)은 스마트교육을 한국의 브랜드 교육으로 만들 수 있는 호재이다." - 이옥화 국가정보화전략위원의 <창의력 기르기 위한 스마트교육> 중.

스마트 교육이 성공했을 때의 기대 효과로 제시한 부분입니다. 스마트 교육의 성공이 새로운 시장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그 이익은 초·중·고교를 거치며 디지털 기기를 생활화한 학생들을 손쉽게 미래의 고객으로 확보해 '먹을거리'를 갖추게 된 몇몇 대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장점(?)에 비해 예상되는 부작용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선 학생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휴대폰이 뇌종양 발병을 높인다며 휴대전화를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사용이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은 전자파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학교에 무선 인터넷 망이 설치되고 공부를 하기 위해 온종일 스마트 폰을 사용해야 하는 학생은 얼마나 많은 전자파에 노출되는 걸까요? 무선으로 대용량 파일 전송이 가능한 스마트폰이 일반 휴대폰보다 발암 가능성이 더 높지는 않을지, 유해 전자파의 흡수율이 높을 저학년 아동의 건강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등 태블릿 PC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벌써부터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목이나 손목, 어깨 등에 통증을 호소하여 병원을 찾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VDT 증후군과 유사하지만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장기간 잘못된 자세로 태블릿 PC를 사용할 경우 '태블릿 PC 증후군'을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를 떼어놓을 수 없는 학생들의 건강에 무리는 없을까요? 또한 눈 건조증이나 안경을 착용하는 학생이 늘게 되는 등 시력 악화 증상이 늘어날 것도 명약관화해 보입니다.

학습 관리의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컴퓨터실에서 수업해도 뒤의 아이들이 PC로 채팅이나 인터넷 쇼핑, 다른 사이트 서핑을 하는지 감독을 하느라 지도가 힘든 실정입니다. 하물며 조그마한 스마트 폰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이 카카오톡을 하는지, 수업을 듣는지 체크하느라 수업 진행은 더 어려워지겠죠. 그만큼 학생에 대한 의심을 늦출 수 없어 서로간의 신뢰도 낮아질 테 구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의 사용이 늘면서 심심하지 않게 되었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인격적인 접촉이나 만남과는 다르게 혼자서 동영상이나 게임,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죠. 과연 무선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가 교실에 도입되었을 때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의 질은 높아질까요?

재미있는 어플과 게임을 다운받아 수업 시간에 딴 짓을 안 하면 다행일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의 기우인가요. 평가에 있어서도 시험을 치르다 학생의 태블릿 PC에 이상이 발생한다면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중독도 염려되는 증상입니다.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는 2007년 참석한 경제계인사 모임에서 "10살 된 큰 딸이 원래 컴퓨터나 인터넷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이 거의 모든 일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을 보더니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딸이 정원 가꾸기 게임 등에 푹 빠져 하루 2~3시간씩 컴퓨터에 매달려 있었다고 소개한 빌 게이츠는 부인과 함께 딸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평일에는 하루 45분, 주말에는 1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며 자녀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2010년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9~39살 인구의 인터넷 중독률은 8%로, 이 연령대 중독자가 174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인터넷 중독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가 전국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무선 인터넷으로 교재를 다운받아 수업하는 것을 알면 빌 게이츠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컴퓨터 황제'로 불리는 그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 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와 같은 명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공공도서관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가별 1인당 장서 수에서 10개 조사 대상국 중 10위를 기록하고 1개 도서관 당 인구수에서는 9위로 꼴찌를 간신히 면했습니다.

독서와 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빌 게이츠가 이 사실을 알면 "내 아이들에게 당연히 컴퓨터를 사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집안 형편이 넉넉해 용돈을 많이 받는다면 모를까. 가난한 집 자녀는 좋아하는 책도 마음껏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지식 정보화 시대 공공 도서관의 부실로 인한 정보 격차의 문제야말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이 지식의 보고인 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투자가 또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우리교육>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태그:#스마트교육, #스마트폰, #디지털교과서, #디지털기기,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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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열 기자는 '포항 지진 - 그것이 알고 싶다' 블로그(http://blog.naver.com/bluebirdinme) 운영자로 평범한 삶을 꿈꾸는 포항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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