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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례(50, 가명)씨는 현재 5살 된 딸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다. 마흔여섯에 낳은 늦둥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육아 탓인지 갑상선 이상도 찾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자신을 끔찍이 사랑해주고 보살펴주는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늦둥이를 낳은 까닭도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박복례씨. 그녀의 남편 자랑을 들어봤다.

내 남편, 흔치 않은 남편감이야!

"나도 이런 남자 소개 좀 해주라!"

그녀가 자주 듣는 말이다. '이런 남자'란 바로 그녀의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래 나이인 남편은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다. 하지만 대부분 여자들이 바란다면 바랄, 집 안에선 밥 짓고 설거지하는 것 외 모든 가사 일을 도맡아 하는 너무나 가정적인 남편이다. 게다가 성격이 섬세하고 온화하기까지 해 아내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아내를 위하는 일이라면 힘든 내색 하나 없이 한다.

그런 남편의 사랑이 고마워 불혹의 나이에 딸 하나를 더 낳았다. 나이 마흔여섯에 첫 자식을 안아 보게 된 남편은 고맙다며 더욱 잘 한다. 그런 남편과 현재 5살이 된 딸의 애교를 보며 보내는 하루하루는 전과 달리 딴 세상을 살아가는 기분이다. 정말 세상이 이러했던가? 이곳은 천국인가? 사랑을 주고 받는 매일 매일이 행복하기 그지없다. 이런 행복을 맛본 지도 딱 10년이 됐다.

속이 이러하니 친구들이 부러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부부의 정, 자식의 끈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아직 반려자를 찾지 못한 친구 혹은 새로운 반려자를 고민 중인 친구들은 그녀의 남편을 만나본 그 다음 날부터 그녀의 남편을 이상형으로 점 찍어두고 주위를 물색 중이다.

이런 남자를 어떻게 찾았냐구?

하지만 그녀 또한 이런 남자를 과거엔 만나보지 못했다. 20년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겨우 찾아낸 반려자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부부의 사랑은 세 달이면 끝이라고. 나머지는 오로지 정(精)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 사이에는 자식으로 이어진 끈도 있다. 부부의 정과 자식의 끈이라는 두 잣대에서 부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를 고르라면, 대부분 자식의 끈을 고를 것이다. 그만큼 자식은 부부 유전자를 골고루 닮고 태어난,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또, 어르신들이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어떡해, 자식 때문이라도 살아야지…"라는 은근한 압박 때문이리라.

그래서 20년을 살았다. 가슴 가득 야망과 빈 돈주머니를 터질 듯 품고, 하루라도 술 한잔 걸치지 않은 날이 없으며, 마신 다음에는 기어이 내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고야 마는 그런 남자와 말이다. 술 장사, 밥 장사, 옷 장사 등 억척스레 살아온 그녀는 돈은 부족하지 않았다. 대신 하루에도 몇 번씩, 매일같이 자행되는 폭력에 시달려며 살아야만 했다.

20년간 살아보니 보이더라!

도망치고 싶어도 부부 사이에 난 딸자식 하나 때문에 도망가보지도 못했다. 그 딸이 성년이 되고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당연히 거절당했다. 또 요구했다. 역시 거절당했다. 이래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술을 왕창 먹고 용기를 내어 달려 들어봤다. 돌아온 것은 칼부림.

"미친년 처방에는 칼이 최고"라는 남편은 칼로 곧바로 그녀의 허벅지를 찔렀다. "한 번 찔러선 고쳐지지 않을 병"이라며 "두 번은 찔러야 한다"며 두 번 찔렀다. 철철 흐르는 피가 바로 눈앞에서, 그녀 몸에서 흐르는 것을 보며 급기야 그녀는 "차라리 날 죽여달라"고 부탁도 해봤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순간 들어서다.

그녀에게 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은 남편이 쓰러진 것은 그때였다. 병원 진단명은 뇌경색. 그녀는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사별할 수도 있겠다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그녀의 생각은 현실이 되기에 이르렀다. 남편이 죽기 한 달 전, 그녀는 다시 한 번 더 부탁했다.

"제발, 나 좀 놔줘…."

남편의 죽음을 앞두고도 이혼을 부탁하는 아내의 모습에 화가 치민 남편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비로소 아내의 죽을 만큼 괴로웠던 심정이 이해가 됐는지 이혼 도장을 찍어줬다. 저세상으로 가는 마당에 평소 그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가진 돈 전부 줄 테니, 제발 나만 놔 달라"라던 부탁은 현실이 되어 그는 그녀가 가진 돈 전부를 병원비로 사용하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지옥 같은 삶에서 해방되기 위한 값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한편 20년 간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였던 그녀 주위엔 늘 남자가 많았다. 전 남편과 살아오면서는 결국 어떤 남자가 과연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남자인지에 대한 기준이 생겨났다. 그렇기에 남편이 죽고 나서는 '이런 남자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새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친구의 친구였던 그는 다행인지, 천운인지 그녀가 바라던 이상적인 남자였다. '가정적이고, 온화하며, 섬세하고, 여자를 배려할 줄 알고, 아껴줄 수 있는 남자' 바로 그런 남자다.

늦둥이,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이야!

수차례 만남 끝에 '흔치 않은 남자'임을 확신한 그녀는 '이 남자와는 다시 한 번 결혼을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들자 이번에는 그녀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한 번 더 결혼에 도전한다고 해서 잃을 것은 없는 그녀였다. 결국 결혼에 성공! 다행이 그녀의 판단은 적중했으며, 천운인지 살아갈수록 남편이 진국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여자로서 세상 살아가는 기쁨을 이제야 맛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순전히 그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서' 2세를 계획하게 됐다. 아내로서, 여자로서 해줄 수 있는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생각과 달리 그런 행운이 오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다행일까, 이들 부부에게 귀여운 딸아이가 와줬다. 늦은 나이에 육아를 다시 시작한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 기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 부부에게 '아이'라는 행운은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소개하고 있다.

뒤늦게 겨우 찾은 행복 이 모두가 지금의 남편 덕분이라는 그녀. 모든 것을 잃고 불혹의 나이에 새 터전을 일궈가는 중이지만 너무 행복하다. 사랑이 있으면 육체적인 고통은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그:#늦둥이 육아,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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