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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계발(동아리)활동 시간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혼을 내어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 제 일인데, 어제 자판기 앞에서 얼쩡거리는 한 녀석과 입씨름하다가 옆에 있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제 전매특허인 온화한 미소가 증발해버린 지치고 늙어빠진 얼굴이 마치 어느 화가가 그려놓은 자화상처럼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제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답니다. 제 고민은 거기서 부터인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늘 그런 모습으로 살 것인가? 그건 아니다 싶었고요. 그렇다면 온화한 미소를 되찾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지요.

방황과 타락은 탄성의 문제인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도 그런 말을 해주곤 하는데 돌아갈 지점을 넘어서버리면 타락(혹은 전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요. 지치고 늙어빠진 모습으로 교단에 서지 않기 위해 수업을 바꾸고 대화법을 배우고, 어쩔 수 없이 화를 내는 일이 있더라고 꼭 사과하고, 학생의 행동은 나무라더라도 아이 자체는 비난하지 않는, 그러려고 노력하는, 그런 일들이 지속 반복되고 습관화 되다보면 아이들과의 만남이 쉬워지더라고요.' 

지난 18일 토요일, 제가 자주 놀러가는 <교육공동체 벗>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조금은 건방진 제안'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는데 긴 글을 짧게 재구성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요즘 담임을 맡은 선생님들의 표정이 장난이 아닙니다. 농담을 걸거나 말을 붙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는 요즘 아이들과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다른 동료교사들에게 조금은 미안할 정도로. 제가 학생들과 사이가 좋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간단한 이치를 동료교사들과 공유하고 싶은데 그것이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제가 학생들과 사이가 좋은 것은 다음 두 가지 행동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학생의 단점을 말해야만 할 때는 꼭 장점도 함께 말해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서 학생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 인격의 수준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 것을 잘 알기에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주문을 외우다시피합니다. 가끔 화를 내기는 합니다. 하지만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화를 내는데 비난하지 않는다? 그 미묘한 차이를 누구보다도 학생들이 잘 압니다. 물론 처음부터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건방을 떨며 얘기하는 저를 너무 비난하지 마시고 (화는 좀 내시더라도^^) 꼭 한 번 실험(혹은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건방을 떨어 보지만, 저에게도 학교에서의 일상이 하루하루 실험이고 도전일 때가 많습니다. 지난주, 전국 학력 평가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전문계고 교사나 학생들에게 이날만큼 지루하고 짜증이 나는 날도 없습니다. 더욱이 수학과목이라 대다수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 볼 엄두초자 못 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아이와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선생님, 저 세수 좀 하고 오면 안 돼요?"
"갑자기 세수는 왜?"
"화장 좀 지우려고요."
"뭐? 그러니까 화장을 왜 해? 피부 나빠진다고 하지 말라고 했잖아."
"갔다 와도 돼요?"
"그런데 왜 갑자기 화장을 지울 생각을 한 건데?"
"잠 좀 자려고요."
"뭐?"

이런 대화만으로 미루어보자면 이 아이의 됨됨이는 알만하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귀히 여길만한 구석도 많은 아이입니다. 무엇보다도 제 영어선생인 저를 잘 따르고 예의가 바릅니다. 잘못을 지적해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영어퀴즈도 열심히 풀고 공책 정리도 꼬박꼬박 잘합니다. 다만, 화장하는 버릇만은 담임선생님에게 늘 혼이 나면서도 중학교 때부터 이미 길들어져 고치기가 어려운 모양입니다. 저는 방금 전에 아이와 나눈 대화를 그대로 복기하여 학생들 앞에서 들려준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너하고 나하고 주고받은 이 대화가 뉴스에 나오면 아마도 사람들은 널  정말 학생답지 않은 무지 나쁜 아이로 생각하겠지? 넌 그렇지 않은데. 알고 보면 넌 무지 좋은 앤데 말이야. 하긴 나도 잘 모르겠다. 네가 정말 좋은 애인지, 널 사랑하다보니 선생님 눈에 콩깍지가 쓰여서 그렇게 보인 건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교묘하게 말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해줄 때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면 압니다. 지금은 비록 외모에 관심이 더 치우쳐 있지만, 내적으로도 성숙해지고 싶은 어떤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자기를 귀히 여겨주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최선의 것으로 보답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제가 아이들을 비난하지 않는, 비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태그:#사랑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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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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