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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변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옛날에 썼던 한글만 봐도 그렇다. 요즘은 그 말들이 많은 변천을 거듭했다. 그런데 '자장면'은 어떤가? 보통은 '짜장면'으로 통하지 않던가? 그런데도 굳이 '자장면'으로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또 말에는 기호언어가 있다. 신호등이 그것이다. 빨간색 때는 건너지 말 것. 파란 색 때는 건널 것. 모두 기호언어에 의해 움직임이 오간다. 요즘은 손 전화 이미지도 그렇게 쓰인다. 사랑한다는 것도, 인사로 꾸벅 절하는 것도 모두 이모티콘 표식으로 통한다. 물론 구세대들이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자율형사립고'는 어떨까? 그걸 말 그대로 풀어쓰면, 학생들이 알아서 자율학습도 하고, 도서관도 알아서 관리하고, 자기들이 알아서 공부하는 자기주도 학습을 하는 곳이 도니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국가가 수업료를 얼마 받으라고 지시하고, 또 학생 정원도 모두 정해 준다. 가히 '통제형사립고'다. 그렇기에 하루속히 실질적인 의미를 반영하는 언어로 고쳐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은 김보일·고흥준이 쓴 <사춘기 국어교과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말을 배우는데 있어서 중고등부 학생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기에, 뭔가 놀이를 하고 연상을 하듯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문법의 규칙대로 딱딱하게 따라하다 보면 피곤하지만, 규칙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 재미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현듯'이란 단어는 '불+혀+-+듯'의 구조로 짜여 있다. 여기서 '혀'는 어디에서 온 말일까? 바로 '켜다'의 고어(古語)인 'ㅎ혀다'에서 온 말이다. 즉, 어원적으로 볼 때, '불현듯'은 '불을 켠 듯'이란 비유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현듯'을 하나의 단어로만 인식하지 그 단어가 '불을 켠 듯'이라는 비유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불현듯'은 어원적으로 볼 때는 비유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언중들이 그것을 비유라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은유'(死隱喩)라고 할 수 있다."(53쪽)

 

이는 '불현듯'이란 말이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시어의 은유적 표현에서 온 말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전에는 온갖 죽은 은유들이 득실거리지만, 좋은 시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들이 팔팔하게 꿈틀거린다는 것이다. 죽은 은유가 촉이 무딘 화살과 같다면 생생한 은유들은 그 촉을 날카롭게 더듬어주는 역할도 한다고 한다. 그것이 생명의 언어요, 곧 우리 국어의 장점인 셈이다.

 

일전에 어느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우리 언어가 얼마나 우수한지 알려줬다. 영어의 A는 '아', '어', '애', '에' 등 다양하게 발음되고, 뒤에 오는 말에 따라서 앞의 A자체가 심각하게 변질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말 'ㅇ'는 어떤 경우에도 그대로 'ㅇ'를 지킨다고 했다.

 

영어에는 입과 입술이 전혀 다른 말로 쓰이지만, 우리 한글은 입과 입술이 같은 어원 속에 있고, 발과 발가락과 발톱도 모두 한 어근 속에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우리말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한때 'orange'를 '아륀지'로 적자고 했던 웃긴 일도 있었다. 영어는 그만큼 너무 복잡하고 헷갈리게 하는 말이다.

 

이 책도 우리말의 우수성과 이색적인 점들, 또 살가운 말들도 재미나게 알려준다. 물론 이제는 가려서 써야 할 단어들도 몇 가지 짚어준다. 이른바 '귀머거리'는 '청각 장애인', '벙어리'는 '언어 장애인', '절름발이'는 '지체 장애인', '장님'은 '시각 장애인'으로 표현하도록 하는 게 그것이다. 더욱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나 '눈뜬 장님'이란 표현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이 세상 언어, 특히 우리말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의견도 다른 분들과 상충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두 사람이 내 놓는 의견에 한 번 쯤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더욱이 문법 수준으로 국어를 접근하고 있는 사춘기 학생들에게는 기호언어처럼 다가설 수 있는 재미난 우리말 교과서이기에 더욱더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보일.고흥준, 〈사춘기 국어교과서〉, 작은숲, 14,000.


사춘기 국어 교과서 - 생각을 키워 주는 10대들의 국어책

김보일.고흥준 지음, 마정원 그림, 작은숲(2011)


태그:#국어교과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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