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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한나라당은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반값 등록금과 관련해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이쯤부터는 한나라당의 정책을 반값 등록금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반값 등록금을 공약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청와대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2014년까지 대학등록금을 30%까지 인하하겠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대학등록금에 대한 대책입니다. 반값 등록금을 공약한 적이 없다는 청와대의 주장에 초를 치는 것이 대학등록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국민들의 촛불보다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매년 수십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도 외면하고 연간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들에게 그 기준도 모호한 스펙 경쟁을 강요하는 기업들은 목소리 높여 등록금 인하정책을 포퓰리즘이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한나라당에서 반값 등록금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마자 '대학등록금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의 자립이 중요하다'며 일관되게 청년들이 자립심이 부족하다는 투의 충고를 날려주시는군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반값 등록금과 대학 개혁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한나라당은 2014년까지 대학등록금을 30% 인하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대학등록금 낮춰달라고 하지 말고 청년들은 자립심을 키우라고 대통령은 말합니다. 기획재정부는 4대강에 수십조 원을 쏟을지언정 등록금 낮출 돈은 없다고 하고 재벌들은 자기네 기업들에 취직하려면 1년에 10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서로간에 숫자도 일부러 맞춘 것인지는 몰라도 등록금을 벌기 위해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는 수십만 명의 알바생들에게 재계는 2011년도 최저임금 인상안 '30원'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시간당 최저임금 30원을 더 받고 대학등록금이 30% 인하되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와서 가만히 보니 당/정/청간의 불협화음도 재계와 한나라당, 청와대의 투닥거림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각본대로 각자의 역할에 맞게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불협화음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청년, 2014년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요?

 

2014년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 2800만 원을 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값기 위해 아르바이트, 비정규직으로 8년을 전전한 청년유니온의 한 조합원의 학자금 대출 빚이 모두 상환 완료되는 해입니다.

 

2014년은 군대를 다녀오고 너무 올라 버린 대학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대학을 그만둔 청년유니온의 한 조합원이 비정규직, 백수를 전전하며 옥탑방에서 자신의 젊음을 한탄하며 지낸 지 8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행히도 2014년은 대학을 중퇴하고서도 대학 때 진 등록금 빚을 10년째 갚고 있는 제가 빚을 모두 청산한 지 2년이 되는 해이니 저는 대통령의 말씀대로 지긋지긋한 빚으로부터는 자립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자립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십시오. 대한민국의 대학생, 청년들은 이미 자립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대한민국은 청년들을, 대학생들을 버렸습니다.

 

실질청년실업자 120만 명, 20대 사망원인 1위 '자살', 청년의 절반이 비정규직, 연간 대학등록금 1000만 원인 이 사회가 청년들을 버린 이후로 대다수 청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 정글과도 같은 한국사회에서 '자립'해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이제 와서 다시 어떤 더 이상의 자립을 이야기하십니까?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청년들의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선결조건 중 하나임을 모른단 말입니까?

 

한나라당에게 묻습니다. 대학등록금 30% 인하가 대학생들을, 청년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정말 생각하십니까? 이미 연간 1000만 원에 달하는 대학등록금은 이 사회의 암과 같습니다.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암의 크기를 줄이자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 현재의 대학등록금이 반값, 아니 그 이하가 되어야 병들지 않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미래를 계획하고 꿈꿀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암의 크기를 조금 줄이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내놓은 등록금 대안에 '등록금 상한제'가 빠져있으니 사실상 암이 재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 재계 모두에게 묻습니다. 정말 이대로 간다면 2014년까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생존할 수는 있을까요? 아마 그때가 되면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청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때가서 한미FTA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하듯이 청년들도 수입하자고 하실 건가요?

 

당신들과 우리가 정말 동시대에 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건지 의문이 드는 주말입니다. 새로 시작되는 이번 한주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보내십시오. 청년들과 다수의 국민들은 다시 이 지옥과도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정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해서 살아가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성주님은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에서 정책기획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청년유니온, #대학등록금, #반값등록금,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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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에서 성찰적 진보가 함께 하는 평범한 시민들의 정당. 새로운선택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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